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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혜 Jan 20. 2020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가부장제를 버린다.

도서 리뷰 《결혼 고발》- 사월날씨 지음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가부장제를 버린다.


이렇게 솔직히 고백을 해도 괜찮을까? 1년 전쯤 나는 남편에게 이혼하고 연애만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결혼한 이에게 요구하는 규칙, 가부장제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지우는 의무를 모두 걷어내면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응원하는 남성과 여성으로 건강한 파트너십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벗어나 다시금 사랑하는 사람으로 관계를 맺고자 했다. 물론 정상 범주를 벗어난 나의 제안 ‘이혼하고 연애하기’를 남편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당연하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결혼 고발>의 에필로그 소제목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가부장제를 버린다’는 책의 그 어떤 문장보다 더욱더 강하게 내 마음에 공명을 만들어냈다. 앞서 말했듯이 나 역시 남편을 사랑하기 위해 가부장제와 전통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다소 상투적인 결혼관과 제도를 벗어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 <결혼 고발>은 착한 남자와 안전하게 결혼한 기혼 여성 페미니스트, 사월날씨 작가의 나쁜 가부장제를 향한 투쟁기다. 에필로그의 소제목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가부장제를 버린다.’를 가장 먼저 인용한 이유는, <결혼 고발>에서 기존의 결혼 제도와 가부장제를 고발하며 사월날씨 작가가 스스로와 배우자에게 맞는 삶의 방식과 관계를 찾고 사람과 사람으로서 더 잘 사랑하고 관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부부는 같이 주말을 보내야 한다, 부부는 같은 집에 살아야 한다, 부부는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관념에 숨이 막힌다. 나와 너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어떤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낼지를 내가 내 손으로 선택하고 싶다. ‘부부는 이다’는 문장의 빈칸에 나는 조금 다른 내용을 써넣고 싶다. - '새로운 빈칸' 180p



2019년 드디어 기혼여성 페미니스트의 이야기가 수면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거나 페미니스트와 이야기를 나눌 때, 혹은 페미니즘 프레임으로 사회의 이슈를 논할 때 여성이 결혼했다는 사실은 장애 요소로 보일 때가 있다. 한번은 가부장 제도의 부역자인 기혼여성이 어떻게 페미니즘을 논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가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쟁점이 되기도 했다. 결혼하지 않은 페미니스트 여성은 비혼을 선택하고 더 나아가 비연애를 말하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기혼 여성 페미니스트로서 나는 때로 내가 페미니즘 프레임으로 무언가를 논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의심하기도 했다. 이런 나에게 기혼 여성 페미니즘의 목소리는 고립된 적진에서 홀로 떨고 있는데 저 멀리서 지원군의 북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반갑고도 반가운 소리다. 


페미니스트가 결혼해서 기혼 여성 페미니스트가 된다고만 생각하면 대단한 착각이다. 나는 결혼 후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결혼 당시에는 오히려 남성주의 시각에 흠뻑 젖은 사람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여성 혐오적 메시지를 체화하고 있었으며, 가부장제의 촘촘한 그물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물론 여성이라면 누구든 페미니스트로서의 씨앗을 품고 있다. 그것이 여성으로서 겪은 차별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여성이라서 겪게 되는 사회적 불합리를 어떤 식으로든 경험하고 이에 불만을 가진 적 있을 테니까. 내 경우에는 페미니즘이라는 씨앗이 움트고 꽃을 피우고 보니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다. 그렇게 나는 기혼 여성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사회에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목소리를 내는 기혼 여성 페미니스트의 공통점이 있다. 기혼여성 페미니즘 프레임 도서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정지민 작가는 물론이고 <결혼 고발>의 사월날씨 작가, 그리고 나까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나는 착한 남편, 비교적 좋은 시가를 만났다”고. 어쩌면 비교적 가부장제의 메시지에 덜 충실하며 여성을 억압하지 않는 환경일 때 기혼 여성은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아닐까? 


