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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이구 Jul 10. 2024

불안의 서 오마카세

반드시 종이책으로

이번에 소개드릴 책은 제가 2024년 상반기까지 읽은 책 중 가히 가장 좋았던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읽자마자 이 책에 빠져들어버렸고, 문장에 빠져버렸으며, 심지어는 눈물까지 짓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오늘의 독서 오마카세는 바로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서'입니다.



1. 배우 한소희의 PICK


에세이이자 산문집인 불안의 서는 사실 한국에서는 그리 주목받지 못한 책이었습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출생지인 포르투갈에서는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작가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불안의 서는 8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어서 더욱 부담스럽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서점에서 조차 쉽게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완판 되어버린 상태입니다. 배우 한소희 씨가 어느 인터뷰에서 불안의 서라는 책에 대해 언급을 한 것이 그 계기였습니다.


셀럽의 말 한마디로 지금까지 묻혀있던 귀한 보석 같은 책이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배우 한소희 씨가 추천하는 책 '불안의 서', 그것만으로도 읽을 이유가 충분히 생겼습니다.


2. 불안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의 서'를 '불안에서'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음이 비슷한 탓이겠지요. 이에 유의해야겠습니다.


제목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면, '불안의 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간혹 '불안의 책'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버전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 불안의 서 읽어봤어?"

"아니, 불안의 책은 읽어봤는데..."


같은 민망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책의 내용은 제목처럼 불안에 관한 책입니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인간은 매 순간 불안을 느끼며 오직 잠을 자고 있을 때만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3.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에서는 자신을 '소아레스'라고 지칭합니다. "어? 분명 저자는 페르난두 페소아인데?" 하실 수 있습니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자신을 여러 인격체 (페르소나)로 구분 짓습니다. 이번 불안의 서에서의 그의 페르소나는 바로 소아레스입니다. 소아레스와 페르난두는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인격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책 속의 소아레스는 한 살에 어머니를 잃고 세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고 묘사되지만, 실제 페르난두의 어머니는 페르난두 가 37살 때 죽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자살이 아닌 결핵으로 페르난두가 5살 때 죽었다.


제가 이 책과 사랑에 빠진 이유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문장력 때문입니다. 그의 문장은 정말 예민하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우면서 동시에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 책은 '불안'이라는 주제에 대한 책을 읽은 싶으신 분들에게 당연히 추천드립니다. 하지만 페르난두 페소아의 아름다운 문장을 읽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


백문불여일견. '불안의 서' 문장 몇 줄을 공유하겠습니다.



나는 도시의 거리에 고인 긴 여름 저녁의 고요를 사랑한다.


내 심장과 영혼을 조여오는 거대한 피곤을 느낀다. 한번도 나 자신이었던 적이 없는, 나라고 불리는 어떤 인간이 슬픔을 느낀다.


나는 삶이라는 무덤에 누워있다. 일어서려는 몸짓은 꿈속에서조차 취하지 않는다.


밤새도록, 조금도 쉬지 않고 비가 요란하게 쏟아졌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불면의 밤 내내 차가운 비의 단조로움이 유리창을 두들겨댔다.



4. 무조건 소장


저는 '불안의 서'라는 책을 전자책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200 페이지까지 읽고 난 뒤 저는 독서하기를 멈춰버렸습니다.


"이 책은 반드시 종이책으로 읽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이렇게 강하게 종이책으로 소장하고픈 욕구가 크게 들었던 책은 '불안의 서'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계속 들고 다니며 아무 곳이나 촤르륵 종이를 넘겨 펼쳤습니다. 그렇게 한 텍스트를 읽고 (총 481개의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시 책을 덮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면 다시 책을 집어 들고 무작위로 펼쳐 거기에 나온 텍스트를 읽습니다. 마치 시집처럼 말이죠.


이 책은 기본적으로 에세이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시집을 읽듯 읽을 수 있습니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원래 시인이고 그의 에세이조차 시처럼 아름답기 때문에 문제없습니다.


5. 장소와 음악


이번 오마카세에서 장소 추천은 없습니다. 어디에서 읽든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늘 가방에 들고 다니시다가 바쁜 일상에 작은 갈피가 생기시면 가방에서 꺼내어 한 텍스트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너무 신나는 팝 음악만 아니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불안의 서 독서 포인트


배우 한소희 씨의 PICK, 뭐 더 이유가 필요할까요?

'불안에서'가 아닌 '불안의 서'입니다. '불안의 책'과 '불안의 서'는 같은 책입니다.

전자책도 좋지만 이 책만큼은 반드시 종이책으로 소장하시길 바랍니다.

에세이가 아닌 시집을 대하듯이 대해주시길 바랍니다.

늘 휴대하고 다니시다가 잠시 여유가 생길 때마다 읽으면 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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