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by 에메

수업을 하다 보면

문득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아이들의 시간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겁고,

훨씬 더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레슨 플랜을 짜고,

커리큘럼을 구성하지만
결국 수업은 내 직관으로 흘러간다.


아이의 표정, 말투, 눈빛, 숨결 같은 것들을 읽으며


어쩔 때는 느슨하게

어쩔 때는 빡빡하게


그렇게 내가 시간을 꾸려간다.

즉흥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진심인 방식으로.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어찌 보면,

이건 도박이다.


자녀의 시간을,
자신이 피땀 흘려 번 돈을,
짧은 상담 몇 마디와
어렴풋한 소문 하나에 기대어
내게 맡긴다는 건—

그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모험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 사이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누군가와 가까워질 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하지 않는다.

짧은 대화,
스치는 인상,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조건들.


그런 것들을 보고
호감을 느끼고,
관계를 시작한다.


어찌 보면 그것 역시 도박이다.
처음엔 잘 보이고 싶어서
예쁜 말들로 나를 포장했을 수도 있다.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고,
가장 반짝이는 장신구로 나를 꾸몄을 수도 있다.

내가 말한 조건들이
조금은 과장되었을 수도 있고,
그 순간의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관계를 시작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모든 걸 알지 못해도,
그 사람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왜일까.
그건 아마도,
사람을 믿어보는 용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용기는,
때로는 실패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생을 바꾸는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그 사람의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함께하며
미래를 기대해 보겠다는 뜻이다.


그건 단순한 호감이 아니다.
그건, 사랑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시간을 쓰며,
누군가의 신뢰를 감당하며,
내가 쓰는 이 작은 순간들이
누군가의 인생에 따뜻한 흔적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누군가를 믿고,
누군가에게 믿음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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