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둘째 딸이 급하게 카톡을 했다.
중학교 3학년인 딸은
초등학교 때 이미 운동선수라는 길을 선택했다.
또래보다 일찍 자신의 진로를 확정한 셈이다.
그런데 그녀는 여전히 많은 고민을 품고 있다.
“이 길을 가는 게 맞을까?”
“이 길 끝에는 어떤 모습이 있을까?”
궁금해하고, 때로는 불안해한다.
나는 그 모습이 참 좋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은 대체로 안정적인 길을 찾는다.
안정은 우리를 안심시키지만, 때로는 성장을 멈추게 한다.
딸은 안정된 기반 위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한다.
그 모습은 마치 잔잔한 호수 위에 번져가는 작은 파도 같다.
잠시의 흔들림이지만, 그 흔들림이야말로 호수를 살아 있게 하고
그녀를 성장하게 한다.
성장이란 안정 속에서도 흔들림을 허용하는 것임을
그녀는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흔들림은 결국 그녀를 더 단단하게,
더 그녀답게 만들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늘 어렵다.
아이가 어렸던 시절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고,
이제는 알면서도 그 삶이 내 것이 아니기에
쉽게 직언할 수 없는 순간이 많다.
부모의 역할은 길을 대신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봐 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때로 무력감처럼 다가왔지만,
동시에 가장 큰 믿음이 되었다.
내가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길을
아이가 스스로 걸어야 한다는 사실.
그것이 부모로서 느끼는 두려움이자 희망이다.
‘자기 주도’라는 말이 마음에 깊게 남는다.
세상은 점점 더 많은 선택지를 아이들 앞에 펼쳐놓는다.
책, 인터넷, 수많은 학습 도구와 정보들…
그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명확히 알아야 한다.
자기 주도란 단순히 혼자 공부하는 기술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힘이다.
딸은 지금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이미 안정적인 길을 선택했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신을 단련하고 있다.
나는 그 고민을 응원한다.
흔들림은 불안이 아니라 성장의 증거다.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그녀는 더 단단해지고,
더 자신다운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도 묻는다.
나는 과연 나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관계를 스스로 잘 선택하고 있는가.
대학원 시절, 나는 ‘자기 주도’와 ‘자기 조절’을 키워드로 논문을 썼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은 명확했다.
자기 주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목표와 동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무엇을 할 때,
“왜 하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모든 꾸준히 끝까지 해내는 것은 어렵다.
비전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기준이다.
확실한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그려가며 길을 가면,
중간에 고난이 있어도,
혹은 결과가 기대와 달라도
그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다.
기준은 적당히 머무는 안락이 아니라,
모자람을 채워내며 끝없이 성장하려는 삶의 자세였다.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자기 주도는 학습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관계 속에서도 자기 주도는 발휘되어야 한다.
관계에서 자기 주도는
“우리는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관계란 늘 두 사람의 리듬이 맞아야 한다.
한쪽이 지나치게 다가가면 부담이 되고,
또 지나치게 물러서면 거리감이 생긴다.
그래서 자기 주도적인 태도는
단순히 내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신호를 읽고
그 안에서 나의 의지를 어떻게 드러낼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자기 주도란 결국
‘나만의 길을 고집하는 힘’이 아니라,
‘나와 타인의 길을 함께 조율하는 지혜’다.
학습에서 자기 주도는 나를 향한 질문이었지만,
관계에서 자기 주도는 ‘우리’를 향한 질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순간,
비로소 자기 주도적인, 아니
우리 주도적인 진정한 관계가 된다.
결국 자기 주도란
나의 기준을 분명히 세우고
그 기준 안에서 관계를 건강하게 이어가는 힘이다.
관계 속에서의 자기 주도는
어쩌면 학습보다 더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른다.
학습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었지만,
관계는 상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혼자서 하는 자기주도학습보다,
함께 하는 우리 주도 관계가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