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의 감각

나이 듦이 선물하는 또 하나의 감각

by 에메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아침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숙녀에게 몸무게를 묻는 게 실례인가?”
“또 누구 몸무게가 궁금한데요?”
“너 요즘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이나 나가니?”


말씀의 속뜻은 단순했다.
말라 보이니 밥을 잘 챙겨 먹고, 영양제도 거르지 말라는 것.
이제는 건강을 먼저 생각해야 할 나이라는,

나에 대한 무뚝뚝하지만, 또 다정한 충고였다.


나의 두 딸에게는 여전히 애정 표현이 가득한 아버지.
여전히 50kg가 거의 되는 일어나기 싫어하는 둘째를 업고 나오시고

시크한 첫째의 애교에 지갑이 열리시지만

아니,

어린 시절 나에게도 그러셨긴 했다.

난 학창 시절 등교를 대중교통을 타고 한 적이 없었다.

아빠는 아침에 조금이라도 더 자라며 나를 항상 데려다주셨다.


그러나

내가 이혼 후 집으로 돌아온 순간부터는 아빠는 나를 가장으로 대하셨다.


“너는 흔들리면 안 된다.”
“너는 아파도 안 된다.”

그렇게 단단한 기둥으로 세워두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내 건강을 걱정하신다.

나는 그 변화 속에서 어떤 힘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나를 움직이려는 듯한,

설명하기 어려운 기운.

햇살이 창가에 스며드는 순간에도,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에도,

우리는 그 너머의 기척을 감지한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그림자가 미리 다가와 속삭이는 듯한 감각, 그것이 바로 ‘촉’이다.



1년여 몸담았던 모임이 있었다.
처음에는 다른 지역, 다른 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내가 잘해준 것도 없는데

나를 알아주고,

이뻐해 주고,

심지어 고백까지 해주었다.

그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가 글을 읽고,

오프라인 모임에도 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열기가 식었다.
하지만

어젯밤,

알게 모르게 승부욕 같은 것이 돋아 글을 쓰고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아침에 내 글을 다시 보니,

내가 애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관심? 애정?
갑자기 하기 싫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촉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운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는 것을.
내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

촉은 이미 알고 있었다.

촉은 세계의 언어이자, 마음의 울림이다.

누군가의 발걸음이 가까워질 때, 표정이나 말투보다 먼저 스며드는 기운이 있다.

그것은 환영일 수도, 경계일 수도 있다.


젊은 날에는 이런 감각을 미신이나 우연으로 치부했다.
논리와 증거,

눈에 보이는 사실만이 진실이라 믿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깨닫는다.
세상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로 더 깊게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촉은 그 보이지 않는 세계와 우리를 이어주는 다리다.
아직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공기 속에 젖은 냄새가 스며들 때 우리는 곧 비가 올 것을 안다.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상대의 눈빛 속에 담긴 망설임을 읽을 때 우리는 곧 대화의 결말을 짐작한다.
촉은 이렇게 작은 전조들을 모아 하나의 노래처럼 우리에게 들려준다.


물론 그 노래는 늘 정확하지는 않다.
때로는 허공의 메아리처럼 우리를 속이기도 한다.


세상은 단순히 보이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을 줄 아는 자만이
삶의 깊은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안의 촉을 믿는다.
그것은 나를 지켜주는 방패이자, 새로운 길로 이끄는 나침반이다.
촉은 결국 내가 살아온 시간의 무게가 빚어낸 가장 서정적인 선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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