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꼭 원하는 학교 보내줄게
우리 학원은 담임제이다.
한 선생님이 한 반을 맡아 보통 6개월에서 1년을 함께 하고,
상황에 따라 때로는 더 짧게, 때로는 더 길게 인연을 이어간다.
그중에 특별한 아이가 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2학년 말미인가
정말 조그만 아이가 나에게 왔다.
수줍어서 말도 잘 못하고
그러면서도 인정받기 위해 그 수줍음을 이기고 발표를 하던 아이였다.
우리가 인연이었는지
이례적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내가 맡아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까지,
오랜 시간 함께했던 학생이다.
그 아이는 늘 드러나지 않게 나를 챙겼다.
스승의 날, 내 생일, 작은 편지 한 장까지.
늘 따뜻하게 다가와 주었고,
담임이 바뀐 뒤에도 여전히 나를 챙겨주었다.
그런 모습은 단순히 예의 바른 학생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 속에는 나를 향한 신뢰와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이 아이를 특별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이 아이의 진로 고민이 시작되었을 때,
아이가 찾아왔다.
"선생님! 어디를 가야 할까요?"
누군가의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이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이 아이가 내 딸이라면? 이라는 접근으로
나는 조심스럽게 특목고를 추천했다.
이 아이는 똑똑한 아이였지만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친구였다.
공부 잘하는 친구 옆에서는 공부를 잘했고,
노는 친구 옆에서는 공부를 놓았다.
그래서 조금은 도박 같았지만,
우수한 분위기 속에 있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특목고를 추천했다.
하지만 아이는 망설였다.
“저는 가서 잘하지 못할 것 같아요.”
나는 자신감을 주려 애썼지만,
결국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저 그냥 일반고 갈게요. 그래야 선생님도 자주 볼 수 있고…”
그 말속에는 단순한 선택 이상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공부보다도, 나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나를 울컥하게 했다.
그렇게 일반고를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주말, 갑자기 카톡이 왔다.
“선생님, 제가 외국어 고등학교를 가면 잘할 수 있을까요?
요즘 등급제도 바뀌고 해서 생각이 많아졌어요.”
" 나 오래 보고 싶어서 안 간다며, 이제 나를 보고 싶지 않은 거야?"
장난스럽게 받아치고는
나는 아는 정보를 조심스럽게 전해주고,
부모님과 충분히 상의해 보라고 했다.
결과가 궁금했지만, 자꾸 묻는 건 답을 강요하는 것 같아 기다렸다.
그리고 월요일, 아이는 말했다.
“선생님! 외국어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다음 주가 서류 등록 날짜니까
정말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매일" 만나서 두 시간씩 자소서를 함께 쓰고 있다.
다른 학생은 몇 달에 걸쳐 준비하는 일을,
이 친구와는 매일 웃으며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친구 앞에서 나는 자소서를 지도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마치 귀여움을 받고 싶어 하는 학생 같다.
잘 웃어주는 이 학생 앞에서
내 말에 잘 웃어주는 그 모습이,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든다.
어제는 늦게 끝난 수업 뒤, 아이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늦은 저녁길, 아이가 불쑥 물었다.
“선생님은 왜 선생님이 되었어요?”
나는 잠시 웃으며 대답했다.
“너 같은 학생을 만나려고 그랬지.”
아이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선생님 남편은 어떤 분이세요?”
“나랑 잘 맞는 사람이지.”
그러자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선생님 남편은 진짜 복 받으셨네요. 매일 선생님이랑 수다 떨고 웃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껄껄 웃으며 받아쳤다.
“야, 너랑도 이렇게 매일 수다 떨잖아. 부족해??”
아이의 눈빛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선생님 따님들은 더 좋겠어요. 집에서도 선생님을 매일 볼 수 있으니까요.
저 같으면 맨날 제 이야기를 마구마구 했을 거예요.”
그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이의 말은 단순한 농담이나 칭찬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선생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특별하다’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말에서 내가 가진 관계의 본질을 다시 깨달았다.
나는 늘 사랑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오히려 사랑을 받고 있었다.
가르침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삶 속에 웃음을 남기고,
따뜻한 애정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일이었다.
이 아이와의 인연은 단순히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넘어선다.
나는 선생님이지만,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서로를 챙기며 웃는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결국,
가르침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 속에 작은 빛을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내가 선생님이 된 이유는,
바로 이런 학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내가 사랑을 주는 동시에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