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천사] 이희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동의할만한 '절대적인 아름다운'이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있을까? 이희주 작가의 소설 [나의 천사]에는 이에 도전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모두를 설득 이전에 무릎 꿇게 할,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자비천사'가 바로 그것이다.
자비천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나의 천사]의 '천사'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천사는 소설 속 기업 관용사가 제작하는 섹스봇으로, 관용사는 장인 선우의 지휘 아래 수많은 천사들을 탄생시켰다. 천사들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으며, 세대를 거듭하며 새로운 매력으로 그 영향력을 확장시켰다. 사람들은 천사들이 가진 아름다움에 열광했고, 이에 더해 인간의 '완벽하게 아름답지 않음'을 열등하게 여기게 되었다. 종국에는 게스트가 인간인지 천사인지 알아맞히는 TV 쇼인 '우형규 쇼'가 큰 인기를 얻을 만큼 천사와 맹목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인간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다.
'자비천사'는 천사를 제작하는 관용사의, 더 나아가 장인 선우의 염원이었다. 선우는 미로 같은 장미저택에 아름다운 아이들을 가두어 그들의 아름다움을 탐했다. 그들의 아름다움을 훔쳐 천사들을 제작하였으며, 궁극적으로는 '미' 그 자체인 자비천사를 만들고자 했다. 극단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자비천사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 그 자체였으며, 자연스럽게 세간에서 여러 소문을 휘몰고 다녔다. 자비천사는 각자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보여준다는 것과 자비 천사를 보면 죽는다는 소문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자비천사' 혹은 '천사'의 존재는 가능한 것일까? 우선, 자비천사를 직접 제작하려 하던 관용사의 장인 선우는 죽음을 맞이했다. 관용사 내에서 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던 만큼, 그가 최후의 걸작으로 내놓으려 했던 자비천사는 사실상 만들어지지 못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의 직접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도 여러 '천사'들이 있었다.
첫 번째로 등장한 천사는 이오의 집에 있는, 자신이 천사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이다. 그는 유미에게 "진심으로 생각해야 해. 나는 천사다. 세상에 하나뿐인 천사라고"라 말하며 감정도, 아픔도 없는 천사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다음 장면에서 등장하는 이오는 그 남자의 목을 조르지만, 남자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는다. 다음 천사는 미리내이다. 미리내는 인간이지만, 천사가 가진 것과 같은 강렬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는 어린 시절의 콤플렉스를 이겨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 끝에 '우형규 쇼'에 게스트로 등장할 만큼 천사와 비견될만한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미리내의 최후는 상당히 비극적인데, 자신의 첫사랑인 유미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소꿉친구였던 환희에게 듣고 유미의 집에 찾아갔다가 환희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천사에 가까운 존재는 유미이다. 그녀 스스로는 자신이 인간임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일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천사에게 "나는 너에게 이름을 지어 줄 수가 없어. 나는 네 천사가 아니니까."라고 말하기까지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는 미리내의 첫사랑이며, 미리내는 유미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다시 말해 일종의 자비천사로 생각하고 있다. 미리내가 유미에게 품은 마음으로 인해 유미는 자신에 집에 찾아온 환희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마지막 천사는 미리내와 함께 지내는 류이다. 류는 선우의 장미저택에서 탈출한 인물로, 자신과 함께 지내는 미리내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인간적인 면모를 학습한다. 그러나 그는 미리내에게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기보다 그를 위한 완벽한 천사가 되고자 한다. "그게 당신이 원하는 일이니까, 당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고 싶어. 왜냐면 난 당신의 천사가 되고 싶으니까."라는 서술에서 보이듯 류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한 인간이 아닌 그 이상의 '천사'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류는 부처(butcher)로 불리는 민성기에게 살해당한다.
천사들에 대해 읽다 보면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모든 천사들이 죽음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목을 졸리는 첫 번째 천사, 소꿉친구에게 죽임을 당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천사, bucher(도살업자)로 불리는 인물에게 살해당하는 네 번째 천사 모두 흔히 '천사'하면 떠올리는 영생과는 거리가 먼 결말을 맞이한다. 이 천사들 뿐만이 아니다. 자비천사를 제작하려 했던 관용사의 장인 선우도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앞서 언급한 "자비천사를 보면 죽는다"는 세간의 소문 역시 죽음과 천사의 이미지를 연결시킨다. 그렇다면 천사들을,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미를 추구하거나 그와 가까워진 존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천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천사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들 또한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한 가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바로, 그들이 한없이 '인간적'이라는 점이다. 첫 번째 천사의 목을 졸랐던 이오는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을 선택한다. 자살은 감정도, 고통도 없는 천사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으로, 이오가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섞인 인간적인 감정을 가진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천사를 죽인 환희는 천사와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일반적이게 된 세상에서 인간 남편과 함께 인간 아이를 여러 명이나 낳는 흔치 않은 인물이다. 자신이 좋아한 미리내의 첫사랑인 유미를 질투하는 그녀의 감정 역시 그녀가 천사와는 거리가 먼 인간적인 인물임을 보여준다. 네 번째 천사를 죽이는 인물은 butcher라 불리는 민성기이다. 그는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아내와 꼭 닮은 천사를 들이지만, 끝내 천사가 자신의 아내를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닫는 인물이다. 인간에게는 천사가 아닌 인간이 필요함을 깨달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용사의 장인인 선우를 죽인 열아홉 청년이 있다. 그는 아름다움과 천사에 집착했지만 결국 자신도 인간임을 견디지 못했던 인물로, 스스로 가진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깊게 인지하고 있었다. 즉, 이들 모두 한없이 인간적인 면을 가진, '인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인물들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인간이 천사를 죽인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풀어서 말하자면,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미의 추구는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인간성으로 인해 좌절된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일까? 감히 욕심내었다가 파멸에 이르는 독이 든 사과에 불과한 것일까.
이에 대해 [나의 천사]는 '윤조'의 존재를 통해 흥미로운 답을 제시한다. 윤조는 관용사의 팩토리에서 일하는 인물로, 그곳에서 일하는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남자는 팩토리의 남은 부품들로 자신의 방에서 자신만의 천사를 만들고 있었고, 드디어 완성된 그 천사의 얼굴을 보고 윤조는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린다. 이에 대해 윤조가 취한 행동은 이오처럼 자살도, 환희와 민성기처럼 살인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관용사에서 오랜 기간 묵묵히 아름다움의 제작에 기여하며, 어느 날 찾아온 오래된 부품을 찾는 유미를 도우려 한다. 감정이 없는 천사와도,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도 아닌 또 다른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천사와 모나리자와 니케상과 장미가 아닌 그게 불러일으키는 마음의 변화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요동치는 물줄기를, 변하는 내 마음을 아름다움이라고 부르는 거다."라고 생각하는 윤조처럼, 우리가 아름다움 추구에만 매몰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감정이 없는 천사와는 달리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마음의 변화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소유와 집착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아름다움에 도달하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