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른들은 특이한 말을 잘 찾아오신다.
어디서 찾아오셨는지 나의 어머니는 큰 아이_시에나를 두고 “강원도 포수”라 부르신다.
집에 오고 싶을 때 오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자유로운 성향을 빗댄 말이다.
독립적으로 키우자고 다짐했던 나였지만,
막상 아이가 멀리서 연락을 자주 하지 않으면 마음 한편에 섭섭함이 스며든다.
사진 속 아이를 바라보는 순간,
밀려드는 그리움보다 미안함이 숨결처럼 스며든다.
너무도 보물 같던 아이.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함께했던 존재.
분명 내가 잘해준 기억도 많을 텐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는 늘 부족했던 나의 모습만이 선명하게 남는다.
아이의 웃음 뒤에 가려진 나의 서툰 말들,
아이의 눈빛을 다 읽지 못했던 미숙한 순간들.
그 모든 장면이 되살아나며 가슴을 죄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나의 불완전함을 품고 자라났다.
그 사실이 오히려 더 벅차다.
내가 완벽하지 않았음에도, 아이는 너무나도 훌륭하게 그리고 나의 사랑을 기억하며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 길 위에서 빛나는 아이를 떠올리면, 부족했던 나의 모습이 더 부끄러워진다.
내가 조금 더 성숙했다면,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어른이었다면,
그녀는 더 따뜻하게
더 잘 자랄 수 있었을까 하는 자책이 따라온다.
부모라는 이름만 가진 내가 무슨 권리로
“연락을 자주 해라, 하지 마라”를 말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그녀가 행복하기를.
그러나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아이는 과연 이 마음을 알까.
부모의 그리움과 기대, 섭섭함과 사랑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이해할까.
여전히 나는 자식의 보답을 바라는 부족한 부모일지도 모른다.
알아달라는 것은 어찌 보면 진짜 느끼는 게 아닐 수도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늘 역설적이다.
독립을 바랐으면서도 거리를 두면 서운하고,
자유를 허락했으면서도 그 자유가 나를 외롭게 한다.
하지만 결국 부모의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바람이다.
아이가 자기 삶을 온전히 살아내기를,
그 길 위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아이가 멀리 있어도,
연락이 뜸해도,
그녀의 삶이 빛나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부모의 사랑은
아니
사랑은 결국 기다림과 믿음으로 완성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