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비행기가 지나간 길
병실은 비로소 고요했다. 나연의 품에는 팔다리가 깡마른 작은 아기가 조용히 자고 있었다. 거의 들리지 않는 아기의 숨소리가 만드는 적막함이 나연의 가슴에 충만함을 불어 넣었다. 그녀의 병실에서는 병원 간판이 보였다. '할리우드 프레스비테리안 메디컬 센터.' 할리우드 병원의 간판 뒤로 LA를 둘러싼 낮은 산등성이와 군데군데 솟은 높은 건물들 사이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나연은 아기의 모자를 눌러 씌우고 다시 꼭 안았다. 아기의 살결은 그 어떤 체온보다도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나연은 양수가 터지고 세 시간 뒤 출산을 했다. 운이 좋게 주치의는 할리우드 병원에서 금방 수술을 마친 참이었고 수술방을 잡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주치의와의 인사, 간호사의 배정, 혈액 검사, 마취과 의사의 재미없는 농담, 차가운 수술 베드, 하반신의 마취, 그리고 이내 배를 가르는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날 때까지도 나연은 자신이 아기를 낳는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리저리 장기를 휘젓고 배에서 자궁을 뽑아내는 통증이 나연의 인내심을 시험할 때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연은 아기의 울음소리에 반사적으로 아이처럼 울었다. 마취과 의사가 나연에게 지금 우는 게 감격의 눈물인지, 통증의 눈물인지 다급하게 물었다. 아프면 진통제를 더 넣어주겠다고 진지하게 제안했다. 나연은 그의 질문이 우스웠지만 웃을 순 없었다. 고개를 저으며 감격의 눈물이라고 답했다. 나연은 그제야 자신이 기쁨에 가득 차 엉엉 울고 있었음을 자각했다.
당초 계획은 3주 뒤쯤 나연이 39주가 되었을 때 나연의 남편이 입국해 출산의 순간을 함께할 예정이었다. 1주일 간 그녀의 수발을 들어줬다가 혼자 한국으로 돌아가고, 다시 3주 뒤 미국으로 와서 나연과 아이를 데리고 바로 한국으로 함께 입국하는 깜찍한 계획이었다. 나랑과 미주를 포함해 대부분의 산모의 남편들이 미국에 두 번 오는 비슷한 스케줄로 미국 방문 계획을 짰다. 하지만 나연이 예정일보다 4주 일찍 출산을 하는 바람에 나연은 오롯이 혼자 수술을 받아야 했다. 마취한 다리는 움직이지 않아 아이를 안고 다시 배시넷에 내려놓을 때마다 간호사들을 불러야 했다. 남편과 부모님의 긴 영상 통화나 걱정과 사랑이 섞인 메시지들은 나연에게 충분한 감정적 지지를 전달해 주었으나, 그들의 물리적인 부재는 나연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딸과 처음 대면한 나연은 태어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했음에도 아기가 숨을 쉬지 않을까, 토를 하지 않을까, 너무 덥지는 않을까, 너무 춥지는 않을까 매 순간이 불안했다.
수술 다음날 아침, 라틴계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소변줄을 빼고 하반신 마취가 풀렸기 때문에 이제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간호사는 자신을 꼭 붙들라고 했다. 나연은 등을 세우고 다리를 침대 밑으로 내려 일어설 준비를 했다. 병실 바닥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나연은 장기가 배 밖으로 쏟아진 것 같았다. 이어 뇌까지 아래로 찢겨내려 가는 듯한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곁에는 나연이 투정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간호사에게 연신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연은 석양이 질 때까지 한 시간에 한 번씩 의자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고통스럽게 반복하고 있었다. 저녁 시간 무렵 나연의 병실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어 나랑이 들어왔다.
"나랑씨, 여기 웬일이에요!" 나연은 반가움을 숨기지 못했다.
나랑의 손에는 설렁탕 체인점 로고가 그려진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그녀는 만삭 임산부답게 통통했지만 큰 키에 길쭉한 팔다리가 흔들리는 설렁탕 봉지도 우아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나랑은 다리를 뻗어 테이블을 나연 앞으로 쓱 밀었다.
"언니 좀 어때요?" 나랑이 음식이 든 봉투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쾌활하게 물었다.
"몸도 무거운데 어떻게 여기까지..."나연이 말했다.
"아직 딱딱한 음식 못 먹으니까 사장님이랑 설렁탕 사 왔어요." 나랑이 말했다.
"진짜 너무 고맙네 어떡하지" 나연은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우는 건 호르몬 때문에 우는 거예요."
"언니 서로 챙겨야죠. 지금 우리들 미국에서 이 고생하는데." 나연이 웃으며 토닥였다.
"정말 너무 고마워요..." 나연이 물었다. "금방 가야 돼요? 저녁 시간인데 같이 먹고 가지."
