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지 않는 사람은 무엇인가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by 이다이구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브리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특히 토토로와 마녀 배달부 키키는 정말 수십 번 돌려보았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지브리 영화는 「붉은 돼지」입니다.


세계 1차 대전에서 활약한 에이스 파일럿 포르코는 자신의 조국(이탈리아)이 파시즘의 광기에 물드는 것에 회의감을 느껴, 지중해에 위치한 자신의 아지트에 은닉하며 현상금 사냥꾼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는 1차 대전 이후 마법에 걸려 돼지의 모습이 되어 버렸는데, 작중에서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어떠한 이유로 어떻게 그가 돼지가 되어 버렸는지는 알려 주지 않은 채 영화는 끝납니다.


그건 “포르코가 어떻게 돼지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이 「붉은 돼지」의 핵심 주제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붉은 돼지」가 고대 서사시나 신화처럼 정보가 아니라 이야기로서 독자에게 감각 그 자체를 선사하려 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정말 배부른 돼지보단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나을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포르코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로 사는 편이 나아”


말하자면 “파시스트 소크라테스보단 돼지가 낫다”입니다. 하지만 포르코가 말하는 돼지는 물론 그냥 일반 돼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작중 이런 말도 하죠.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파시스트 소크라테스보단 나는 돼지가 낫다”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버지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전투기를 만들던 ‘미야자키 항공사’의 관리자였습니다. 그 영향 때문에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직까지도 비행기를 그리는 것과 비행기 프라모델 조립하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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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비행기 사랑에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강한 반전주의 사상 때문입니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비행기, 특히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는 전투기의 디자인에 매료되어 버린 자신의 모순성에 괴로워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본 내에서 좌익과 우익 두 편 모두에게 비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우익에게는 일본의 전범 과거를 들추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판했고, 좌익에서는 세계대전의 무기로 사용된 전투기를 주제로 했기 때문에 비판했습니다.


어쩌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투기를 타고 전쟁이 아닌 오직 사랑과 낭만을 위해 살아가는 포르코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전쟁이 싫어 국가로부터 도망쳤지만 자신의 전투기는 포기할 수 없는 포르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포르코는 자신을 “인간이 아닌 돼지”로 정의해서라도 이 모순된 두 가지를 지켜냅니다.


비행은 고대부터 쭉 인류에게 “꿈”의 상징이었습니다. 특히 지브리에서는 이러한 상징성이 더욱 부각되죠.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날지 않는 돼지가 그냥 돼지일 뿐이라면, 꿈꾸지 않는 인간은 무엇일까요?


파시즘에서 개인의 꿈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파시스트는 자신의 꿈이 아니라 국가의 꿈을 대신 꾸기 때문입니다. 파시즘 사회에서 국가의 이념을 따르지 않는 개인은 완벽한 이방인이 됩니다. 그리고 포르코는 완벽한 이방인, 즉 돼지가 되기로 결정하죠.


하지만 포르코는 그저 반항심에 모두가 가는 길에서 벗어난 돼지는 아닙니다. 그 증거로 그는 자신의 전투기를 타고 하늘을 납니다. 그는 자신의 꿈과 낭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과 낭만을 위해 돼지가 되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인간은 실존적 존재입니다. 그리고 실존적 존재와 꿈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실존적 존재는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선택하며 나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라는 실존적 특성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습니다.


“비범한 인간과 평범한 인간의 차이는, 평범한 인간과 원숭이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크다.”


라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사유는 “자신만을 위해 결정된 운명을 타고난 이는 없다.”라는 인간의 실존성에서 시작됩니다. 그 후 사상가와 농부 둘 다 인간이지만, 사회가 정해 준 대로 농부로 사는 사람과 통상적인 길에서 벗어난 사상가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평범한 인간은 비범한 인간보다는—원숭이조차도 아니고—고양이와 더 가깝다는 표현을 합니다.


이쯤에서 아까 전에 정리했던 문장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파시스트 소크라테스보단 나는 돼지가 낫다”

이 문장은 곧,

“꿈꾸지 않는 소크라테스보다는 차라리 꿈꾸는 돼지가 낫다”

입니다.


언젠가 문장 수집 노트에 적힌 포르코의 대사는 제 삶의 태도를 계속 일깨워 줍니다. 돼지가 되었다면 하늘을 날라고 말입니다. 하늘을 날지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가라고 말입니다.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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