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발레리의 바람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2)

by 이다이구

오늘 평소처럼 오전에 운동하러 집 밖을 나섰는데, 예상치 못한 추위에 당황했습니다. 말 그대로 당황스러운 추위였는데, 첫째로 -20도라는 한파였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어제까지는 -5도 정도로 날씨가 제법 따뜻했기 때문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추위에 다시 돌아가서 내복을 입고 나올까 생각했지만, 돌아가는 길조차 고통스러워 그냥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체육관까지는 걸어서 25분 정도 걸립니다. 그렇게 25분간 차가운 바람에 귓불이 떨어져 나갈 듯한 고통을 느끼며 걸어가는데, 길가에 얼어버린 검은 청설모의 사체를 보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체육관까지 길을 걸어가다 보면 생각보다 흔하게 동물의 사체를 볼 수 있습니다. 새, 청설모, 토끼, 그리고 스컹크까지 꽤 다양한 동물의 사체를 볼 수 있습니다. 집에서 체육관까지 이어진 길이 트레일과 겹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몇 주 전 새벽에는 코요테 무리가 고양이를 사냥하는 소리에 잠을 깨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제가 사는 지역에는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고, 동시에 많은 동물의 사체도 있습니다.


동물의 사체를 목격하면 자연스레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내 눈앞의 저 검은 털 생명체가 어떠한 이유로 목숨을 잃게 되었을지, 진실을 알 수 없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봅니다. 그리고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나의 죽음은 과연 어떤 시나리오가 될지 상상해 봅니다. 만약 사후세계가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할지도 생각해 봅니다. 만약 사후세계가 있고 운 좋게 그곳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국 같은 곳이라면, 볕 좋은 날에 나무 그늘 아래 누워 낮잠을 자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가볍고 유치한 꿈입니다. 저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무겁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으면 난 볕 좋은 날에 나무 그늘 아래 누워 낮잠이나 자야지!" 하고 어린아이같이 가볍고 빠른 결론을 맺어버리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얼굴을 강타하는 겨울바람에 더 깊은 생각은 할 수도 없었습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말 그대로였습니다. 제 문장 수집 노트에는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전체가 필사되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 중 하나입니다. 특히 시의 마지막 연에 등장하는, 그리고 시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인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언제나 공상 속에 빠져 있는 저를 다시 삶의 현장으로 되돌려 놓는 역할을 해줍니다.

사색은 우리를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데려갑니다. 사색은 몸에서 영혼을 실 뽑듯 쭉 뽑아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발 아래 쉬지 않고 굴러가는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합니다. 죽음에 대한 지나친 공상은 우리에게서 현재를 빼앗아 갑니다.


폴 발레리의 유명한 시 「해변의 묘지」에서 화자는 해변이 보이는 묘지에 서 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깊은 명상에 빠집니다. 그는 명상 속에서 진중한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처음에는 영원에 대한 사색에 빠집니다. 수평선 너머로부터 끊임없이 몰려오는 파도를 보면 누구나 영원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죠. 그러던 중 문득 자신 발 아래에 도사리는 죽음을 느낍니다. 그는 죽음에 대해 사유합니다. 죽음에 몰입합니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 순간 그는 제논의 화살이 자신을 관통했음을 깨닫습니다. 엘레아의 제논은 날아가는 화살은 한 시점에서는 오직 한 점에 머무른다고 말합니다. 그다음 순간에도 화살은—원래 위치에서 조금 더 이동한—한 점에 머무릅니다. 그렇게 매 순간을 나열해 보면 화살은 모든 순간에 한 점에 멈춰 있으니 화살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제논의 화살입니다.


제논! 잔인한 제논! 엘레아의 제논이여!

너는 바르르 떨며, 날면서도 또 날지 않은,

이 날개 돋친 화살로 나를 관통하였는가!


제논은 삶을 지나치게 깊게 분석해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을 놓치고, 더 나아가 부정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해변의 묘지」에서 지나치게 영원성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하는 화자처럼 말입니다. 화자는 영원성과 죽음에 대한 사유 때문에 지금 당장의 순간,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을 놓쳐버렸습니다.

제논의 화살에 관통당해 멈춰버린 시간 속에 갇힌 화자를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바람입니다. 해변으로부터 불어오는 강렬한 바람입니다. 그는 지금 당장 자신의 피부에 몰아치는 바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다시 현재를 살아가기로 마음먹습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죽음을 두려워해서 오늘을 망친다면 우리는 제논의 화살에 맞은 겁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가 하루를 전부 보내버린다면 우리는 제논의 화살에 맞은 겁니다. 사색이 끝났으면 다시 살아야 합니다. 지금 나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바람에 집중합시다. 내 귀를 얼려버릴 것만 같은 이 추위에 집중합시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바람을 뚫고 성큼성큼 당장 해야 할 일을 하러 갑니다. 언젠가 죽더라도 오늘은 살아야 하니 말입니다.

문장 수집 노트뿐만 아니라, 어느새 제 머릿속에도 진한 잉크로 새겨진 이 문장은 오늘도 저를 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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