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 #13
삶은 늘 균형을 요구한다.
사랑과 훈육,
이해와 단호함,
위로와 충고 사이에서 우리는 매일 줄타기를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 줄 위에서 흔들리며 걷는 일과 같다.
때로는 품어주어야 하고,
때로는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러나 그 선이 너무 날카로우면 상처가 되고,
너무 흐릿하면 의미를 잃는다.
운동과 학업, 그리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헷갈린다.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할까.
조언은 때로는 무겁고,
잔소리는 때로는 가볍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그 무게가 뒤바뀔 수도 있다.
"힘들다"라고 아이가 이야기를 하면 짠함이 느껴지고 모라도 해주고 싶지만,
엄마의 챙기는 말에
"쳇"
이라고 하면 선을 그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오늘 아침에
예의 없는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말했다.
차라리 힘들면 힘들다고 하라고.
태도나 말투에서 비춰 나오는 예의 없음은 너를 이해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연중무휴로 운동을 하는 둘째를 위해
코치님께 부탁을 드려 오래간만에 3일의 휴가를 둘째가 가지게 되었는데
3일을 쉬니 훈련이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다들 훈련을 하는데 본인만 쉬니까 눈치도 보인다고 했다.
어쩜 이런 것은 나의 성격을 닮았을까..
게다가 감기까지 걸려
아이의 컨디션은 영 꽝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 짜증이 난다고 했다.
순간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늦은 시간 퇴근을 하는 엄마를 핸드폰 보며
"왔어?"
라고 했던 어젯밤의 모습에
애써 잔소리인지 조언인지 모를 말을 해보았다.
"힘든 건 알겠지만, 그래도 단어 선택에 조금만 신경 써죠. 그리고 앞으로는 엄마가 퇴근하고 오면 무엇을 하든지, ' 다녀오셨어요.'는 해주었으면 좋겠어. 그것이 관계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예의일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나 곧 돌아본다.
나는 과연 부모님께 공손했는가.
돌아오시는 길에 "다녀오셨어요"라는 인사를 했는가.
아이에게 요구하는 그 작은 예의를 나는 지켜왔는가.
조언은 언제나 거울처럼 나를 비춘다.
상대에게 던진 말은 결국 나를 향한 질문이 된다.
그리고는 그 광경을 지켜보신 엄마는 말씀하신다.
"오죽하면 아이가 그랬을까."
희한한 게 엄마는 항상 아이들에게 예의를 안 가르친다고 나에게 모라고 하시지만,
유독 내가 아이를 훈육하면 갑자기 아이 편이 되셔서 나를 나무라신다.
하지만
오죽하면.
오늘의 그 말은 이해의 다른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이해가 때로는 방임이 되고,
그 방임이 때로는 사회에 나가서 혹은 나이가 더 들어 아이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
반대로, 나의 훈육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지만,
그 사랑이 때로는 상처가 된다.
잔소리
조언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조언과 잔소리의 선은 상대의 마음속에서 그려진다.
친한 언니와의 대화에서도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너는 다 좋은데, 좀 급한 부분이 있어."
언니의 말은 나를 향한 애정 어린 조언이었지만,
평소 성격이 급하고
마음에 있는 말이나 행동은 추진해야 하는 언니를 봤을 때
그것은 동시에 언니 자신을 비추는 말이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보며 조언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은 우리가 던지는 말은 언제나 상대에게
‘너는 얼마나 잘해서?’
라는 의심과 비교의 시선을 불러온다.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진심과는 별개로,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방어다.
그리고 그 방어가 커질 때, 조언은 쉽게 잔소리로 변한다.
결국 조언과 잔소리의 경계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그려진다.
그렇다면 조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조언은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말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자는 초대여야 할 것이다.
잔소리는 상대를 끌어내리는 말이지만,
조언은 손을 내미는 말이다.
"너는 이렇게 해야 해"가 아니라,
"나도 이런 길을 걸어가고 있어"라는 고백이어야 한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조언도,
잔소리도
결국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다만 그 사랑이 상대에게 닿을 때는,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여유로운 언어로 건네야 한다.
조언은 칼이 아니라 등불이어야 한다.
상대를 베어내는 말이 아니라,
길을 비추는 말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등불은 나 자신을 비추는 빛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 속에서 배우고, 서로의 조언 속에서 성장한다.
조언과 잔소리의 선은, 결국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다.
사랑을 강요하면 잔소리가 되고, 사랑을 나누면 조언이 된다.
터미널에 내려주고 집에 돌아오는 길,
아이가 카톡을 보냈다.
" 엄마 주려고 경옥고 하나 챙겨 왔는데, 못 챙겨줬네. 내가 다녀와서 엄마 줄게. "
" 아냐. 씨엘 먹어. 감기 빨리 나아야지. "
" 아냐. 엄마 주려고 챙긴 거야. 나중에 줄게. 조심히 가. "
오늘 아침 일을
잔소리로 들었는지
조언으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내 마음은 전해졌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