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떼이고 뒤통수 맞았던 프리랜서의 이야기
나 이제 인류애를 잃었어. 인간은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특히 비즈니스 관계에선
그걸 서른이 넘어서야 깨달은 거야? 순진했네
다년간의 회사생활과 프리생활을 통해 깨달았다.
세상에 좋은 사람만 있지는 않다는 것
아니,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시스템 또는 처한 상황으로 인해 충분히 이기적일 수 있다는 것을
규모가 있는 회사였고 확실한 산출물이 있는 일이었기에 계약서도 없이 시작했던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고 난 후 나는 완전히 인간애를 잃었다고 울부짖었다. 소용없는 외침이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나는 나이브(naive)한 사람이었다.
회사 안에서나 밖에서나 나는 아주 나이브한 사람이었다. 좋은 마음으로 일하면 상대가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연봉을 많이 주지 않아도 내가 열심히 하면 알아서 올려주는 줄 알았고, 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지불하기로 한 돈을 꼬박꼬박 미루지 않고 턱 입금해줄 것이라 믿었다.
천만의 말씀, 세상은 그렇게 착하지 않아
프리랜서가 된 이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일에 목말랐고 돈 한 푼이 아쉬웠기 때문에 들어오는 일의 페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일단 수락하기 바빴다. 아는 사람이 부탁하는 일에는 계약서도 없이 일했다. 프리랜서에게 떨어지는 일이라는 것이 주로 급박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계약이나 비용 지급 조건을 충분히 협의하고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당장 일을 시작하고 프로젝트 종료 후에 비용을 받는 식이었다.
결국 클라이언트 요구에 맞춰 밤낮없이 일하다 건강이 상하거나 낮은 비용의 프로젝트를 수락하는 바람에 일하는 시간에 비해 생각보다 돈을 못 버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 헀다. 계약서 없이 일했다가 외주비를 못 받기도 했다. 외주비 체납과 소송의 역사는 아주 길다. 그 긴 사연을 늘어놓으면 구구절절 사흘 밤낮을 이야기해도 부족하니 짧게 정리하겠다. 계약서 없이 일했고 비용이 체납됐다. 다행히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그 사이 회사가 폐업해 200여만 원의 외주비가 그대로 공중분해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나는 왜 이렇게 착하게 일하려 했을까
일하는 환경에 대해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것 같다. 돈이 많은 것보다 경험을 쌓고 싶었다. 성선설을 믿었고 비즈니스에도 인류애가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까칠한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페이는 얼마죠? 언제까지 지급되나요?” 이 한마디를 하는 것이 마치 “나는 몹시 까칠하고 돈만 밝히는 사람입니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좋은 사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과했는데, 좋은사람과 호구는 다르다는 걸 너무 몰랐던 거지. 그래서 스스로 손해를 보면서도 한마디 못하고 알아주겠거니 하며 묵묵하게 일했다. “안됩니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NO! 라고 외치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고 사람들이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YES맨을 만드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는 사람보다 조금은 까칠하지만 자기 몫을 확실하게 해주는 사람과 일하고 싶을 것이다. 아니 그리고 돈만 밝힌다고 나쁜 건가? 어차피 일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인데, 열정이니 노오력이니 하는 쌍팔년도 낭만이 충만한 단어를 들먹이며 돈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애초에 같이 일하기 틀려먹은 사람인데, 그걸 왜 몰랐을까?
알량한 돈 몇 푼에 내 시간과 노력과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평가절하할 필요 없었다. 나는 늘 일과 돈이 궁한 프리랜서이지만 내 자존감을 깎아내리면서까지 일해서 좋았던 적은 결코 없었다. 오히려 내 자존감이 깎였을 뿐.
나는 까칠해지기로 했다.
인류애를 잃게 했던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나는 까칠해지기로 했다. 일이 들어오면 페이와 일의 범위, 비용 지급 시점을 확실히 따지기 시작했다. 말로 퉁치고 일하자고 하는 사람들에게 메일로 앞서 언급한 항목을 정리해 보내달라고 했다. 나름의 증거를 남겨야 했기 때문이다. 계약서 작성과 선금 지급에 대해서 더욱 확실하게 요구했다. 계약 외 일을 부탁할 때는 예의 있게 거절했다. 무리한 일정은 무리하다고 솔직하게 말하며, 적은 비용의 일을 맡기려고 할 때는 비용을 올리지 않으면 진행이 어렵다고 말했다.
내가 까칠해지면 세상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협업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주장한다고 해서 ‘까칠하네, 그냥 해주지..’라고 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무리한 일정은 조정해주고 계약 외 업무는 추가비용을 지급하거나 하지 못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해주었다. 애초에 적은 비용으로 일을 시키려는 사람들은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놓친 일이 아쉽긴 했지만, 그 시간을 가치 있는 일에 쓰면 되는 것이었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일하는 환경은 조금 더 나아졌다.
프리랜서는 스스로 권리를 지켜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외주비용 체납 소송을 진행하며 프리랜서는 피고용인과 다르게 고용노동부에서 보호해주는 장치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피고용인에 대한 임금체납은 형사소송, 프리랜서 외주비용 체납은 민사소송이라고 했다. 그 어디에도 고용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프리랜서에게 권리를 지켜주는 우산은 없다. 스스로 지킬 수밖에
계약서와 페이는 까칠해도 괜찮아
프리랜서의 보호장치는 계약서뿐이다. 프리랜서의 삶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합리적인 페이’이다. 일하는 만큼 받고, 제때 받기 위해 계약서를 꼭 작성하자. 어느 순간에도 타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약서와 페이는 까칠해도 괜찮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일을 수주할 때 확인해야 할 체크리스트는
to be continued..
질풍노도 프리랜서로 살아남으며 겪었던 온갖 잡다한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풀어냅니다.
프리랜서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고 계신 분들께는 프리랜서의 고단함을 프리랜서로 독립하기 두려워하는 분들께는 생각보다 괜찮은 프리랜서의 삶을 보여드릴게요. (변태 아니에요. 해치지 않아요..)
업데이트 일정은 클라이언트가 일을 많이 주지 않아서 그나마 조금 시간이 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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