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정신을 놓은 듯, 거의 힘도 들이지 않고, 거의 기계적으로
그는 도끼를 완전히 꺼내 양손으로 치켜들고, 거의 정신을 놓은 듯, 거의 힘도 들이지 않고, 거의 기계적으로 노파의 머리를 도끼뿔로 내리쳤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문장입니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가 전당포 주인 노파를 살해하는 장면을 묘사한 문장이다.
하지만 이 문장은 단순한 살해현장의 묘사를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라스콜니코프는 분명 자신의 의지로 노파의 머리에 도끼를 내리쳤지만, 동시에 전혀 자신의 의지로 그러고 있지 않다. 그는 마치 인간실격의 요조처럼 운명에 떠밀리는 인간이다. 라스콜니코프는 지금 당장 돈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었고, 노파에게 거의 사기당하듯이 귀중한 물건은 싼 값에 맡기게 되었고, 이렇나 상황 속에서 그는 노파를 살해하고 그녀의 재산을 빼앗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마침 노파가 그녀의 순진한 동생을 착취한다는 이야기와 그런 악녀는 죽어도 마땅하다는 이야기, 그녀를 죽이는 사람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그리고 또 우연히 노파가 홀로 집에 있는 시간과 날짜도 알게 된다.
왜 하필 지금, 그가 노파로부터 자기 생각의 단초를 얻자마자 노파에 대한 대화를 듣게 된 걸까?...(생략) 정말로 여기엔 어떤 숙명이, 계시가 있는 것만 같았다.
이 모든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라스콜니코프는 거의 정신을 놓고 기계적으로 노파를 살해한 것이다.
이 문장은 인간 이성의 취약함을 여실 없이 보여준다. 라스콜니코프는 법대생으로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위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 또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상황에서는 이성이 아닌 운명에 자신의 몸을 맡기게 된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두어 달 전,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인도에 조금씩 움직이는 검은 물체가 있었다. 그게 뭔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니 쓰러져있는 까마귀였다. 까마귀의 깃털과 부리, 그리고 힘 없이 움찔거리는 날개까지 보았다. 하지만 날개가 있어야 할 위치에 부리가 있고, 다리가 있어야 할 위치에 날개가 있는 등 아주 기괴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주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니 그건 그저 검은 비닐봉지였다. 그 순간 나 자신이 너무나 바보 같아 허탈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큰 깨달음을 얻었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의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에서 우리 뇌는 우리의 생각을 속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경험하면, 우리의 우뇌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거짓말(허상, 자기기만 등)도 지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뇌의 거짓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당사자는 실제로 까마귀의 깃털과 부리와 날개까지 보게 되니 말이다.
우리는 이성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아주 비이성적인 존재다. 아주 비이성적인 이야기도 이성적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배워왔다.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나는 이 말을 뒷받침할 증거를 부단히 찾아봤지만 (…) 운이 없었는지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세계가 더 광기에 빠져드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점을 맹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신념을 따르는 사람을 보면 비이성적인 사람, 바보라고 생각한다.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이념적으로 특히 더욱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나는 비닐봉지를 까마귀 혹은 고양이 등으로 착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말이다. 또한 다른 사람이 비닐봉지를 까마귀로 착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는 점을 말이다.
우리의 신념과 믿음을 다시 한번 차근차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태어나고 자란 환경, 부모의 영향, 친구의 영향, 시대정신 등에 어쩔 수 없이, 마치 운명처럼 특정한 행동을 취할 때가 많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무엇을 믿고, 따르고, 행동하는지 그 근거를 찬찬히 생각해 보자. 운명에 의해 거의 정신을 놓고, 힘도 들이지 않고, 기계적으로 믿고, 따르고, 행동하진 않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하면 완전한 나의 의지로, 이성으로 신념과 믿음으로 재무장할 수 있다.
운명에 휩쓸려 따르는 믿음과 신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치고 후회하고 고통받는가? 또한 나의 의지로 따르는 믿음과 신념이어야 더욱 가치 있고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는 도끼를 완전히 꺼내 양손으로 치켜들고, 거의 정신을 놓은 듯, 거의 힘도 들이지 않고, 거의 기계적으로 노파의 머리를 도끼뿔로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