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릇

by 에메


지난주

큰 아이 씨에나는 5일 동안 상하이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온 지난 금요일, 일을 하고 있던 내게 엄마가 문자를 보내셨다.


“씨에나 왜 그러니? 내가 여행 다녀와서 짐 좀 푸르렀는데, 신경질을 낸다.”
“아~왜 또...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할게.”


할머니와 손녀딸들은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지만,

가까운 사이인 만큼 다툼도 잦다.

그럴 때면 중간에 낀 내 입장이 곤란해진다.

솔직히 나는 자꾸 아이들 편을 들게 된다.

하지만

그럼 일은 더 커진다.


엄마에게는 엄마 편을

아이에게는 아이 편을 들게 되는데,


그래도 양쪽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기에

들어보다 보면

완전 동상이몽이다.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해!”
“내가 알아듣게 이야기할게. 화 풀어.”


그리고 아이에게 카톡을 했다.

“너 할머니한테 신경질 냈어?”
“아니, 그냥 한 번만 말씀하시면 될 걸 두 번 세 번 계속 이야기하시잖아. 그리고 여행 다녀와서 바로 짐을 풀어야 하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좀 쉬고 내가 짐 풀고 싶을 때 풀면 안 돼?”


"엄마. 씨에나가 좀 쉬고 짐을 풀려고 했데. 그리고 자꾸 이야기하지 마. 맞는 이야기도 잔소리로 들릴 수 있으니까.. 한번 딱 이야기하고 안 들으면 나에게 이야기해줘."

"아니, 내가 몇 번을 이야기했다고 그래, 나 집에 왔을 때 한번, 그리고 저녁 먹으라고 하면서 한번 이야기했다."


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군가 한 명은 거짓말을 하는 게 틀림없다.
할머니는 부드럽게 짐을 챙기라고 했다고 하고,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자길래 밥 먹으라고 하면서 “짐은 언제 풀 거니?”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할머니가 방에 들어와 “짐 좀 풀어라”라고 말했고,

조금 있다가 또 들어와 “빨래해야 하니 언제 푸냐”라고 했다고 한다.

피곤해서 자고 있는데 또 들어와서 “짐 좀 풀어라!”라고 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기억이 다를까.

나는 그 이유가 ‘언어의 재편집’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자기 기분에 맞게 말을 기억하고 다시 편집한다.

한번 들은 이야기도

느낌에 따라 몇 번씩 이야기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알았어~라는 대답도

수긍의 대답보다는 짜증의 대답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을 더 부드럽게 기억하고, 듣는 사람은 그 말을 더 날카롭게 받아들인다.

같은 말이라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결국 싸움은 말의 내용보다 말이 닿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할머니의 말은 사랑에서 나온 것이고, 아이의 대답은 자기 시간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서로의 기억이 다른 건, 서로의 마음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에 피자를 시켜 함께 먹으면서

또 화기애애 해지긴 했지만,


그 둘은 또 싸울 것이고 나는 또 곤란한 상황을 맞딱 드릴 것이다.

(가끔은 모든 게 내 잘못이 될 때도 있다.)


언어는 언제나 두 얼굴을 가진다.

하나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

다른 하나는 듣는 사람의 느낌.

그 사이에서 생기는 차이가 때로는 오해가 되고, 때로는 다툼이 된다.


그래서 중요한 건 말이 닿는 온도다.

따뜻한 마음으로 건넨 말은 시간이 지나도 따뜻하게 기억되고,

날카로운 마음으로 던진 말은 시간이 지나도 날카롭게 남는다.

언어는 결국 마음을 담는 그릇이고,

그 그릇이 어떤 온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기억은 전혀 다른 색으로 편집된다.


일단,

나의 그릇을 따뜻하게 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걸려도

또 중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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