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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이구 Sep 28. 2021

'오징어 게임' 속 숨겨진 요소들

언더도그마와 기독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자극적이고 신선한 내용과 배우들의 기막힌 연기의 합작이다. 미국 넷플릭스에서는 처음으로 1위를 찍은 한국 드라마이다. 간단한 줄거리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양의 돈을 대출받은 사람이 총 상금 456억 원을 얻기 위해 의문의 게임에 참가를 한다. 게임들은 현 기성세대들이 어렸을 때 자주 했던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구슬치기 등이다. 하지만 각 게임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죽게 된다. 한마디로 목숨을 건 게임이다.


필자는 이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봐서 하루 만에 모든 에피소드를 시청했다. 시청하면서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 또는 숨겨진 요소들을 한번 정리해보았다.


1. 언더도그마

이 드라마는 언더도그마, 혹은 언더독 현상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 언더도그마란,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라는 인간의 무의식에서 나타나는 근거 없는 믿음이다. 현대사회에 맞추자면 '소수자는 선하고 다수자는 악하다'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오징어 게임 속 등장인물 중 선한 역할을 맡은 캐릭터들은 여자, 외국인 노동자, 노인(크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여고생 등이 있다. 반면 악한 역할을 맡은 캐릭터들은 남자, 특히 기성세대의 남자들, 돈 많은 외국인, 종교인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기독교인 등이 있다. 상당수의 창작물이 언더도그마를 이용한 캐릭터의 분배를 따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에서 유독, 이 언더도그마 현상이 잘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많은 창작물에서 언더도그마를 이용해서 캐릭터 분배를 할까? 이유는 간단한다. 언더독 현상은 거의 모든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시청자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창작물에서 선한 캐릭터(hero) 보다 중요한 것은 악한 캐릭터(villain)이다. 왜 우리가 이 빌런들을 증오해야 하는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왜 이들을 죽이는 것은 정당한지, 관객들에게 충분한 설명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언더도그마 효과를 이용하면 이 부분이 상당히 쉬워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강자는 악하다' 굳센 믿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빌런을 다수자, 혹은 강자로 지정하면, 창작자는 이 빌런들에 대한 증오심을 더욱 쉽게 이끌어낼 수 있다.


언더도그마를 이용한 창작물은 이런 이점들이 있지만, 당연하게도 '이유 없는 증오'를 더욱 가중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언더독 자체가 우리의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방해물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창작물은 언더독 현상을 오히려 가중시킨다. 창작물은 창작물로 봐야 하는데, 심하게 몰입한 관객들은 현실세계에서도 해당 집단에 대한 증오심이 커진다. 또한, 이 언더독 효과를 이용한 창작물이 너무 많다 보니, 정말 '해당 집단이 악하다'라는 프레임, 이미지, 스트레오 타입이 증폭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 언더도그마 현상은 창작물을 통해서도 증폭되지만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서도 증폭된다. 미디어와 언론은 자극적인 소재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집단이 평소 100개의 선행을 했다. 하지만 1개의 문제 되는 행동을 저지르면 언론에서는 그 1개의 사건만 이야기한다. 비슷한 예로 자본주의의 좋은 점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언론과 미디어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자본주의 폐해들 뿐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점점 '자본주의'라는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게 된다.


2. 기독교에 대한 비판


오징어 게임에서는 유독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온다. 이 드라마의 주제가 '죄는 무엇으로 용서되는가?'이고 기독교는 '용서'의 덕목이 강조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이 용서에 대해서 강조한다. 회개기도를 올리면 용서가 되는가? 돈으로 용서가 되는가? 무엇으로 용서가 되는가? 이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이 드라마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기독교인이 나온다. 첫 번째는 계속해서 사람을 죽이고 게임에서 생존해나가는 이 인물은 자신의 죄가 더 이상 신에게 용서받을 수 없고, 우리는 모두 지옥에 갈 거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인이다. '신조차 자신의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인이다.