비교적 좋은 조건(경제적 조건이라기보다는 정서적 조건)을 가진 상대와 결혼한 여성이 페미니즘을 논하는 것에 불편함을 가질 수도 있겠다. 주말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며느리를 억압하는 시어머니를 만났다거나, 결혼한 가정 내 물리적 혹은 정서적 폭력이 없는데도 왜 결혼 생활에서 자신을 약자로 설정하고 불만을 토로하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표면적으로 차별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가정 내에서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별 탈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에게 막장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누가 봐도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만한 괴로운 일을 당했다면? 마음 여린 누군가가 연민의 눈물을 떨구고 내 손을 잡으며 고생했다고, 진짜 힘들었겠다고 등을 토닥여줄 정도의 스토리였다면 나의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었을까? 그런데 설득이라니, 고통을 말하는 데 설득을 해야 하는 걸까? 나도 내가 운이 좋은 편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을 다행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운이 좋다는 사실에 기쁘기보다 내 삶의 평화를 운에 맡겨야 한다는 사실에 오히려 나는 절망한다. 왜 여자의 일상은 어떤 시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져야 할까? 왜 시무보가 괜찮은 사람들이기를 불안한 마음으로 빌어야 할까?

- 5p, 고통을 말하는 데 왜 설득이 필요한가요? 


<결혼 고발>에서 막장드라마에 나올법한 첨예한 갈등과 차별을 기대한다면 그것 자체가 결혼한 기혼 여성을 향한 차별적 시선이라고 말하고 싶다. 첨예한 갈등과 차별을 마주하는 것은 기혼 여성에게 당연한 것이 아니며, 당연해서도 안 된다. 사월날씨 작가는 <결혼 고발>에서 일상적인, 의식하지 않으면 차별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묘한 차별의 순간을 고발한다. 시가에서 앞치마를 선물 받거나, 여성에게 치우친 돌봄 노동, 결혼 전 사과 못 깎는 것을 걱정했던 순간 등 우리에게 촘촘히 씌워진 가부장적 메시지를 경험을 바탕으로 차분히 적어 내려간다. 


나는 여전히 ‘며느라기’였던 걸까. 아니면 부당한 비난이라도 비난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탓일까. 시부모가 오기 전날인데 과일이 얼마 안 남아 있으면 일부러 안 먹고 남겨두기도 했다. 스스로 좀 과하다 싶어도 자연히 그렇게 되었다. (중략) 텅 빈 냉장고를 내 엄마에게 보이는 것과 시모에게 보이는 것은 결코 같지 않았다. 반면 남편은 언제나 무덤덤했다. 시부모가 방문하든 내 부모가 방문하든 남편에게는 다를 것이 없었다. 시부모 방문에 내가 갖는 부담을 (내가 설명해서) 알기 때문에 청소나 집 정리를 같이 하긴 했지만 나처럼 먼지 한 톨에 강박을 가지지는 않았다. 덜 정리된 집에 대해 남편에게 책임을 물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엄마마저 나를 타박한다.

- 58p. 냉장고 문은 열지 마세요. 



사회가 ‘개인’을 받아들일 때가 됐다. 


관리의 편리함을 위해 인간을 큰 뭉텅이로 범주화하고 상투적이고 단편적인 관점으로 개인의 삶을 평가한다면, 결국 시스템 안에서 개개인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이라는 제도의 상투성, 정상가족에 대한 미신에 가까운 집착과 환상이 개개인의 관계를 사보타주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결혼 고발>의 4장 ‘오늘의 결혼을 거부하다’에서 사월날씨 작가는 계속해서 개개인에게 맞는 관계의 모습 찾기, 상투성을 벗어난 새로운 관계에 대한 상상력을 강조한다. 


지금 이 사회는 안전과 경제력을 포함하여 결혼을 통해 얻는 이점들로 여성을 볼모 잡고 있는 모양새다. 애초에 삶과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을 여성에게서 박탈해놓고 그것들을 줄 테니 결혼하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렇게 여성이 부당함을 견디게끔, 결혼 제도로 걸어 들어가게끔 사회제도가 설계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물어야 한다. 왜 반드시 결혼을 통해 얻어야 할까? 성인이 독립적으로 통해 얻어야 할까? 성인이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경제력, 주거 환경은 ‘성별에 관계 없이’ ‘결혼이 아니어도’ 보장받아야 하지 않을까? 


