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네를 사랑하고 있어. 자네도 내게 지지 말고 날 사랑해줘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신뢰할 수도 없고 그 인격을 따라 살 수도 없다
알랭 드 보통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불안에는 "사랑결핍"이라는 챕터가 있다. 이 챕터의 주요 메시지는 간단한다: 우리는 사랑을 받기 위해 살아간다. 알랭 드 보통은 그 이유를 위의 문장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갓난아기 시절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한다. 혼자서는 기어 다니지도 먹지도 못하는 인간의 아이는 무조건적인 사랑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조건적인 사랑과 맞닥뜨리게 된다. 알고 보니 당연한 줄 알았던 무조건적 사랑은 아주 특이 케이스였고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랑은 조건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이에 우리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어떤 모습이던 우리를 사랑해 주던 부모님과 다르게 저들은 나의 모습을 싫어한다. 집에서는 독재자처럼 행동했던 아이들이 밖에서 또 다른 독재자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은 사회화에서 필수부 가결한 요소이지만 여전히 마음 아픈 과정이다. 세상의 주인공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 권력 다툼에 밀려 왕좌에서 내려가는 늙은 왕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러한 사회화 과정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걸까? 그냥 쭉 독재자로, 내 멋대로, 나 생긴 대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말이다. 우리는 그만큼 사랑에 고픈 것이다. 왕좌에서 내려올 만큼. 나 자신을 버릴 만큼, 우리는 사랑이 필요하다.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벗어난 우리는 극심한 사랑결핍에 시달린다.
왜 우리는 그토록 사랑에 목매는 걸까? 사랑은 곧 내 존재의 긍정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사랑은 내가 이대로 나 자신으로 존재해도 괜찮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증거다. 사랑을 받는 것은 곧 내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닌가? 내가 뭘 잘못했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그대로 머물 수 없다. 무관심은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고문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사랑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변화시킬 수 없다면 우리는 사회적 죽음 혹은 육체적 죽음을 선택한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신뢰할 수도 없고 그 인격을 따라 살 수도 없다
이 모든 이야기가 너무 슬프지 않은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우리의 운명이다. 만성적 사랑결핍에 시달리는 사회적 동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이 운명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아니, 사실 있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 대한 다섯 가지 해답을 내놓는다:
1. 철학
2. 예술
3. 정치
4. 기독교
5. 보헤미아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실 이번 거인의 문장의 주제는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신뢰할 수도 없고 그 인격을 따라 살 수도 없다
가 아니다. "거인의 문장" 시리즈를 자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에피소드의 주제는 부제에 써놓는다. 그리고 이번 에피소드의 부제는 아래와 같다.
나는 자네를 사랑하고 있어. 자네도 내게 지지 말고 날 사랑해줘
슬프고 비참한 이야기를 여기까지 들어준 여러분에게 주는 나의 서프라이즈 선물이다. 이 문장은 소설 인간실격으로 유명한 다자이 오사무가 자신의 고향 친구 곤 칸이치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번 거인의 문장의 주인공이다. 다자이는 이어서 이렇게 썼다:
필요한 것은 지혜가 아니었어. 수색도 아니었다. 포즈도 아니었다. 애정이다. 푸른 하늘보다 깊은 애정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지지 말고 사랑해야 한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푸른 하늘보다 깊은 애정이니 말이다. 애정을 얻기 위해선 먼저 발 벗고 나서서 사랑해야 한다.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장점. 단점. 무엇하나 빠뜨리지 말고 사랑해 주자.
폭력, 거짓, 증오, 분노는 우리 본능에 있다. 하지만 사랑은 자동으로 물려줄 수 없다. 오직 사랑만큼은 교육을 통해 물리는 유산이다. 우리가 먼저 사랑해서 사랑을 알려주어야 우리도 사랑받길 기대할 수 있다.
모든 이야기의 결론이 결국 "먼저 다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주자" 같이 진부하고 허무맹랑한 소리라니 어이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이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있는가? 결국엔 서로가 사랑해야 이 모든 문제가 풀린다. 서로가 사랑하려면 일단 누군가가 먼저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수 있다. 낯간지러워서 먼저 다가가지 못할 수도 있다. 내 애정에 상대방이 응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이건 우리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잊지 마라.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신뢰할 수도 없고 그 인격을 따라 살 수도 없다
나는 자네를 사랑하고 있어. 자네도 내게 지지 말고 날 사랑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