또 다른 기독교인은 등장인물인 지영의 아빠이다. 지영의 아빠는 목사이다. 하지만 자신의 친딸을 강간하고 아내를 구타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렇게 윤리적으로도, 교리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행동을 저지른 목사는 회개기도를 올린다. '어떤 죄를 짓던 회개기도 한 번으로 쉽게 용서받는다'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기독교인 캐릭터는 영화 '밀양'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기독교에서는 정말 강간하고 살인하고, 폭력을 행사해도 기도 한 번으로 회개가 된다고 말할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이다. 일단, 기독교 관련 서적도 읽고 성경도 읽어본 사람으로서 감히 말하자면 기독교의 용서는 자비롭다 못해, 자칫하 값싼 용서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지어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도 알지 못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첫 번째는 죄의 금기이다. 기독교는 자비로운 용서를 강조하지만, 동시에 죄의 무서움도 강조한다.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만 해도 창녀(죄인)는 그 자리에서 돌을 던져 죽였다. 그 전에도 죄인에 대한 처벌은 가혹했다. 하지만 그때, 예수는 아주 유명한 말을 남긴다. '너희 중 죄 없는 자만이 돌을 던져라', 그리고 그 창녀에게 속죄의 기회를 주었다. 중요한 것은 창녀에게 계속 죄를 지으며 살아라 하고 면제부를 준 것이 아니라 속죄할 기회, 즉 착하게 살 기회를 준 것이다.

이렇게 신약성서에서는 용서와 기회를 강조하고, 구약성서에서는 죄인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신약성서와 구약성서 둘 다 강조하는 것은 일단 '죄를 짓지 마라'이다. 예수도 성전에서 상거래를 하는(그 당시 성전에서 상거래를 하는 것은 죄였다) 무리에게 화를 냈다. 심지어는 예수를 구하기 위해 칼을 휘두른 베드로에게도 화를 내며 하지 말라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죄는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다. 심지어는 '눈이 죄를 지으면 차라리 눈을 빼버려라'라고 직접 말할 정도로 죄의 금기, 죄의 무서움을 강조했다.


니체는 '역사상 진정한 기독교인은 단 한 명뿐이었고,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했다. 성경은 '강간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불륜을 하지 마라'라고 적혀있지, '강간하고 회개하라', '살인하고 회개하라', '불륜하고 회개하라'라고 적혀있지 않다. 하지만 현대의 많은 기독교인은 이 용서를 마치 자신의 면제부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용서받기 전에 먼저 용서해라'이다. 예수는 '네가 네게 죄를 지은 이를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너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네가 다른 이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이 다른 사람은 용서해줄 생각은 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은 용서받았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애초에 이 구절 자체를 모르는 기독교인들도 상당수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살인했을 때, 그 사람을 용서해줄 마음이 없으면 나도 살인을 저질러도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강간했을 때, 그 사람을 용서해줄 마음이 없으면, 나도 강간을 저질러도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교리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그렇듯, 오징어 게임 속 지영의 아빠도 이 부분은 완전히 무시하고 오직 값싼 용서만을 찾아다닌 인물이다.


오징어 게임은 이렇게 기독교인이지만, 기독교 교리는 따르지 않는 사람들, 키르케고르가 주장한 실존적으론 기독교인이 아닌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러 종교, 사상, 이념 등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종교, 사상, 이념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정말 소수이다. 더군다나 전 세계 27억 명이 믿는 교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순진한 것이다. 언제나 문제는 믿는 사람, 추종자에게 있다. 종교, 사상, 이념을 자신의 목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왜곡시킬 때 발생한다. 기독교,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 환경주의 등 거의 모든 것들이 그런 식으로 이용당했다.


사실 언더도그마 현상, 기독교 비판과 더불어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기독교 비판 파트에 성경을 레퍼런스 하느라(자료 조사하느라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분량이 너무 많아져서 자본주의에 관한 내용은 기회가 되면 다음에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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