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그랑시의 시민이었다
이제 막 장마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며칠간은 계속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살아가야겠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책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무 고전 소설로만 오마카세를 준비하지 말자. 고 늘 다짐하지만 어째선지 계속 고전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다음 오마카세는 반드시 고전이 아닌 다른 책으로 준비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알베르 카뮈의 작품들은 고전인문에서도 읽기 쉬운, 입문하기 쉬운 책으로 유명합니다. '고전'이라는 타이틀이 무섭게 느껴지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면 그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대 소설보다야 읽기 어렵고 난해하긴 합니다. 그래도 고전은 고전대로의 맛이 있습니다.
혹시 군대에 다녀오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군복무를 경험하신 분들이라면 익숙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부조리'입니다. 저희 부대에서는 부조리를 일삼는 선임을, 혹은 동기를 (보통 장난스러운 맥락에서) '부조리킹'이라고 불렀습니다. 어쩌다가 그런 단어가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입에 착 감기는 어감이 특징인 단어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부조리킹은 군대 선임이 아닌 알베르 카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 물론 그가 후임들을 괴롭히는 군대 선임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카뮈가 자신의 작품에 담고자 하는 메시지가 바로 '부조리'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부조리는 '이 세상이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려운 문장처럼 보이지만 간단한 예시를 드리자면, 어린아이가 산타클로스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허망해하는 것이 부조리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이 소설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선 반드시 알아두셔야 할 개념입니다. 바로 소설 속 나오는 페스트는 단순한 질병이 아닌 '부조리'를 의미합니다. 카뮈가 살던 시대는 기존 기독교 중심의 세계관이 무너지던 시기입니다. 말하자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산타클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조리는 마치 페스트처럼 개인에서 개인, 개인에서 사회, 사회에서 국가로 전염되었습니다.
"지구는 우주에 떠다니는 먼지고, 우리는 그저 그 먼지에 기생하는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야."라는 허무주의가 사람들을 감염시킬 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설명을 해줍니다.
이러한 부분을 의식하면서 읽으시면 소설을 읽으실 때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면서 더욱 깊은 맛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오마카세처럼 페스트에도 등장인물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프랑스식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으면 누가 누구인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간단히 외울 수 있도록 정리를 해드리겠습니다.
리유(리외) = 의사
타루 = 보건대를 조직한 리유의 친구
랑베르 = 신문기자
그랑 = 공무원, 전처에게 편지를 쓰는 사람
파늘루 = 신부
코타르 = 밀수업자
이 정도가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이름과 직업으로 정리한 이유는 소설 중간중간 등장인물을 지칭할 때 그들의 이름이 아닌 직업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만일 소설에서 "의사가 ~했다."라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다면 리유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페스트는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와 묘사가 이어집니다. 소설 후반부에는 잠시 빛이 보이나 싶지만 억울하고 슬픈 상황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밝고 즐거운 분위기의 노래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잔잔한 클래식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 평화로운 분위기조차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것이 없을까? 고민하던 도중 문득 인터스텔라의 OST가 생각이 났습니다. 우주라는 불가항력적인 존재에 맞서는 인터스텔라의 노래가 어쩌면 마찬가지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질병과 맞서는 페스트와 어울릴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는 나름 만족스러웠습니다. 긴장되고 암울한 분위기, 그럼에도 끝까지 자신의 사명을 지키며 페스트에 저항하는 등장인물들과 무척 잘 어울렸습니다. 유튜브에 인터스텔라 사운드트랙을 검색하셔서 들으시면서 소설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몰입이 훨씬 잘 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터스텔라의 사운드트랙이 너무 드라마틱해서 집중이 잘 안되신다면 어차피 장마철이니 그냥 빗소리를 들으면서 독서하시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장소는 어디든 괜찮았습니다. 기억나는 곳이 있다면 제가 사는 곳 근처 카페에는 테라스가 놓여져 있는데 거기서 읽었을 때 제법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도서관은좋은 선택이라고 보긴 어려웠습니다. 도서관에는 학생들도 많고 청년들도 많아서 너무 활기찬 분위기라고 할까요? 소설 속 분위기와는 그렇게 매치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적은 카페는 괜찮았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집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독서하는 것도 나름 괜찮았습니다.
페스트를 읽으시다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의 시절입니다. 그리고 소설에서 묘사된 사람들의 행동은 놀랍게도 팬데믹 시절 우리들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팬데믹 때와 마찬가지로 확진자, 그리고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들은 격리에 들어가며 멀리 사는 가족과는 직접적으로 만날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팬데믹 시절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비교를 하며 읽으시면 더욱 몰입하시면서 읽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소설 속 페스트는 단순 질병이 아닌 '부조리'를 의미합니다
등장인물과 그들의 직업을 알아두면 독서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인터스텔라 사운드트랙과 소설의 분위기가 정말 잘 맞습니다
페스트의 내용과 팬데믹 시절 우리의 경험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면 더욱 몰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