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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혜 Mar 05. 2020

모두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을 그대로 안고

두렵다.


언제든 일이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한다. 사회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내 책상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두렵다.


찾아주는 사람이 없고, 일을 주는 회사가 없고, 다달이 통장에 들어오는 페이가 없으면 너무나 쉽게 프리랜서라는 정체성을 놓치게 된다. 사실 프리랜서라는 말이 참 모호하다. 자유 노동자. 하지만 이 모호한 단어라도 나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있는 것이 늘 다행이라고 느낀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나에게 프리랜서라는 노동 형태의 범주는 나에게 일말의 안정감을 선물한다.


평가가 두렵다.


내가 창작한 글이 누군가에게 냉혹하게 평가받을 때면 마치 나라는 사람이 평가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평가가 두려워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될 때도 있다.


노동의 시간이 아닌 결과물로 평가받는 일, 프리랜서에게 일이란 과정보다 결과가 더 크게 느껴지곤 한다. 노력했어도, 애썼어도, 아무리 시간을 많이 쏟았어도 클라이언트에게, 대중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면 내가 어떤 무게감으로 일했든 그 결과는 한없이 가볍다. 그 어떤 회사보다 능력 중심이며 신자유주의의 서사가 지배하는 프리랜서 노동 환경에서 평가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다. 평가는 계속해서 내 일에, 내가 버는 돈에 영향을 줄 것이다. 어떠한 잣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두렵다.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지 못할 것 같아 두렵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 많다. 똑같은 일은 없다. 늘 한조각 쯤 새로움이 섞여 있다. 그 새로움에 적응하며 동시에 아주 익숙한 듯 일을 끝내야만 한다. 나는 자주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시간까지 적당한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믿음이 깨지고, 다시 프리랜서로 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압도한다.


나이 드는 게 두렵다.


촘촘한 나이 서열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실무자보다 나이가 많은, 그래서 일을 시키기 어려운 프리랜서에게 선뜻 일을 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언제까지 외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대체 가능한 노동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전문성이 없이 언제까지나 대체 가능한 인력이 되는 것이 두렵다.


산만하게 일하며 하나의 전문 분야 없이, 이리저리 부유하며 늘 대체 가능한 인력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그렇다고 하나의 전문 분야를 진득하게 연구할 수 있는 성정의 사람이 아니다. 사실 어떤 전문성을 가져야 할지, 가질 수 있을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전문성이 없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하나의 분야를 선택해 전문성을 키웠는데, 사회에서 더는 그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두렵다.


나의 성취가 아주 가벼운 자극에도 쉽게 무너지는 한없이 가벼운 성취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다. 프리낫프리를 계속 만들  있을까? 언제까지 사람들이 찾아줄까?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나는 다시 무로 돌아가는  아닐까.  성취가 한없이 부풀려진 것이라,  진짜 실력이 드러나 비난받고 외면받으면 어쩌지?




매 순간의 선택이 불안한 미래로 나를 내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결과는 모른다. 모를 것이다. 미래가 되어봐야 알겠지. 그게 불안한 미래인지 아닌지. 애초에 불안하지 않은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불안과 두려움을 부추기는지도 모른다. 혹시나. 혹시나 더 좋은 길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지금 하는 선택이 더 좋지 않은 길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핑계를 댈 때가 있다. 이 모든 불안과 두려움은 결국 내가 프리랜서여서 그렇다고. 그러면서 사회 탓을 할 때도 있다. 도대체 이놈의 사회는 어째서 불안한 노동환경에 처한 프리랜서를 구제할 뾰족한 묘수를 내놓지 않는 것인가. 도대체 왜 프리랜서에 대한 이해조차 이토록 부족한가. 물론, 사회가 문제일 때도 많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가 그렇지 않은데 나 혼자 미쳐서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데도 그저 핑계처럼 사회 탓을, 프리랜서 탓을 한다.


사실, 안정적인 조직해 속해 있다고 해서 불안하지 않을 자신은 없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 있다고 쓰려다 잠시 고쳐본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설렘이자 불안이다. 경제와 사회적 관점에서 일시적으로 안전망이 되어주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어느 정도 상쇄해줄 수 있는 정규직 자리가 있으면 그나마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을까? 글쎄, 아닐 것 같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결국 다른 종류의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일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평가에 대한 두려움.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주어진 일을 해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이 모든 두려움은 사실 매일 나를 살아가게 하는 활력이다. 이런 두려움이 없었다면 나는 더 자주 깊이 무기력에 빠질 것이다.


한때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었다. 어떻게 살아내느냐고. 이렇게 불안하고 두려움이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잘 살아내느냐고. 상담할 때도 물었다. 어떻게 살아내야 하느냐고. 이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내야 하느냐고. 모두가 두려움과 함께하고 있었다. 두려움과 불안이 주는 적당한 활력을 느끼며 때로 불안하고 때로 설레는 삶을, 불안과 두려움을 끌어안고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어느 강연에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일은 들어와요. 내가 가만히 있지 않으니까요.”


프리랜서로 일이 들어오지 않을 때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던 것 같다. 사실 당일 강연에 온 어떤 분이 올린 SNS 후기를 보며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이 말은 내가 삶에서 축적한 경험 빅데이터로 나온 선언 같은 것이며, 나에게 거는 주문이다.




내가 가진 두려움을 차분히 적어 내려가다 보니 더 많은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이글거린다. 동시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래도 살아내고 있는 내가 대견해졌다. 불안에 떨면서도 답을 찾고, 지쳐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 순간에도 어떻게 힘을 내야 할지 탐험하며 절대로 멈추지 않는 나를 위로해주고 싶어졌다. 아마 누구든 그럴 것이다. 두려워도 불안해도 어떻게든 힘을 내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나를 지키며 살 것이다. 그들도 나도 모두 고생이 많다.


나를 압도하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다른 힘은 연대다. 나만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같고 또 다름을 인지하며 조금씩 불안과 두려움을 다룰 방법을 깨닫게 된다.


내가 연대하고 싶은 이유.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가진 수많은 두려운 감정들, 그리고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상쇄될 수 있다고 믿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연대하며 힘을 내고 싶다. 프리랜서든 아니든, 우리가 가진 두려움이 교차한다면.




질풍노도 프리랜서로 살아남으며 겪었던 온갖 잡다한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풀어냅니다. 댓글로 소재를 받아요. 궁금한 이야기가 있다면 자유롭게 댓글을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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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은 여자가 해야지'는 일과 여성, 프리랜서의 이야기를 다루는 팟캐스트입니다. 매거진 <딴짓> 박초롱과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이다혜가 공동 진행합니다.


Photo by Hello I'm Nik �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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