"그래도 돼요? 안 그래도 사장님이 그 홍콩 언니 있잖아요. 그 언니 오늘 퇴원인데 다른 사람이랑 차에 같이 타기 싫다 그래서 사장님이 저 좀 이따 다시 데리러 온다고 했거든요" 나랑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나연은 기쁘게 나랑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배의 통증 때문에 행동은 굼떴지만 아이가 자고 있는 배시넷을 나랑 쪽으로 밀어서 보여줬다. 빨갛고 작은 아기는 고요히 자고 있었다. 나연은 아기가 30분 전 분유를 20ml 먹고 잠에 들었다고 알려줬다. 나연은 나랑이 들고 온 설렁탕을 그릇에 나눠 담았다. 흰 쌀 밥은 반을 퍼서 자신의 국에 넣었고 남은 밥을 나랑 쪽으로 밀었다. 뚜껑에 깍두기 세 개를 덜어 자신 쪽으로 당겨 놓고 남은 통을 나랑 쪽에 밀었다. 나랑이 잘 먹었으면 했다. 나연은 수술 준비를 위해 진행한 혈액 검사와 재미없는 농담을 하던 마취과 의사에게 현금을 직접 쥐어준 이야기, 수술실이 많이 추웠다는 이야기, 병실로 오기 전 회복실에서는 억지로 젖을 짠다는 이야기 등 출산하며 의외였던 상황들을 나랑에게 상세히 알려줬다. 수술할 때 남편이나 친정 엄마가 옆에 없어 무섭고 외로웠다는 이야기도 했다. 조리원의 산전 산모들과는 이런류의 정보를 자연스럽게 주고받겠지만 나연은 특히 나랑이 자신처럼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랑은 양수가 터진 나연을 분만까지 안전하게 인도해 준 은인이었기 때문이다.
불과 어제였던 일요일 오후, 양수가 터진 수상한 임산부였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우버 기사는 나연을 목적지에 내려줬다. 빨간색 코롤라는 유유히 도로를 빠져나갔다. 배의 통증은 점점 더 강도가 올라갔다. 나연은 인도까지 오지 못하고 차로에 서있어야 했다. 조리원 건물 앞마당에서 조심조심 산책을 하고 있던 나랑은 도로에 서있던 나연을 발견했다. 나랑은 그녀의 치마 한가운데가 완전히 젖어있는 것을 보고 그녀를 향해 뛰어갔다. 나랑은 나연이 자신에게 기댈 수 있게 어깨를 받쳤다. 건물로 들어와 소파에 나연을 앉힌 뒤 주치의에게 전화를 했다.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36주 차부터 산모에게 차트와 주치의의 휴대폰 번호를 줬기 때문에 나연에게는 아직 주치의 번호가 없었다. 조리원 사장과도 통화를 마친 나랑은 나연의 방으로 가 세면도구와 여벌의 원피스, 슬리퍼를 커다란 에코백에 넣고 나연에게 쥐어줬다. 혼이 빠져있던 나연을 추슬러 주치의와 병원에 지불할 현금과 카드를 잊지 말라고 알려줬던 것도 나랑이었다.
"그래도 나랑 님은 저 같은 일은 없을 거예요." 분만부터 병실 이동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이야기하던 나연이 말했다. "남편님이 다음 주 화요일에 온다고 했죠?"
"아 월요일이요. 한국이랑 날짜 헷갈려서 제가 잘 못 말했더라고요." 나랑이 정정했다.
"사랑이가 조금 더 기다렸다 나와야 되는데."나연이 나랑의 배를 보며 말했다.
"사랑아 좀만 참아. 아빠 오면 나오자~" 나랑이 자신의 배로 고개를 숙였다.
"제 남편도 그렇고 사실 휴가 쓰는 게 쉽지 않은데, 나랑님 남편님은 회사가 좀 유연한가 봐요."나연이 물었다.
"그... 펀드 같은 데 다니는데 바쁠 때가 더 많지만 한가할 때는 한가해요."나랑이 설명했다.
"펀드?" 나연이 반사적으로 질문했다.
"사모펀드라고는 하는데..." 나랑이 머쓱해하며 말을 이어갔다. "말해도 모르실 거예요. 사람이 막 많은 회사는 아니에요. 그냥 증권사 같은 거예요."
"에이, 증권사보다는 사모펀드가 훨씬 좋죠." 나연은 왠지 말실수였다 싶어 헤헤 웃었다.
"오, 사모펀드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데, 언니 어떻게 그쪽 업계 잘 아세요? 언니 금융 쪽에서 일한댔나요?" 나랑이 물었다.