명절에 내가 겪는 힘듦,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지만,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가부장 제도에서 며느리에게 지워진 의무에 대한 불편함을 남편에게 토로하며 변화하기를 요청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이 말을 꼭 덧붙였다. “당신의 가족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당신 그리고 당신 가족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변화를 꿈꾸는 것이에요.”라고. 가부장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2020년에도 며느리가 가부장적인 가정 내에서 최약자로 존재하는 한 며느리는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없다. 나를 억압하는 상대를 어떻게 진심으로 대하며 아낄 수 있을까? 개인의 탓은 아닐지도 모른다. 가부장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아주 자연스럽게 가부장적 메시지를 체화했고, 그 시스템에 불만을 느끼지 않음으로써 의도치 않게 가부장제 내에서 여성을 향한 차별을 방관하거나 강요하는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관계에서 더 노력해야 할 사람, 더 적은 노력으로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자식보다는 부모, 학생보다 교수, 직원보다 사장, 가부장제에서는 며느리보다 남편과 시가일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라고 외쳐야 할 방향은 아래가 아니라 위라고 믿는다. 약자들은 이미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들의 안녕과 생존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월날씨 작가의 말처럼 가부장제로 차별받고 있는 기혼여성은 이미 그들의 안녕과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존중받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동등한 결합, 그 결합을 통한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이 결합에서 어느 한쪽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페미니즘 목소리는 이것이다. 가정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사람 대 사람으로 ‘타고난’ 조건으로 차별받지 않을 때 우리는 건강하게 소통하며 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PS.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사월날씨 작가와 함께한 22화. <결혼 고발> 사월날씨님과 함께 한 결혼한 프리랜서 이야기 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 기혼 여성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이튠즈, 팟빵, 네이버 오디오에서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를 검색해주세요! 



■ 책 소개


“오늘의 결혼은 왜 여성에게만 나쁜가?” 


기막힌 가부장제에 대한 생생한 고발과 더 나은 결혼에 대한 새로운 제안


자신의 결혼 생활을 담은 에세이를 여성생활미디어 ‘핀치(Pinch)’에 연재하며 여성 삶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온 여성학 연구자 사월날씨의 첫 에세이 『결혼 고발』이 arte(아르테)에서 출간되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미투, 낙태권 주장, 탈코르셋 운동, 비혼주의 등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자신답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 활발하다. 그러니 이제 여성을 위한 노력은 충분한 걸까? 그렇지 않다. 가장 일상적인 곳에서 은근하고도 집요하게 행해지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여전하며, 특히 한국 사회의 결혼 제도를 지배하는 가부장제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월날씨는 『결혼 고발』을 통해 운 좋게 착한 남자와 무난한 시가를 만나 탈 없이 결혼 생활을 해도 여성에게만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떠안고 마는 ‘가부장제’를 낱낱이 파헤친다. 저자는 결혼 일상에서 아내와 며느리가 맞닥뜨리는 고통을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조목조목 진술하면서, 이는 개개인이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가부장제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고발한다. 나아가 개인과 개인이 결합해 동반자가 되는 더 자유롭고 안전한 방식도 다양하게 제안하는데, 미혼, 비혼, 기혼, 혹은 어느 사이에 있든 더 나은 관계의 방식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 목차


prologue_ 왜 고통을 말하는 데 설득이 필요한가요?


1. 결혼하다

왜 사과 못 깎는 걸 걱정했을까?

착한 남자

사랑하니까 결혼하자?

걱정은 있었지만

어쩌다, 결혼

신부 입장


2. 시가를 만나다

시부의 보험 증서, 시모의 레시피

며느리가 그러라고 하디?

고부 사이 어색해질라

며느리가 미웠다 예뻤다

며느리를 오라 가라 할 권리

아들집 놔두고 카페를 왜 가냐

냉장고 문은 열지 마세요

시가 스타트업

똑똑한 며느리

딸 같은 며느리

앞치마는 배려일까?

시가와 며느리, 혐오와 희망


3. 가부장제를 고발하다

효자도 아니면서

남편은 돌봄노동을 모른다

남편은 가사노동을 미룬다

딸이니까, 며느리니까

남편은 뭐래?

결혼했는데 왜 입사하셨어요?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라고?

결혼해주세요, 임신해주세요, 나가 주세요


4. 오늘의 결혼을 거부하다

가족은 건드리지 마?

여자에게 좋은 결혼은 없다

견뎌야만 하는 걸까?

명절을 거부하다

며느리의 몫도 탓도 아니다

고부 갈등을 거부하다

시가와 며느리 사이 괜찮은 거리

페미 전사 꿈나무 남편

1인 1침대

결혼이 아니더라도

며느리 사표

결혼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epilogue_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가부장제를 버린다


■ 저자 소개


사월날씨

결혼 생활을 좋아하지만 결혼 제도는 고통스러운 결혼 5년 차. 연세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한 대학의 성평등센터에서 근무했다. 여성주의 상담가가 되기를 희망하며 지금은 여성의 진로발달에 관해 글을 쓰고 있다. 당연히 페미니스트.


홈페이지 aprilweather.co.kr 

트위터 @aprilweath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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