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다.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다. 개인의 의식적 삶에서 덜 구현될수록 그 그림자는 오히려 더 두껍고 짙어진다.
칼 융의 정신분석학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의 이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칼 융의 정신분석학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바로 페르소나와 그림자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페르소나는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사회적 모습이다. 반면 그림자는 무의식 속에 숨어든 비사회적인 모습이다.
예를 들어, 웃어른을 보고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은 페르소나다. 진상 손님이 와도 억지로 웃으며 대응하는 것도 페르소나이다. 이는 우리의 의식으로 자신을 컨트롤해야만 나올 수 있는 사회적인 행동이다. 반면, 화를 내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등의 행위는 우리의 그림자에 속한다. 우리는 이러한 특성을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의식적으로 억제한다.
현대사회를 보면 점점 페르소나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을 목격한다. 단순히 사회생활을 할 때만 페르소나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사적인 영역에서도 우리는 그림자를 억누르는 것을 강요받는다. 이제는 게시물, 댓글, 친구와의 메시지, 심지어는 어떤 콘텐츠를 소비할지에도 마치 주변에 눈이 달린 것처럼 행동한다. 옷도 마음대로 입지 못한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유행에 맞추느라, 옷 한 벌 입는데도 정신이 없다.
사적 공간에서도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딱히 뭐가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뭔가 답답해 보이긴 하지만 사회가 점점 도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 융의 정신역학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다. 개인의 의식적 삶에서 덜 구현될수록 그 그림자는 오히려 더 두껍고 짙어진다.
무슨 말일까? 정신역학이라는 것은 간단하다. 억누른 특성은 어떻게든, 언젠가는 발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의식적으로, 건강한 방법으로 발산하지 않는다면 엉뚱한 방향으로 발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한동안 악몽으로 괴로웠던 경험이 있다. 그 악몽이란 내가 꿈속에서 사람들을 해치고 다는 것이었다. 주먹으로, 칼로, 총으로, 괴물을 이용해서 등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말이다. 그 꿈속에서 나는 통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잠에서 일어나면 형용할 수 없는 찝찝함과 불쾌함이 느껴졌다. 그런 꿈을 몇 개월 동안 계속 꾸었다. 나는 무언가 심리적인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답을 융의 정신분석학에서 찾았다. 답은 아래와 같았다.
개인의 의식적 삶에서 덜 구현될수록 그 그림자는 오히려 더 두껍고 짙어진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여러 번 밝혔듯 나는 스토아 철학에 큰 영향을 받았다. 스토아 철학에서 가장 강요하는 것은 바로 감정의 통제다. 그리고 나는 최대한 이를 수행하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아마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 것 같았다. 나는 나의 내면에 쌓여있는 엄청난 양의 분노를 깨닫고 적잖이 충격받았다.
평소 "괜찮아 이 정도는 넘어갈 수 있지." "이 정도는 내가 참아야지." 넘어간 수많은 문제들이 내 내면에 커다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것들을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이 정도 일에 이렇게 타격을 받았다고?" 같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인정하고 내면의 분노를 건강한 방법으로 분출시킬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악몽은 멈추었다.
나는 지금 사회를 보며 금방이라도 이 페르소나의 풍선이 터지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개인의 개성을 억누르고 전체에 맞춰가길 바라는 풍조가 심하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내면에 얼마나 큰 그림자 똬리가 자리하고 있을지 걱정이다.
우리는 성인도 아니고, 철인도 아니고, 기계도 아니다. 그림자는 누구에게나 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우리는 가면(페르소나)을 쓰고 그림자를 억누른다.
자신을 돌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행위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자신 내면에 과적되어 있는 그림자를 인정하고, 그것을 건강히 발산시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다. 개인의 의식적 삶에서 덜 구현될수록 그 그림자는 오히려 더 두껍고 짙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