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롭게, 느긋하게, 조금은 게으르게 읽으세요
이제야 겨우 6월인데 벌써 이렇게 더우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비가 조금 내리더니 햇빛은 여름의 푸른빛을 내고 있지만 솔솔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해 딱 좋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평화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날씨에 딱 어울리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입니다. 귀여운 제목과 귀여운 표지에 많은 사람들이 홀리듯이 집어들어들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끝까지 완독 하지 못하고 다시 책장에 꽂아놓는 사람이 많은 책입니다.
이 책은 어떻게 읽어야 맛있게 읽을 수 있을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저자,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실제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코 등 여러 작가들이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나 하면 현재는 바뀌었지만 한 때 일본의 1000엔짜리 지폐의 모델이 된 적도 있습니다.
그가 근대 문학의 시작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전 일본 문학의 어려운 한문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일반 대중들이 말하는 것처럼 작품을 쓰는, 언문일치체로 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무려 100년 전 작품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고 전 연령층에게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첫 문장이 유명합니다.
"나는 고양이, 아직 이름은 없다."
번역본 마다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 아무튼 이 첫 문장은 국내에서도 유명하지만 일본에서는 더욱 유명합니다. 그래서 이 문장을 인용한 패러디를 여러 일본 대중매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중 아마 가장 많은 한국 독자들이 알 법한 것은 포켓몬스터 로켓단의 고양이 포켓몬인 나옹의 "나는 나옹이다옹~"라고 하는 대사일 듯합니다.
사실 책을 읽는 데에 딱히 도움이 안 되지만 그냥 재미있어서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바로 고양이의 시점에서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딘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와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고양이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 모습이 엉뚱하면서도 날카로운 매력이 있습니다.
소설의 대부분은 고양이가 신세를 지고 있는 집의 주인인 구샤미 선생과 그의 친구들과의 대화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자신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등장하는 인물이 많기도 하고 일본식 이름은 한국인 독자가 외우기 힘들기 때문에 "누가 누구더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아주 간략하게 누가 누구인지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샤미 선생: 고양이 '나'가 머물고 있는 집의 주인. 학교 선생.
메이테이: 미학자라고 소개하지만, 그냥 허풍쟁이. 그렇듯한 말로 구샤미 선생을 놀려먹음. (근데 구샤미 선생은 메이테이를 가장 가까운 친구로 생각합니다. 슬프게도...)
간게쓰: 구샤미 선생의 옛 제자. 그의 러브스토리가 소설의 메인 스토리로 이어짐.
가네다 댁: 간게쓰가 사랑에 빠진 여인의 집안. 구샤미 일당과 앙숙.
이 정도만 외우면 적어도 큰 스토리 라인에서 등장인물로 인해 헷갈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누군가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큰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허무주의, 이데아, 인간 사회의 부조리함 등 말이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봤을 땐 그냥 고양이의 눈으로 본 저희의 모습입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 소설이 딱 그런 이야기입니다. 구샤미 선생도, 메이테이도, 간게쓰도, 소설의 주인공이 될 만큼 극적이고 특별한 일을 겪지 않습니다. 다들 한 가지씩 허점이 있는 (혹은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는) 매력적인 사람들입니다. 본인들 딴에는 진지하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지만 고양이 입장에서는 그냥 그 모습까지도 희극입니다.
이 소설은 그냥 일상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루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하는 일기를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죠. 하지만 그 일기의 주인이 고양이고 꽤나 재치 있게 글을 잘 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편안하게 한 챕터 한 챕터 여유롭게 읽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고양이가 캣타워에 올라가 한가로이 자신의 주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듯 말입니다.
이 책은 500페이지가 넘고 중간에 조금 루즈해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특히 구샤미, 메이테이, 간 게 쓰가 대화하는 장면을 보다 보면 그 당시 시대의 일본의 문화나 상황을 잘 모르는 한국 독자입장에서는 "이게 뭔 소리지?" 싶은 내용이 가끔 나옵니다. 그럴 땐 그냥 뛰어넘으세요. 간주점프입니다. 재미있는 고양이 파트로 넘어가도 좋습니다.
이 방식은 실제로 오쿠이즈미 히카루의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에서 소개하는 방법입니다.
이제 제가 괜히 서론에서 날씨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여유로움'입니다. 그래야 더욱 잘 즐길 수 있습니다.
근데 사람이 여유로워지려면 일단 날씨가 좋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같이 햇빛도 잘 들고 시원한 바람도 솔솔 부는 이런 때가 딱 좋습니다. 자연스레 여유로워지고 늘어지고 뭔가 편안한 자세로 몸을 동글게 말아 책을 읽고 싶은 때입니다.
지금 이때를 놓치면 아무래도 가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아, 물론 책은 언제나 읽을 수 있죠. 다만 가장 맛있게 읽을 수 있는 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혹시 이 시기를 놓쳤다면 다음에 가장 맛있게 읽을 수 있는 계절은 겨울이라고 생각됩니다. 떨어지는 눈송이를 따뜻한 집에서 바라보면 또 느긋함과 여유로움이 몸속 어딘가에서 나와 몸을 덮여주기 때문입니다. 아, 이 소설의 시작과 끝의 배경이 겨울이기도 하고요.
혹시 겨울까지 너무 많이 남았나요? 그럼 그냥 할 일이 딱히 없는 주말에 읽어보시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만일 오늘 같은 날씨의, 혹은 눈이 내리는 겨울의 주말이라면 베스트입니다.
아무튼 이 책을 가장 맛있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은 요즘 같은 날씨에 침대든 소파든 본인이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에서 자연광, 혹은 따뜻한 조명과 함께 읽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노래는 느긋하게 쳇 베이커의 재즈 정도가 괜찮은 것 같습니다.
1. 일본식 이름 때문에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위에 간단히 정리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2.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이 뭐지?"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듯 읽어보세요
3. 최대한 본인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가세요.
4. 노래는 쳇 베이커의 재즈를 추천드립니다. 노래만 들어도 여유로워집니다.
5. 할 일 없는 주말에 읽어보세요.
6. 재미없는 부분은 간주점프해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