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장소는 부엌이다. "백리향 냄새와 월계수 잎사귀 향, 고수 향, 끓는 우유 향, 마늘 향과 함께 파스타를 넣은 수프 냄새가 진동을 하는 가운데 부엌 식탁 위"에서 티타는 태어났으며, 그녀는 부엌 하녀인 나차의 보살핌으로 아톨레와 차를 먹으며 부엌에서 자란다. 성장한 이후엔 마마 엘레나의 감독 아래 집안의 의식인 초리소 만들기를 진행하고,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결혼식을 위한 차벨라 웨딩 케이크를 만든다. 결혼식 이후, 슬픈 추억을 내쫓아버리기 위해 티타는 더 열심히 부엌일을 했고, 페드로와 로사우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로베르토에게 부엌에서 몰래 젖을 먹였다. 슬픔에 잠긴 티타가 머물렀던 브라운 박사의 집 안뜰 구석의 작은 방엔 티타에게 차를 내어주고, 약초를 연구하며 그 공간을 부엌처럼 사용하는 새벽별이 있다. 티타가 집으로 돌아오고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둘째 딸인 에스페란사가 태어난 이후엔, 티타는 아픈 로사우라를 대신해 부엌에서 마치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아톨레와 차를 먹이며 에스페란사를 돌봤다. 이 모든 부엌 이야기를 관통하는 두 개의 요소가 있다. 바로 '요리'와 '여성'이다.
요리는 언뜻 조리 과정과 부엌이라는 한계에 갇힌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요리'는 여성의 영향력 그 자체를 상징하며, 부엌 밖으로 이를 발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티타의 요리가 이 책의 중심을 맡고 있는 이유이다. 그녀는 눈물로 차벨라 웨딩 케이크를 만들어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결혼식에 온 손님들을 감정의 소용돌이에 몰아넣는다. 마마 엘레나를 돌보기 위해 소꼬리 수프를 마음을 다해 만들고, 티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마마 엘레나는 그 요리에서 쓴 맛을 느낀다. 어릴 때 나차가 자신에게 그랬듯이, 아톨레와 차로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딸인 에스페란사를 사랑으로 양육한다. 떠나버렸던 티타의 언니인 헤르트루디스는 크림 튀김에 대한 강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혁명군 장군이 된 이후에 집을 방문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요리의 힘을 발휘하는 '여성'들은 어떤 존재들일까. 부엌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요리를 하는 나차와 새벽별, 티타를 통해 이들에 대해 알 수 있다. 이들은 각각 계급적, 인종적, 성적 약자의 삶을 보여준다.
첫 번째 인물인 나차는 계급적 약자이다. 그녀는 부엌 하녀로서, 고용자인 마마 엘레나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는 요리를 통해 유일하게 티타를 돌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나차는 양육과 돌봄이라는 그녀만의 역할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계급의 한계보다 더 공고한 지위를 가지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인물은 브라운 박사의 할머니인 새벽별으로, 그녀는 인종적 약자에 해당한다. 새벽별은 인디언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집안에서 배척당했고, 따가운 시선을 피해 안뜰 구석의 작은 방 안에만 머물렀다. 하지만, 그녀는 인디언 전통 의학 지식으로 자신을 고깝게 여기던 가족을 구해낸 것을 계기로 브라운 박사네의 꼭 필요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한다.
세 번째 인물은 주인공인 성적 약자인 티타이다. 막내딸은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집안 전통에 따라 티타는 사랑하는 페드로와의 결혼을 포기해야 했으며, 이후에도 어머니인 마마 엘레나를 돌보는 일을 이어간다. 그러나 티타는 자신의 처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녀는 후대로 이어지지 못할 뻔했던 나차와 새벽별을 그녀들의 양육과 돌봄, 그리고 사랑을 통해 이어받는다. 선대와의 여성 연대를 '요리'를 통해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이어나간 것이다. 그 결과, 자신과 같은 역할에 갇힐 위험에 빠진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딸 에스페란사를 사랑과 교육으로 집안 전통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가문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여성 억압의 틀을 깨부수고 새로운 세대인 에스페란사와 '나'를 위한 세상을 완성해 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든다. 어째서 마마 엘레나는 티타와 같은 역할을 해내지 못한 것일까. 티타와 달리 마마 엘레나는 집안의 전통과 권력에 억압당할 일이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마마 엘레나 역시 가문의 전통과 권력의 피해자였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집에서 강요한 상대와 결혼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티타와 달리 그녀는 집안의 관습에 순응하였고, 그 결과로 얻은 집 안에서의 권력을 억압적으로 행사하였다. 명령을 듣지 않은 티타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막는 불합리한 관습을 티타에게 대물림하였으며, 하녀인 나차와 첸차의 결혼까지 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여성들과 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엌을 통해 여성에게 전승된 힘을 이용해 같은 여성을 억압하였다.
그러나, 티타는 달랐다. 그녀는 페드로에 대한 사랑과 에스페란사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관습을 타파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 마마 엘레나에겐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된 집안의 전통과 그에 맞게 만들어지던 요리가 티타에겐 스스로의 의지와 마음을 전하는 수단이 되었다. 티타는 요리를 통해 사랑하는 페드로와의 인연을 유지해 갔으며, 에스페란사가 운명에서 벗어날 힘을 갖추도록 양육해 냈다. 사랑과 여성의 연대가 전승되어 요리의 힘을 온전하게 활용하게 된 티타에게 마마 엘레나가 독점하던 부엌에 대한 주도권이 점점 이동하게 되며, 여성을 둘러싼 환경은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이제 다시, 부엌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티타가 활활 타올라 죽음으로써 집과 농장, 그리고 당연히 부엌까지 모두 불타 없어진다. 이 불길에서 살아남은 것은 오직 티타가 남긴 요리책뿐이다. 여성의 공간이자 여성을 억압하던 공간인 '부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여성의 영향력인 요리책만 남아있게 된 것이다. 이 요리책은 나차와 새벽별, 그들의 보살핌을 받은 티타, 그리고 티타의 사랑으로 새로운 세상에서 자란 에스페란사와 '나'를 잇는다.
에스페란사와 '나'는 이 요리책을 통해 티타의 요리법을 이어받았으며, '나'는 마치 티타가 그랬던 것처럼 요리를 준비하며 눈물을 흘린다. 여성의 영향력과 연대가 시간을 뛰어넘어 이어지는 것이다. 누군가 티타의 요리법을 통해 요리를 하는 동안 티타는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라는 '나'의 말처럼, 부엌에 없어진 세상에서도 티타의 요리를 통해 이어지는 여성의 연대는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