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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이구 Jun 19. 2024

명상록 오마카세

점을 찍어 드세요

그렇습니다. 또 돌아왔습니다. 명상록입니다. 아마 이전부터 제 글을 보신 분들은 질리도록 들었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입니다. 제가 이 책을 계속해서 꺼내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먼저 단순히 제 최애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제 주변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죠. 저 사람은 어떤 아이돌을 좋아해. 저 사람은 어떤 음식을 좋아해.처럼 제 주변 사람들은 저를 '명상록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2. 명상록은 비교적 읽기 쉽습니다. 여기서 '비교적'이란 다른 고전인문책들과 비교했을 때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소설, 특히 현대 소설에 비교하면 여전히 어렵고 따분한 책일 겁니다. 제가 고전인문을 읽기 시작한 것은 20살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형이상학, 자기 신뢰, 죽음에 이르는 병, 죄와 벌, 자유론 등 여러 책을 읽었지만 당시 제가 제대로 이해한 책, 아니 그중 1 할 조차 제대로 이해한 책이 몇 권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명상록 만큼은 달랐습니다. 다른 책들에 비해 이해하기 쉬웠고 분량도 비교적 적었기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 마지막으로 명상록은 보다 현실적인 조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고전인문은 솔직히 우리의 현실세계와는 조금 동떨어진, 혹은 당장 내 인생과 그다지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명상록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당장 오늘이라도 써먹을 수 있는 조언들을 해줍니다.


서론은 되도록이면 짧게 하려 했지만 명상록 마니아의 기질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아주 긴 서론을 적어버렸습니다. 할 이야기는 더욱 많지만 이쯤에서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명상록을 잘 먹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알아두어야 할까요?


1. 저자와 배경


명상록의 저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고대 로마 제국의 전성기 시절을 뜻하는 '팍스 로마나' (현대의 최강대국인 미국을 뜻하는 팍스 아메리카나가 여기서 파생된 단어입니다.)의 마지막 황제이자 로마의 다섯 현명한 황제, 즉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하지만 당시 로마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전염병이 돌아 전체 인구의 1/4~1/3이 사망했고, 지진과 기근, 이민족의 칩입, 내부의 반란까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치를 해야 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많이 답답하고 억울했을 겁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철인왕이자 오현제라고 불리던 마르쿠스조차 위와 같은 상황 때문에 대중들에게 욕을 많이 먹은 것 같습니다. 명상록을 보면,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도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행동에만 떳떳하면 된다. 역사가 기억해 줄 거다.라는 식의 내용이 이따금 씩 등장합니다. 결론적으론 그의 말대로 되었습니다. 그는 역대 최고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니 말입니다.


선한 일을 하고 욕을 먹는 것이 제왕의 일이다. - 명상록


그는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전쟁터에 나가 전투를 지휘했습니다. 그리고 명상록은 그 전쟁터에서 쓰인 책입니다. 밤에 자기 전 마치 일기처럼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언제 죽을지 모르니 자신의 지혜를 후대에 남기기 위한 일종의 유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2. 주제


어느 책이나 그렇겠지만, 특히 고전인문에서는 주어진 길을 잃지 않고 따라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내용이 어렵고 다소 난해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주제가 무엇인가 아는 것은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 아주 중요합니다.


먼저 이성입니다. 당연히 남자와 여자가 아닌 Ration의 이성입니다. 마르쿠스는 이성을 "자신이 무언가를 지배하는 힘"으로 간주합니다. 즉 이성의 주목적이 "지배" 혹은 "컨트롤"입니다. 예를 들어, 욕구를 지배하고 감정을 지배하고 자신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이성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배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바로 두 번째 주제인, 미덕입니다. 정해진 도덕과 윤리에 의해 이성을 사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싫어하는 사람을 한 대 때리고 싶어도 참는 것이 이성이지, 한 대 때리는 건 이성이 아닙니다. 미덕이 없는 이성은 제대로 된 이성이 아닌 겁니다. 참고로 마르쿠스는 금욕주의로 유명한 스토아 철학의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는 운명입니다. 마르쿠스의 말을 빌리자면 '우주'입니다. 마르쿠스는 우주는 어떠한 섭리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섭리는 선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허무맹랑한 헛소리로 들리겠지만 나름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니 마음을 열고 그의 주장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아무튼 그는 기본적으로 운명론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지배할 순 없으니 내가 지배할 수 있는 '나 자신'을 지배하는 것에 집중하자. 가 그의 주된 주장입니다.


명상록은 다양한 주제를 관통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명상록을 읽는데 길을 아주 헤매진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3. 점을 찍어 드세요


명상록은 총 12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안에 짧은 문장 혹은 문단의 절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쉽게 성경의 구성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명상록은 마르쿠스가 자신의 철학, 깨달음, 교훈 등을 한 절, 한 절 써 내려간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책에는 기승전결이 없이 그냥 매 순간이 진액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이라이트 모음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줄을 긋거나 형광펜으로 중요한 부분 혹은 마음에 닿은 부분을 표시하면 책이 아주 더러워지고 난잡해질 겁니다. 모든 문장이 중요한 문장이기 때문이죠.



제가 선택한 방법은 위의 사진처럼 각 절 좌측 상단에 작은 점을 찍은 겁니다. 신경 쓰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아 여러 번 읽어도 방해가 되지 않고 또 나중에 해당 부분을 찾을 때도 생각보다 성가시지 않습니다. 점 있는 부분을 찾으려고 마음먹으면 또 잘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진으로 보니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작아 보이긴 하군요. 지금 생각난 또 다른 방법은 형광펜으로 몇 절인 지 나타내는 숫자에 하이라이트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말이죠.



4. 가지고 다니면서


명상록은 말했듯이 기승전결이 없고 모든 문장과 문단이 하이라이트입니다. 소설은 물론이고 철학책처럼 앞의 설명이 있어야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책이 아닙니다. 그냥 아무 때나 펼쳐서 읽어도 이 전에 무슨 내용이었더라? 의문 없이 그냥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들고 다니면서 가끔 씩 펼쳐서 읽는 책으로 아주 안성맞춤입니다.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점심시간에 잠시, 화장실에서 볼일 보면서 잠시, 읽기 딱 좋은 그런 책입니다.


그렇게 들고 다니면서 읽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만 표시해 놓고 나중에 집에서 혹은 카페에서 자신이 표시해 둔 부분만 한 번 쭉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5. 1권


명상록에서 가장 하차하는 사람이 많이 발생하는 부분이 바로 1권이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냥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계속 누군가에게 뭘 배웠고 또 뭘 배웠고 또 뭘 배웠고 이런 말이 반복된다. 아니 그냥 1 권 전체가 이런 내용입니다. 문제는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2권만 되어도 정말 우리에게 유용하고 필요한 교훈을 알려줍니다. 사실 1 권에서도 얻을 것이 많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드물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1 권만 딱 버티고 읽어봅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1 권의 분량이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아마 마르쿠스도 이런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장난스러운 추측도 해봅니다.



명상록 독서 포인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오현제 중 한 명이고 명상록은 전쟁터에서 쓰인 책이다.

명상록의 주제는 이성, 미덕, 그리고 운명이다. 이 주제들을 생각하면서 길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자.

명상록은 하이라이트 모음집이다. 모든 문장에 줄을 칠 순 없으니 작은 점으로 표시해 두자.

명상록은 기승전결이 없다. 들고 다니다가 한 번씩 꺼내 읽어보자. 앞의 내용이 기억이 안나도 전혀 상관없다.

1권은 지루하다. 그래도 참고 2권까지 가보자. 다행히 1권이 그리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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