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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혜 Jul 26. 2017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프리랜서에게 시간은 구슬이다. (부제 : 나의 실패 보고서)

두 달 전쯤, 이런 말을 했다.


퇴사 후 3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내 거라고 할 수 있는 게 없네..


아주 솔직한 고백이다. 나는 내 것이 없다. 그러니까 내 콘텐츠가 없다. 책을 쓴 것도 아니고, 내 사업을 시작한 것도 아니다. 문득 떠올려보니,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하는 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와 경험은 논외로 하고..) 


내가 하는 일의 특성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디지털에서 유통되는 마케팅 콘텐츠는 아주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진다. 내가 썼던 글, 만들었던 카드 뉴스는 무엇보다 '마케팅'을 위한 콘텐츠였기 때문에 내 것이 아니다. 내가 협업했던 브랜드의 것이지 결코 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순간 허무해졌다. 


5개월 동안 400개의 콘텐츠를 생산해내던 콘텐츠 봇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내껀 아니쟈나..


하고 싶은 건 많았다. 

지역 매거진을 만들어볼까? 지역 콘텐츠를 발굴하고 여행상품도 만들고 문화 기획자가 되어보자!!
O2O 서비스를 만들어 대성공!! 스타트업 CEO가 되는 거야!!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어 대성공!! 백억 매출 성공신화가 되어보자!!


O2O 서비스가 물밀 듯이 쏟아지던 2014년도에 나도 준비하던 서비스가 있었다. 사업계획서와 서비스 기획안, 심지어 웹/앱 스토리보드까지 다 그려놓고 엎어졌다. 

작년에는 아는 개발사와 함께 중국인 대상으로 여행 O2O 서비스를 만들어보자!! 의기투합해 투자제안서를 작성했는데, 이 또한 엎어졌다. 


이 외에도 여러 사람과 이런저런 아이템을 가지고 으쌰 으쌰 의기투합해보았지만 결론적으로 잘 된 건 하나도 없다. 너무 모르는 시장에 푸른 꿈만 바라보며 무턱대고 뛰어들려니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몰랐고, 두려웠고, 함께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도 부족했다. 그래서 열심히 책상머리에서 작성한 PPT 제안서 외에 한 것도 없이 그렇게 잊혀갔다. 


PPT 작성 능력만 나날이 향상되었다.


지역 매거진을 만들려는 시도도 했었다. 지역의 스토리와 문화 콘텐츠는 내가 이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던 분야이다. 문화 콘텐츠를 하고 싶어 콘텐츠 마케터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소소한 시도를 했었다. 이것도 시도로만 그쳤다. 열심히 뛰기보다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돈이 될까? 이걸로 어떻게 먹고살아? 그냥 그렇게 계산기만 두드리다 흐지부지되었다. 


아는 프리랜서 언니와 이런 페이지도 만들었었다.


온라인 쇼핑몰은... 돈은 역시 유통인가?! 라며 무턱대고 파 보았던 분야인데, 철이 없었다. 내가 무슨 물건을 팔겠다고. 그래도 그렇게 파던 중에 온라인 쇼핑몰 브랜드 마케팅 외주 일을 받아 한동안 먹고살았다.


자기 것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프리랜서도 아닌 직장인이 직장생활 틈틈이 다닌 여행 기록으로 여행 에세이 책을 낸다. 취미로 했던 일을 자기 사업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다. 나는 왜 남아도는 시간에 덕질만 했는가. 깊은 자괴감이 들었다. '그레이 아나토미' 볼 시간에 뭐라도 해볼걸. '닥터 후' 볼 시간에 뭐라도 배워볼걸!! 하드에 300기가 가까이 되는 사진으로 이야기만 풀어도 뭐라도 만들어냈을 시간. 3년 


성공한 덕후라도 될 걸 그랬어, 도라에몽의 친구 심타쿠처럼


용기가 부족했다. 먹고사는 게 크게 쪼들리지 않아도 당장 한 달에 백만 원이라도 벌지 않으면 그냥 불안했다. 그래서 돈이 되지 않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돈 되는 일 다음으로 미뤄두었다. 밀리고 또 밀려 잊히기를 반복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직장을 다니며 따로 자기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에너지가 많고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프리랜서는 직장인보다 자기 시간을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일하며 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직장인보다는 수월하다. 내가 만들어낸 시간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찍은 사진으로 구슬을 꿰었다면 뭐라도 됐을거야. (라고 착각해본다.)


당장 눈앞에 돈 되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개인 프로젝트는 쉽게 잊힌다. 켜켜이 쌓이는 일거리와 꾸준히 입금되는 꿀 같은 페이에 중독되어 '당장 돈은 안되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던' 나의 일들은 하나둘 뒷전이 된다. 여기에 과하게 많은 고민과 생각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다. '이게 의미가 있는 일일까?' '실패하면 어쩌지?' '아무도 관심 없을 거야..' 이렇게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무엇이든 해보자. 


프리랜서가 살길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걸 다시금 통감하며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큰 그림을 그리기 전에 작게 시작해보기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시도해보기

실패해도 괜찮다고 다독거리기

타인에게 기대지 않기

돈 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균형 맞추기

필요하다면 돈과 시간을 과감하게 투자하기

뇌내 망상으로 크게 기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기


오랜 시간 꾸준히 하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해하기보다는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아주 느리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내 것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질풍노도 프리랜서로 살아남으며 겪었던 온갖 잡다한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풀어냅니다.

프리랜서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고 계신 분들께는 프리랜서의 고단함을 프리랜서로 독립하기 두려워하는 분들께는 생각보다 괜찮은 프리랜서의 삶을 보여드릴게요. (변태 아니에요. 해치지 않아요..)

업데이트 일정은 클라이언트가 일을 많이 주지 않아서 그나마 조금 시간이 날 때..입니다. 

여러분의 공유와 댓글이 다음 편을 약속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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