"아뇨, 저는 그냥 홍보쟁인데, 이런저런... 고객사를 맡다 보니까 주워 들었어요." 나연은 거짓말을 했다. 전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그가 컨설팅 회사에서 사모펀드로 이직했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사모펀드는 나라나 큰 기관 등 여러 연·기금을 모아 하나의 펀드로 조성한 뒤 회사를 사고파는, 일종의 투자회사다. 사모펀드는 벤처캐피털보다 펀드의 규모가 크고 다루는 회사도 코스피 상장사급으로 큰 경우가 많았다. 수백억, 수천억짜리 혹은 조 단위 펀드를 만들어 거기에서 1-2%의 운용 수수료를 보수로 뗐다. 투자금을 많이 회수할수록 운용역 개개인에게 떨어지는 인센티브는 막대했다. 그 시장은 펀드를 운용하는 개인의 능력, 팀 워크 등이 향후 더 큰 펀드를 조성하는 데 많은 점수를 차지했기에 한번 성과를 내면 핵심 인물들의 자리는 더욱 공고해졌다. 펀드를 조성하고 성공적으로 청산하는 사이클을 서너 번만 증명하면 그들의 이름은 업계에서 전설처럼 회자되었다. 펀드의 실무자들은 컨설팅사, 증권사, 회계법인, 법무법인 등 엘리트 집단을 을로 부리는 갑 중의 갑이었다. 그런 면에서 사모펀드는 동종업계의 엘리트들이 갈망하는 포지션이었다. 펀드의 실무자들은 여자친구와 술을 마시고 을에게 전화를 걸어 술값을 계산시키는 등 소소한 횡포를 부리기도 했다. 이제는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고급 룸싸롱을 드나드는 것은 일상이었다. 전 남편은 네트워킹이 중요하고 접대가 필요한 일이 다반사인 투자업무의 특성을 이해하라고 했다. 그를 통해 본 투자업계의 문화는 나연에게 가증스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운용역들에게 지불하는 페이를 듣는다면 누구나 동경할 직종이었다. 문제는 그 이너 서클에 입성하는 것이었는데 나연의 전 남편은 끊임없이 이 세계를 갈망했고 서른을 넘기기 전 기어이 그들의 세계로 뚫고 들어갔다. 전 남편 외에는 금융계에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나연은 그와 헤어진 후 그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다만, 최근까지도 뉴스에 언급되는 네 자리의 알파벳으로만 이루어진 그의 회사의 이름과 불혹 언저리일 그의 나이, 그의 성정을 고려해 보건대 그는 지금쯤 성공한 중역이 되어있을 거라 짐작했다.
"제 남편이 국내 증권사 다니다가 사모펀드로 갔거든요. 그래서 사모펀드라고 하면 잘 몰라서 어디 가서는 증권사라고 하고 다녀요" 나랑이 즐거운 듯 말을 이어갔다.
"저도 사람들이 PR이라고 하면 잘 몰라서 가끔은 광고회사 다닌다고 해요. 하하..." 나연은 슬쩍 대화를 돌렸다. "나랑 님 사업 준비는 잘돼요? 원래 자기 사업 관심 있었어요?"
나연은 나랑의 남편을 주제로 대화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의 금융업계가, 특히 사모펀드 바닥이 얼마나 좁은지 잘 알고 있었다. 업계를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다가는 결코 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의 이름이 나올 수도 있었다. 나연은 평소 자신이 두 번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이따금씩 특정 단어나 상황이 트리거가 되어 이혼의 사실이 상기가 되었는데, 나연은 하필 아이를 낳은 다음날 그가 떠오른 사실에 마음이 씁쓸했다. 과거는 언제나 변치 않고 그 자리에 묵묵히 존재하고 있는 법이었다.
나연의 물음에 나랑이 답했다. "언니 웃지 말고 들어요. 원래 저는 뮤지컬 스타가 꿈이었어요."
의외의 대답에 나연은 지금까지 하던 생각이 싹 걷혔다. 나랑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노래와 춤에 재능이 있어 뮤지컬 배우를 준비했다. 하지만 어느 날 차 사고를 꽤 심하게 당해 몇 시간씩 서서 춤추는 일이 어려워졌다. 사고의 여파인지 곧이어 성대결절이 와 나연은 이십 대 초반에 그동안 들인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고 진로를 틀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177cm의 키를 살려 모델 일을 알아봤지만 어깨와 상체의 골격이 큰 탓에 좋은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그녀는 최근까지 지인들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MD로 일하다 자기도 사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템을 잡고 여기저기 일을 벌이던 중에 아이를 가졌다고 했다. 나랑은 한국에 돌아가면 사업을 바로 개시할 테니 나연에게 홍보팁을 묻겠다고 했다. 나연은 어려운 이야기를 해준 나랑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결코 극복이 쉽지 않았을 사건들이었다. 나연은 전혀 그럴 일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나연은 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나랑에게 호감을 넘은 존경심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