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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Dec 15. 2019

나홀로 피아노 #2

하농에 대한 생각

바이엘을 피아노 독학 첫 교재로 선택했지만 아직 준비가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산수 교과서에 익힘책이 꼭 따라오듯이 피아노를 배움에 있어서도 응용 교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보통 완전 초보자에게 적합한 곡집으론 '피아노 소곡집' 혹은 '동요곡집' 정도가 있을 텐데, 어렸을 때 아주 잠깐 다녔던 학원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는 두 곡집 모두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성인이 된 지금 역시 이들 곡집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않기도 하고. 사실 두 곡집 모두 누구나 알만한 곡들을 통해 즐겁게 피아노를 연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보자들에게 많이 애용도는 교재이긴 하지만, 수록곡들이 애초에 피아노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 아니거나 혹은 초보자의 수준에 맞춰 상당 부분 편곡된 터라 운지법 등 기술적인 면의 적용과 그를 통한 다른 곡으로의 향상(중요)에 있어서 많은 의문점이 남는 교재이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쓸만한 교재는 브루크뮐러의 25곡 연습곡집 정도가 가장 적합할 듯하다. 초급용 교재 중에 음악성과 기술적인 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교재로 이만한 물건은 없는 듯. 내가 낭만시대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은 논외로 두기로 하고.


어떤 교재를 바이엘의 응용 곡집으로 선택할지는 차차 생각해봐야겠다. 어차피 지금 수준으로는 겨우 기초 쌓는 연습만 하는 것도 버거울 테니까.


그리고 또 하나, 반드시 고려해야 할 교재가 있다. 바로 하농. 손가락을 위한 엑서사이즈 곡집의 대표주자다.


하농은 전공자나 피아노 교수법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평가가 갈리는 교재로 알려져 있다. 피아노 테크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선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둘 다 맞다고 본다. 다만 하농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필요 없는 사람으로 나뉠 뿐. 구체적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온 경우에는 하농을 반드시 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 피아노를 시작하는 경우에는 하농이야말로 매일 반드시 쳐야 하는 가장 중요한 교재가 아닐까 싶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워온 경우,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손가락으로 다양한 음형을 수없이 경험하며 차례차례 성장하게 되는 터라 긴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모든 손가락이 테크닉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쉽다. 그러나 성인의 경우, 이미 다 자란 손가락으로 '완성형' 운지법을 처음부터 적용해야 하므로 조금만 새로운 테크닉을 요구하는 곡이 나올 때마다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이것을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반복적인 엑서사이즈를 통하는 것 외에는 생각할 수 없으며, 피아노용 엑서사이즈 교재 중 가장 유명하고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교재가 바로 하농이기에.


만약 성인이 되어서도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시간적인 제약이 없는 경우라면 굳이 하농을 칠 필요 없이 매일매일 응용 곡 위주로 연습해도 무관할지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어른들에겐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우리에겐 지름길이 필요하다. 사실 어떤 배움에도 왕도란 것은 없다고 믿지만,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기본기의 수없이 많은 반복 연습뿐일 것이다.


하농의 곡들에는 음악적인 요소가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의 곡이 다장조의 흰 건반만을 이용하는 손가락 훈련이며, 반복되는 똑같은 음형을 통해 다섯 손가락의 움직임을 균등하고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교재다. 이처럼 음악적인 요소가 없다는 점을 들어 하농을 좋지 못한 교재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음악적인 요소가 배제되었다는 것은 초보자에게는 굉장히 편리한 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손가락 움직임에만 집중하면 되기에. 내가 만약 초등학교 1학년쯤 되는 나이였다면 이토록 지루하고 어떠한 음악적 감동도 없는 곡은 치고 싶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차라리 별다른 생각 없이 연습에만 몰두할 수 있는 이런 형태의 교재가 더 편하게 느껴진다. 이 이유 때문에라도 하농은 어린이보다 성인에게 더욱 적합한 교재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어떤 교재든 초보자에게 있어 도움이 안 될 리는 없다. 시중에 나와있는 책들은 나름 오랜 세월 동안 검증을 거쳐 그 효과를 인정받은 것만이 남아있기에.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 성인들은 어린 시절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던 자유를 이미 대부분 잃어버렸기 때문에(시간적인 자유, 공간적인 자유, 그리고 대상을 대하는 편견으로부터의 자유까지!) 하루를 아무리 쪼개어 봐도 오롯이 나만을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우며, 또 어릴 때처럼 그저 선생님들이 정해 준 교재와 과제를 아무런 의심 없이 꿀떡꿀떡 삼킬 수 있는 순수한 재능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재 선택에는 늘 신중해지는 듯하다.


사실 어떤 교칙본을 선택할지, 어떻게 공부하면 더욱 효율적일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피아노 앞으로 가 앉아서 한 음이라도 더 쳐보는 것이 실력 향상에는 더욱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늘 매사에 이렇게 계산적이 되어 조금이라도 쉬운 길이 없을까,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까 늘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 보통 어른들의 모습인 듯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우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피아노가 도착했다. 

롤랜드 사의 엔트리급 디지털피아노를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동급에서는 터치감이 가장 피아노와 비슷한 모델로, 비용이 올라갈만한 기타 요소는 대부분 빼고 건반에만 올인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피아노를 구입할 때 고려한 순위는 첫 번째가 터치감, 두 번째가 콘솔형일 것(건반만 있는 모델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긴 하나, 제대로 된 피아노 연습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 세 번째가 예산이었다. 나름 기준에 잘 맞춘 최선의 물건을 찾은 듯. 음색의 경우 고려 대상에 넣지 않았는데, 사실 최근 출시되는 디지털피아노는 대부분 소프트웨어를 통해 음색을 어느 정도 자유롭게 조절 가능한 점도 있고, 또 어차피 엔트리급 모델의 스피커로는 아무리 좋은 소스를 통해서도 좋은 음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피아노 자체의 음원과 스피커 성능을 보고 비싼 모델을 구매하기보다는 차라리 그 돈으로 좋은 헤드폰이나 모니터링 스피커를 장만하는 편이 낫다.


피아노도 도착했으니 이제 진짜 나홀로 피아노의 시작.

처음 의지할 교재는 바이엘과 하농. 

과연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피아노 앞에 앉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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