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예술을 빼면 뭐가 남아? 그냥 돌덩이일 뿐이야.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내고 있는 곳은 요즘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2주 전에는 롱패딩을 입었고, 저번 주에는 코트를 입었고, 이번 주는 바람막이 재킷을 입었습니다. 온도뿐만 아니라 며칠째 화창한 날씨가 지속되어 산책하는 길에도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휘파람을 부릅니다.
벌써 봄이 왔다고 하면 설레발이겠지만 어쩐지 몸은 벌써 춘곤증에 시달리는 듯합니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평소에는 소셜 미디어도 몇 분 하다 보면 싫증이 나서 집어던지고 할 일을 하는데 말입니다. 요즘은 아무 생각 없이 30분씩, 심지어 한 시간씩도 릴스를 내리는 이른바 둠 스크롤링을 합니다.
그러던 중 한 인터뷰어가 티모시 샬라메를 인터뷰하는 내용의 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숏폼의 특성상 앞뒤 맥락은 알 수 없지만 무척 흥분한 상태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What is this earth without art? Just a rock.
지구에서 예술을 빼면 뭐가 남아? 그냥 돌덩이일 뿐이야.
저는 침대에서 일어나 곧바로 문장 수집 노트를 펼쳤습니다. 춘곤증도 쉽게 이겨버리는 강렬한 문장이었습니다. 노트에 필기를 하고 문장의 진위를 따져 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예술이 없는 지구는 그저 돌덩이일 뿐인가? 하고 말입니다.
예술의 범위를 어느 정도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보다는 확장해야겠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허무주의적, 혹은 물질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지구는 돌덩이에 불과합니다. 공허를 떠도는 돌덩이이죠. 우리는 이 돌덩이에 너무나 당연한 듯 이런저런 의미를 붙입니다. 자전에 의해 해가 지평선 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내려갈 뿐인데, 우리는 그 광경을 보고 눈물을 짓습니다. 지구 안의 두 유기체일 뿐이지만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엇보다 신성하게 서로를 다룹니다.
예술은 허무주의를 이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인류는 역사 이전의 시대부터 춤추고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며 돌덩이 지구 위에 여러 색을 칠해 왔습니다. 알록달록 빛나는 지구 위에 살아가는 우리를 두고 세네카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자애로움을 베풀었고, 제대로 사용하는 법만 익힌다면 인생은 충분히 길다.
하지만 우리는 이따금씩 허무주의의 늪에 빠집니다. 알록달록했던 지구의 색조가 빠지고, 돌덩이 위에서 그저 살아가며 세월을 보냅니다. 벌써 3월입니다. 뼛속까지 시리게 하던 추위도 시간 앞에서는 장사 없는 법입니다. 개인적으로 1월과 2월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습니다. 아마 이제 막 시작한 것만 같은 2026년도 금세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우리가 돌덩이일 뿐인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면 말입니다. 누군가는 “지구는 원래 그냥 돌덩이야.”라고 젠체하며 뽐내기도 합니다. 원래 돌덩이일 뿐인 지구에 색칠을 하는 것은 거짓에 불과한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입니다.
정말 자연을, 지구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의 말입니다. 지구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은 텅 빈 이 행성을 의미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예술을 합시다. 사랑을 노래하고, 지나간 일을 그리고, 미래를 위해 춤을 춥시다. 돌덩이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색안경을 끼고 봅시다. 알록달록한 필터를 씌운 기억을 추억합시다. 그게 이 지구를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이전에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문장을 수집하는 것의 이점 중 하나는 필터를 씌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밤이지만,
비가 그친 뒤 달이 나왔다. 비에 씻긴 가을밤이 청명하게 밝아졌다.
라는 문장을 수집한 뒤로는 “비에 씻긴 가을밤”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문장 수집은 제가 사는 세상을 더욱 알록달록하게 만들어 줍니다.
What is this earth without art? Just a rock.
지구에서 예술을 빼면 뭐가 남아? 그냥 돌덩이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