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나날들에 대해

by 익호

삶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해 본 기억이 없다.

애초에 소질이 없는 영역이나 피하고 싶은 분야는 물론, 객관적으로도 꽤 재능이 있었던 것들에도 잠시 호기심을 두었을 뿐, 그것들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목표로 자리매김하는 일은 없었다.

인생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타인의 시선에 종종 꽤 한심하게 비치는가 보다. 특히 외향적인 성향의 사람들(우리 어머니를 포함해서)은 내 삶을 두고 ‘불행한 인생’이 아니냐며 쉽게 단정지어버리는 경향이 있어 왔다. 그 표현 방식은 모두 다르긴 해도, 대부분은 다음 한 문장으로 수렴될 것 같다.


‘왜 아까운 시절을 허비하니?’


이건 상당히 무례한 단정이고, 또 그래서 가끔은 그 말에 욱하고 대들 때도 있지만, 그들의 날 선 충고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을 알기에 받아들일만하다.

다만 실제로 내가 ‘불행한 인생’을 산다고, 또 살아왔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사에 별다른 관심 없는(혹은 없어 보이는) 인생을 지향한다는 게 좀 무미건조해 보일 수는 있어도, 물질적, 정신적인 잡다한 것들로 가득 채우는 인생보다 랭크가 낮은 인생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각각 다르다.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인지도 알 길이 없다. 내가 삶의 밀도를 옅은 찻물처럼 채운들, 길게 놓고 보면 진한 엑기스로 채우는 이들보다 그 원물의 총량은 많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러한 삶에 대한 ‘옅은 태도’를 체득한 건 언제부터일까 생각해 보면, 어린이라는 무한한 에너지의 덩어리인 시기를 막 지나고부터, 보통 이야기하는 슬슬 철이 들기 시작하는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타고난 핏줄, 즉 집안 유전자가 원래 좀 그런 성격을 형성하는 모양새라는 걸 깨달은 것도 그 시기다.


실제로 친가 식구들과 친척들을 관찰해 보자면, 대부분이 삶의 바운더리가 극단적으로 좁고, 인생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상대하는 리액션 또한 매우 희미한 편이라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스스로의 삶에 주체성이 없다거나, 만족하지 못한다거나, 그로 인해 아쉬움을 품는다거나 하는 모양새는 결코 아니다. 다들 각자 나름의 그릇을 채우고 살고 있으며, 단지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향유하는 욕구의 레벨과는 차원이 다르게 소박한 그릇을 지녔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일 년에 외출하는 날이 열흘도 채 안 된다는 거다. 외출이 거의 없으므로 당연히 새 신발 한 켤레, 새 옷 한 벌을 장만하지 않고 보내는 해도 드물지 않을 것이다. 외식이나 배달 음식도 거의 먹지 않게 되고, 만나는 친구도 지인도 거의 없다.

집안 곳곳엔 시간을 잊은 듯한 물건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110볼트 시대의 전기 연장 코드, 거치식 전화기 수화부를 감싼 레이스달린 조각천, 그 옛날 누군가의 답례품이었을 목각 원앙 한 쌍, 90년대 유행했던 쉼 없이 돌아가는 추가 달린 금빛 탁상시계…

거의 흠집 하나 없이 고스란히 자리를 지키는 친가의 이런 골동품들과 ‘골동 인간‘들 사이에서, 난 설명 못할 안심감을 느낄 때가 많다. 피는 못 속인다는 것일까.


그러니 작년 여름, 내가 인생에서 거의 처음으로 ‘도전’이라는 결심을 품고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결정했던 것은 스스로도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도전이 어이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그리고 쉽게 산산조각 나 버린 것에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것 또한 놀라운 사건이다. 충격까지는 받지 않았더라도, 타고난 유전적 무의욕으로는 대처하기 힘든 일들이 동시에 일어났는데도 말이다. 고난은 동시에 온다고 누가 그랬던가. 10년을 넘게 근근이 지속해 오던 프리랜스 일감은 간신히 명목을 이을 만큼의 수익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가장 크게 의지하던 해외 회사는 얼마 전에 문을 닫았다. 사실상 백수가 되어 타지에 던져진 신세라는 이야기.


