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성장으로

니체의 연애 상담 해설

by 이다이구

이 글은 <니체의 연애 상담>의 해설입니다. 먼저 이전 에피소드를 읽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망치를 든 철학자


1844년 10월 15일 독일 연방, 한 개신교 목사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당시 프로이센의 국왕이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이름을 따와 프리드리히 니체라고 지어졌습니다. 그가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와 생일 같았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어렸을 적 목사였던 자신의 아버지를 무척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니체가 5살이었을 때 신앙심 깊은 그의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사망했습니다. 어쩌면 이 사건이 훗날 그의 허무주의의 토대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토록 신앙심 깊은 목사의 돌연사는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자란 어린 니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니체는 허무주의적 사상을 펼쳐 당시 낡고 타락한 기독교와 도덕 등 기존의 가치들을 모조리 시험해 보고 의심하고 도전했습니다. 벽 안이 비었는지 꽉 차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망치로 퉁—퉁— 때려 시험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니체는 기존의 가치들이 제대로 속까지 꽉 찼는지 아니면 속이 텅 비워져 있는 허물뿐인 가치인지 확인하기 위해 망치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니체는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가 됩니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유명한 철학자가 되어 Q와 대리 상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토리노의 말 사건


니체는 그의 유명한 저서인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출판한 뒤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7/8 정도 맹인이라고 스스로 평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각한 두통과 멀미도 느꼈습니다. 그는 결국 요양 겸 남은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 이탈리아 토리노로 건너갑니다.


1889년 1월 3일, 이탈리아 토리노 광장에서 니체는 광인이 됩니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지에 대한 일도 불분명하지만 이 날을 기점으로 니체의 정신건강이 상당히 악화된 것은 틀림없습니다.


광장에서 한 마부가 자신의 말을 사정없이 채찍질했고 니체는 이를 막기 위해 거리로 뛰어들어 말을 끌어안고 오열을 하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집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가 미치기 직전인 1888년, 니체는 마치 자신이 미치광이가 되어버릴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수많은 저서를 집필합니다.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 크라이스트>, <이 사람을 보라>, <니체 대 바그너>, <디오니소스 송가>


후기 니체라고 불리는 이 책들을 이 세상에 모조리 남기고 그는 광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아쉽게도 토리노의 말 사건 이후로는 더 이상 그는 더 이상 새로운 책을 남기지 못합니다.


니체의 눈물 나는 연애사


니체는 허무주의 철학자, 초인, 망치를 든 철학자 등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 드는 이미지이지만 사실 그는 수많은 여인들을 사랑했습니다.


1882년 봄, 니체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여성 정신분석학자이자 작가인 루 살로메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제자이자 친구인 파울 레의 소개 덕분이었습니다. 니체는 아름다운 외모와 지성을 가진 이 여인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렸습니다.


문제는 파울 레 또한 사실 이 루 살로메를 사랑했다는 점입니다. 더 큰 문제는 루 살로메는 니체와 파울 레를 그저 좋은 학문자 동료로 생각했을 뿐 남녀 관계로는 관심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니체는 곧 루 살로메에게 청혼을 했지만 루 살로메는 철학적인 대화만 하고 싶다며 거절했습니다.


근데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루 살로메는 자신을 좋아하는 파울 레와 니체와 함께 동거 생활을 제안합니다. 이미 루 살로메에게 홀리대로 홀려버린 두 남자는 덥석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기묘한 동거한 생활이 지속되던 중 결국 루 살로메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참을 수 없었던 니체는 다시 한번 청혼을 합니다.


"오직 학문적 파트너만 남녀 관계는 불가"라는 규칙을 깨버린 것이죠. 이후 루 살로메는 파울 레와 함께 야반도주를 해버리고 둘이서만 동거를 합니다. 그렇게 니체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는 새드엔딩으로 끝나고 그는 모쏠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정말 위대하고 유명한 철학자이지만 연애에 대해서는 뛰어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니체에게 연애 상담을 신청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닐 수 있습니다. Q가 고객의 상담 내용을 보고 난감해하는 것이 이제는 이해가 되실 것 같습니다.


위버멘쉬


아무래도 니체의 가장 유명한 사상은 위버멘쉬 사상일 겁니다. 국내에서는 초인 사상이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니체의 주요 사상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니체는 우리가 초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그런 초인을 의미하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아까 니체가 기존의 가치들을 모조리 망치로 시험해 보고 무너뜨렸다고 말했죠. 니체는 반대로 기존의 가치를 아무런 의심도 저항도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치는 자신 스스로 창조해내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우리가 이따금 "니체가 모든 도덕체계를 무너뜨렸으니 허무주의자들은 모든 도덕을 무시한다"라는 식의 착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건 전혀 니체의 사상과 맞지 않습니다. 니체는 "자신 만의 가치관을 세우고 그것을 따라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하여 니체는 그 가치관이 무척 엄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위버멘쉬는 허무주의 세계관조차 극복해 버리는 사람입니다. 허무주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쉽게 무기력해지기 마련입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니깐요. 하지만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즉 삶의 모든 측면을 사랑하고 긍정한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고통까지도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회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것이 바로 초인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향상심이라고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상황이던지 늘 과거의 나를 뛰어 넘어서려는 강한 마음가짐이 바로 위버멘쉬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니체에게 대리 상담을 신청한 고객은 연인과의 권태기 때문에 고민입니다. 그전까지 고객은 별도의 노력 없이도 연애가 잘 유지가 되었습니다. 연애초기에는 서로 보고 있기만 해도 좋아 죽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답답하기도 불안하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니체는 그 권태기를 오히려 기회로 생각하라고 합니다.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고통은 우리에게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전까지는 가만히 있어도 괜찮았지만, 이젠 변화하지 않으면 소중한 것을 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성장을 합니다. 고통에 대해 아모르파티적인 마인드만 있다면 고통은 곧 성장의 발단이 될 수 있습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