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시대, 나는 왜 차를 마셔왔을까

by 익호

찻잎의 매력에 본격적으로 빠지기 전인 어린 시절부터 난 립톤사의 홍차 티백을 즐겨 마시곤 했다. 립톤 홍차가 특별히 내 취향이라서 그랬다기보단, 당시 내가 구할 수 있는 홍차라는 게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훨씬 대중적인 커피에도 호기심은 갖고 있었지만, 당시 커피는 약국에서 팔던 달콤하고 매력적인 음료—박카스 만큼은 아니었더래도 어른들의 전유물이었고, 가끔 아버지가 홀짝이던 캔커피를 한 모금 얻어마실 때를 제외하곤 맛보기 힘든 음료였다.

그러나 어른들은 홍차에 관해서는 이상하게도 저지하지 않았다. 카페인이 어린아이에게 정확이 어떤 기작으로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좋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상식으로 갖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지만, 똑같은 카페인이 홍차에도 들어있다는 사실까지는 잘 몰랐던 모양이다. 지금이라면 검색 한 번에 충분히 알만한 상식들도, 당시에는 텔레비전 정보 프로그램에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려웠으니까 말이다. 그에 앞서 당시에 홍차라는 건 한국인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 축에 끼지 못했었고, 자연히 관심 밖의 물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 마셔본 립톤의 노란색 종이봉투 티백은 내게는 참 매력적인 물건이었다. 달거나 상쾌하거나 구수한 것도 아닌, 떫은맛과 입안이 긴장되는 느낌은(수렴성이라고 하나)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고, 그 이후로 내 안에서 차를 향한 애정이 점차 싹을 틔우지 않았나 싶다. 혹은 엄격히 제한된 커피나 박카스를 통해서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카페인’에 대한 갈망을, 홍차를 통해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십대 후반 즈음부터는 한국에도 ‘다방’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음료 가게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 시초가 스타벅스였는지 커피빈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무튼 그로부터 십여 년 동안 그 두 가게, 특히 커피빈에는 참 많이도 들락거렸었다. 당시의 내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보면 실로 놀라울 일인데, 자물쇠 모양의 구멍을 뚫어주던 분홍색 적립 카드를 몇 장이나 채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물론 그 카드를 채운 내 주문은 대부분 커피가 아닌 차였다. 주둥이가 넓은 홍차잔과 티백을 건져놓을 용도로 주던 작은 소스볼은 내 이십대를 통과하는 이런저런 장면에서 일종의 스톡 이미지처럼 각인되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본격적으로 차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또 얇은 지갑의 압박 때문이라도, 집에서도 차를 즐겨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대형 백화점에서조차 차를 발견하기 쉽지 않았고, 구할 수 있는 종류라 해봤자 이제는 특별할 것 없는 립톤 같은 티백만이 선택지의 거진 다인 시대였다. 해외 브랜드 홍차, 특히 틴에 담긴 루즈리프티를 구하기 위해서는 남대문 시장을 기웃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도 그시절 줄기차게 남대문 시장을 드나들었고.

그러다 2000년대 초입에 들어 한국에도 이른바 ‘해외 직구’라는 신문물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개인 수입은 존재했겠지만, 해외 상품을 일반인이 인터넷으로 손쉽게 주문한다는 개념은 불모지였던 한국의 차 애호가들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차 전문 웹 상점이나 직배송을 해주는 해외 사이트는 없었지만, 몇몇 배송 대행업체를 통해 영국과 미국의 차를 구해다 마신 기억이 난다.


얼마 전 국제차문화대전이라는 행사에 다녀왔다. 홍차보다는 중국차 위주의 출품이 대부분이었지만, 슬슬 내 취향도 홍차에서 우롱차로 확장되던 시기이기도 해서 꽤 흥미를 끌었다. 행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그 규모나 출품보다 관람 인원이었는데, 휴일이라곤 해도 터무니없이 많은 관람객들로 관내는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했고, 우리나라에 차에 관심을 가진 이가 이토록 많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솔직히 놀라웠다. 어린 시절부터 차를 애호해 왔지만, 한국은 ‘커피가 지배하는 테리터리’라고 이제껏 단정해 오던 게 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십년 사이,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차 문화는 급속도로 시장성을 키워가고 있는 듯하다. 이젠 나 정도의 차 지식을 가진 사람은 어디가서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다양한 계층에서 넓고 깊게 차를 즐기고 있고, 이를 뒷받침할 다양한 원산의 다양한 차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한국의 문화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사이에 국제적 표준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한국의 차 문화도 내가 모르는 사이 커피와 거의 동등한 위치로 자리매김 해가고 있는 듯하다. 사실 한국이 특수했을 뿐 세계적으로는 차가 늘 커피보다 우세였긴 했지만. 어쨌든 시대는 이렇듯 금방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차 애호가라고 칭하기는 해도, 사실 본격적으로 차를 공부했던 적은 없다. 그저 ‘기호품’으로 매일 소비해 왔을 뿐. 물론 그것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차나 커피는 멋을 위한 장식품이 아닌, 맛을 위한 소비품이라고 생각하고, 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으니까. 다만 아름다운 다구, 정갈한 준비, 그리고 마음가짐… 그런 차를 마시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도 중요하긴 하다. 그것들이 실제로 차 맛을 좌우하는 것은 당연하고.

최근엔 이러한 ‘개인적 다도’의 영역을 조금 키워볼까도 생각중이다. 우선은 내가 경험해 온, 또 지금 소지하고 있는 차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그 맛을 음미해 보고, 또 기록으로 남기는 식으로 시작하려 한다. 전문적인 공부를 할 마음까지 가진 않았지만, 차 일기를 작성하며 내가 어떤 차를 어떻게 좋아하는지 깊이 알아보는 건 꽤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다. 사실 차 일기 자체는 수년 전부터 작성해오고 있고, 최근에는 거기에 더해 짧은 영상을 제작해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이러한 기록의 행위는, 수십년간 일상적으로 소비하던 기호품으로서의 차를 단순한 취미 이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가 되어주고 있다.


차나 커피를 마신다는 표현은 세상 많은 언어에서 ‘휴식’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살이의 동적이고 정적인 모든 고통 속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그 휴식의 가치는 현시대에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특히 차는 커피가 가진 ‘에너지 부스터’로서의 역할보다 더욱더 ‘휴식과 정화’를 상징하는 기호품이 아닌가 싶다.

수십년을 차를 마셔왔지만 아직 ‘최고의 차’는 찾지 못했다. 최근엔 어쩌면 평생 찾지 못할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기도 한다. 똑같은 차의 맛도 해를 거듭해 바뀌어가곤 하니까. 그러나 조바심은 느끼지 않는다. 어떤 차든 한잔의 차는 그 옛날 첫 경험 이후부터 늘 내 인생에서 마음을 환기시키고, 하루를 구획하고, 또 정신을 깨우는 역할을 맡고 있으니 각각이 의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좋은 차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건 그러한 역할의 능동적인 연장선상에 있다. 내 인생에서 차란 가감 없이 그 정도의 위치에 자리해 두는 게 가장 적절할 듯하다.

언젠가 우연히 인생 최고의 차와 만나는 날이 오더라도, 새로운 차를 찾고 즐기는 일은 여전히 느긋하게 계속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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