그렇게 칩거하게 된 지도 벌써 넉달째다. 이쯤되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껴야 정상이라는 건 나도 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지금의 내 정신 상태는 꽤 고요하고, 또 온전하다. 내 삶의 그 어느 때보다. 거의 영원토록 저녁형 인간으로 살아온 세월이 무색하게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렇게 길어진 하루를 나름 다양한 것들로 채우려 하고 있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 좋은 차를 찾고, 그것을 좋아하는 다기에 우려 마시는 일. 피아노를 연습하는 노력. 짧은 글을 쓰는 시간. 약간의 근력 운동을 시도하는 것. 그러고 그런 일상을 영상에 담아 보는 것. 실제론 말보다 더 소소한 것들이다. 그중에는 예전부터 지속해 온 것들도 있고, 새롭게 시작한 것들도 있다. 중요한 건,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꽤 자기분석적이고, 스스로를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떠올려보면, 자기자신을 온전히 안다는 건 역사적인 성인들에게도 도달하기 힘든 경지 아니었나.

온전히 홀로 되어 본 이래로, 나도 모르는 나를 하나둘씩 발견하고 있음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그렇게 사람들을 꺼려하고 홀로 지내고 싶어 하던 나도, 사실은 상당히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다는 것. 의미 없는 수다나 시시한 뒷이야기 같이 의도적으로 회피하던 ‘천박함’도 내겐 필요했었구나 하는 것. 별로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어 은근히 속으로 깔보던 녀석이라 할지라도, 친구를 하나도 가지지 못하는 것보다는 옆에 두는 게 나을 수 있겠다는 것.

고독과 안빈낙도가 내 삶의 중요한 가치에서 탈락한 건 아니지만, 그것들이 극단으로 흐르면 때로는 스스로의 눈을 가리는 위선의 영역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또다른 변화는,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따져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런 걸 여태껏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놀랍게도 그래왔던 것 같다.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지만, 원하는 걸 구체적으로 마음에 정해 본 일은 없었다. 오히려 언제나 강하게 마음을 끄는 것에 대한 일종의 금욕적 죄책감을 품고 살아왔던 것 같다. 난 어린 시절 반장 선거에 추천되어도 사퇴를 우선 떠올렸고, 강하게 마음이 끌리는 장난감이나 게임 소프트를 사준다고 해도 애써 그것이 필요 없는 척, 좀 더 ‘리즈너블 한’ 것들을 고르는 이상한 아이였다.

연애에 있어서도 비슷하다. 옛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너는 늘 남들이 다 뽑아간 뒤에 남은 가장 최악의 제비를 뽑더라’

내 표현으론,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식탁에서 가장 맛있는 반찬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가 다른 식구들에게 다 빼앗기고 마는, 그런 타입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이젠 조금씩 나를 챙기기 시작했다. 맛있는 반찬을 먼저 독차지하는 식의 180도 변화가 일어났다는 건 아니다. 그저 ‘내 인생에서 이런 건 사치다’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나는 그게 아니다’ ‘아무래도 연애란 건 내 몫이 아닌 것 같다’처럼,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한계에 대해 물음표를 찍어보는 정도의 용기.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두는 굴레를 다 벗어내지는 못해도, 그 굴레 밖으로 시선을 던져보기라도 하는 변화다.


시선의 변화만으로 당장 내 인생이 바뀌지는 못하리라는 건 물론 안다.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최근 내 정신상태는 신기할 만큼 평화롭고 실로 굳건하기까지 하다. 물론 지금의 긍정적 마음상태의 구체적인 출처는 없다. 당장 내일의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수 주, 수개월 후엔 또다시 희미한 나로 돌아갈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현시점의 나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확신을 얼마간은 붙잡은 듯하다. 확신이라는 게 근거보다 앞장설 수 있을까? 하는 질문만큼은 여전히 남는다. 하지만 적어도 사개월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조금은 더 나은 인간으로 여겨진다는 점은 분명하고, 따라서 그 질문에 부분적으로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나보다 현재의 내가 더 마음에 드는 건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 설명 안 되는 기분이 꽉 찬 지갑보다 나를 더욱더 고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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