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이스 닌의 말처럼
삶은 용기의 정도에 비례하여
축소되거나
확장된다.
그 선택 앞에서 우리는 망설이고,
때로는 도망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순간엔
작은 용기를 내어
한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그 한 발이
내 삶을 확장시킨다.
나는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다.
✈ 처음의 용기, 낯선 도시로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처음 만난 남자친구가 군대를 간다고 했다.
항상 함께하던 일상이 비어버릴 것 같아
그 공백을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하다
별생각 없이 유학을 계획했다.
인터넷을 뒤적이며 나라를 고르고,
강남의 유학원에서 상담을 받고,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부모님께 계획과 비용을 보고 드렸다.
처음엔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나를 응원해 주셨지만
비행기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나의 엄마의 걱정은 커졌다.
“지금까지 든 시간과 돈, 다 포기해도 좋으니…
너, 안 갔으면 좋겠다.”
그날 저녁,
엄마는 진지하게 나를 앉혀놓고 말했다.
나는 조용히 되물었다.
‘왜 가지 말아야 하지? 안 가면 뭐가 좋지?’
그리고 나는 말했다.
“갈래요.”
그렇게 떠난 유학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를 타고
낯선 도시로 향했던 날,
심장은 쿵쾅거렸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은
내 세계를 넓혀주었다.
그 경험은
두고두고 또 다른 기회의 문을 열어주었다.
� 두 번째 용기, 새로운 자리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일이 익숙해졌을 무렵,
좀 더 깊이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우리 학원엔 진로팀이 있었고
그곳엔 네 명의 선생님이 있었다.
그분들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넌지시 부원장님께
그 일을 하고 싶다고 비춰보았지만
그 말은 묻혀버렸다.
어느 날 퇴근 후,
씻고 침대에 누웠다.
평소 같으면 유튜브나 인스타를 봤겠지만
그날은 왠지
우리 큰 아이의 입시 과정을 정리하고 싶었다.
핸드폰 대신 노트북을 켜고
머릿속의 이야기들을 꺼내어 정리했다.
다음 날,
그 자료를 부원장님께 드렸고
부원장님은 원장님께 그 자료를 넘겼다.
그렇게 나는 입시팀의 일원이 되었다.
물론 걱정도 있었다.
‘너무 나대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날따라
꾹 참지 않고
조심스럽게 꺼내놓은 말이
내 자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 세 번째 용기, 가장 무식한 학생으로
대학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원우들은 생각보다 너무 멋진 분들이었다.
이미 상담센터를 운영 중인 분,
교수로 재직 중인 분,
이민자 심리를 상담하고자 온 다국어 능력자,
장애인 학교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며
두 번째 대학원에 온 선생님까지.
그 안에서 나는
열정만 가지고 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장 겁이 없는 학생이었다.
발표든 뭐든
막 나서서 했다.
통계나 분석의 ‘1도’ 모르면서
논문을 쓰겠다고 덜컥 시작했고,
교수님의 말도 안 될 만큼 큰 도움과 (여전히 너무 감사한 부분이다.)
동료들의 손길로
논문을 완성했다.
가장 친했던 동기 중 한 분은
해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이미 석사를 마친 분이었다.
그분은 능력보다
걱정이 많았다.
겁이 많았다.
그분은
겁이 없는 나를 부러워했고
나는 그의 지능과 자료 만드는 능력을 부러워했다.
결국 나는 논문 졸업을 했고,
그는 학점 졸업을 했다.
� 삶을 확장하는 작은 용기들
작은 용기들이
내 삶을 조금씩 넓혀왔다.
반대로,
두려움에 머물렀던 순간들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은
내 삶을 조용히 축소시켰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삶은
내가 얼마나 용기를 내느냐에 따라
확장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한다는 것을.
용기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선택 속에 숨어 있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것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볼 것
익숙한 것을 떠나보낼 것
이런 작은 용기들이
삶의 지도를 넓혀준다.
나는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 질문을 던진다.
“이 선택이 내 삶을 확장시킬까, 축소시킬까?”
그리고 가능한 한
확장을 선택하려 한다.
삶은
용기의 정도에 비례하여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고,
더 나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