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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이구 Jun 06. 2024

독서 오마카세

독서의 요소

오마카세에 가는 이유가 뭘까? 각자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있겠지만, 결국엔 '맛'이다.


애초에 오마카세 집도 식당이기 때문에 '맛'이 최우선이다. 오마카세는 기본적으로 그날에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초밥은 재료의 신선도가 맛의 70~80%를 차지한다고 한다(미스터 초밥왕에 의하면 말이다). 거기에 더불어 샤리의 온도와 맛이 일반 회전초밥집의 것과는 결이 달리한다.


여기에 더불어 오마카세 초밥의 맛을 좌우하는 중요 요소가 있는데 바로 '셰프의 말'이다. 대부분의 오마카세 집에서 셰프가 내 앞에 놓여있는 초밥이 어떤 초밥인지, 어떤 특징이 있는, 간장을 어떻게 찍어야 맛있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먹어야 하는지 등 알려준다. 놀랍게도 이 정보를 듣고 먹을 때와 아닐 때의 맛이 천지차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당연하게도 셰프의 말이 초밥의 맛 자체에 영향을 줄 순 없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셰프의 말이 음식의 맛을 풍부하게 만든다고 추측할 수 있다.


첫째로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세팅 방법을 알려준다. 마치 슬리퍼 대신 축구화를 신고 축구공을 차는 것과 같다. 초밥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둘째로 각 초밥의 어떤 맛을 느껴야 하는지 알려준다. 물감은 섞이면 다 검은색이 되지만 섞이기 전에는 각자의 색이 있다. 노랑, 빨강, 파랑, 초록, 주황... 각 생선의 특징을 모른 채 먹는 것은 다 섞여버린 검정 물감을 먹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특징을 파악하면 노랑도 보이고, 빨강도 보이고, 파랑도 보이기 시작한다.


모든 일에는 효율과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있다. 어떤 일이냐에 따라 다르고 또 개인의 경험과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 수준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나는 이 극대화 방법을 독서활동에도 적용시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독서도 초밥과 마찬가지다. 색이 섞여있다. 알지 못하면 검정 물감이 되어버린다. 기껏 두꺼운 책을 다 읽었는데 "이게 뭔 소리지?",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뭐야?"라는 반응이 나온다면 아까운 시간만 날린 셈이다. 우리가 그렇게 폄하해버려 상처받은 책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떠나기로 했다. 갑작스럽지만 책 한 권 가방에 넣어 여정을 시작한다. 말하자면 독서 유랑꾼이 되기로 했다. 독서 유랑꾼이라니. 유치하기도 하고, 또 어딘가 낭만스러운 단어이다.


각 생선에 맞는 먹는 법, 유의해야 할 특징, 온도, 손질법 등이 있다면 책도 마찬가지다. 각 책에 맞는 독서환경, 음악, 조명, 유의해야 할 특징 등이 있다. 말 그대로 오마카세다. 그리고 어느 환경에서 가장 효과가 극대화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경험이다. 직접 나가야 한다. 


책을 들고 방에서, 카페에서, 길거리에서, 산책로에서, 벤치에서, 산에서, 호수에서, 바닷가에서, 들판에서 나무 그늘 아래서, 땡볕에서 직접 읽어봐야 알 수 있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재즈를 들을지, 클래식을 들을지, ASMR을 들을지, R&B를 들을지 알아야 한다. 조명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어두워야 하는지. 색의 색깔은 하얀색이 좋은지, 주황색이 좋은지 직접 그 빛에 의존하여 글을 읽어야 알 수 있다. 여기까지가 세팅이다.


다음은 정보다. 우리는 작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어떠한 생애를 보냈으며, 어떠한 작품 특징이 있는지, 어떠한 시대에 쓰였는지에 대해 알아야 길을 잃지 않고 수 백 페이지에 걸친 일주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듣기만 해도 상당히 귀찮은 작업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다행인 점은 내가 지금 시간이 여유롭다. 앞으로 3개월 간 쭉 여유롭다. 물론 매일 해야 할 일도 있고 하지만 하루에 한두 시간 투자할 여유와 체력이 있다. 그리고 이런 여유가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른다. 그러므로 기회는 지금이다. 그래서 떠난다. 배낭에 책 한 권을 넣고 문을 열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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