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문장으로 이뤄진 작품이 아니라, 작가로 이뤄진 작품이다.
AI 시대에 작가의 필력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최근에 흥미로운 실험을 하나 해보았습니다. 바로 인공지능이 쓴 글과 헤르만 헤세 또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글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다음 두 질문을 했습니다.
"어떤 게 AI가 쓴 글 같나요? 그리고 어떤 게 더 잘 쓴 글 같나요?"
1. 순백색과 진홍색으로 얼룩진 나비는 바람에 실려 들로 날아갔다. 꿈을 꾸는 발걸음을 옮기자, 나에게 천국에서 새어 나온 한 가닥의 잔잔한 빛이 남아 있었다.
2. 나비가 가는 곳을 나도 모르게 따라가다 보니, 내가 나비를 쫒는 건지 나비가 나를 이끄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3. 내 뒤쪽, 침대의 가장자리에는 집의 침묵이 영원과 닿아 있다. 나는 시간이 낙하하는 소리를 듣는다.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지는 방울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낙하 행위 자체의 소리를 듣는다.
4. 소나기가 왔다 갔다 하는 소리를 천장 보며 듣고 있자니, 저 하늘도 나처럼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여러분들은 두 개 중 무엇이 인공지능이 쓴 글인지 알 수 있겠나요?
저는 이 질문을 들고 주변 사람들에게 찾아가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답은 꽤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AI가 쓴 글을 "인간이 쓴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AI가 쓴 글을 "가장 잘 쓴 글"로 순위를 매겼습니다.
헤르만 헤세와 페르난두 페소아의 필력은 생성형 AI 클로드보다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쯤 되면 정답이 궁금하시겠죠. 하지만 정답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할 이야기가 남아있으니 말입니다. 그 할 이야기란, "이런 질문이 애초에 의미가 있나?"에 관한 것입니다.
이 실험의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 아니 납득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의 문학적 소양을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기대와 반대되는 결과를 얻었다고 그 책임을 피실험자들에게 돌리는 것은 비겁한 행동입니다.
어쩌면 시대의 변화가 그 이유일 수 있습니다. 헤세와 페소아의 문장은 종이 위에 쓰인 그때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취향도 바뀌고 트렌드도 바뀌는 법이죠.
하지만 그런 생각도 결국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그 반례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 예시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인 호메로스의 시들은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읽힙니다. 그의 문장은 강력한 힘이 있고, 현대인의 마음에도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역시, 인공지능이 위대한 대문호의 필력을 따라잡은 것으로 모자라, 그들을 재친 것일까요? 클로드는 정말 헤르만 헤세보다, 페르난두 페소아보다 더 뛰어난 문학가가 된 것일까요?
전자의 질문에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질문에는 "어림도 없다"가 제 대답입니다. 필력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문장력이라고 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요? 그게 정말 의미가 있나요?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을 제 문장수집노트에 적었습니다.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진 작품이 아니라, 작가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우리가 학교 국어시간에서 늘 하는 질문이 무엇인가요? 바로 "작가의 의도는 무엇입니까?"입니다. 애독가들이 늘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이 쓰인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합니다.
문학 작품의 가치는 아이러니하게도 문학 바깥에 존재합니다. 이것이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를 평가하기 위해선 작품 속 문장에 쓰인 테크닉을 분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의 의도, 작가의 창의성, 작가의 배경, 즉, 작가 그 자체를 분석해야 합니다.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 오직 다자이 오사무가 썼을 때 가치가 있습니다. 만약 인간실격을 평생 행복하고, 부유하고, 어떠한 존재론적 고민도 없던 누군가가. 연인과 동반자살을 시도했지만 자신만 살아남은 경험이 없는 누군가가 썼다면 그냥 "우울하고 기분 나쁜 글"이 될 뿐입니다.
죄와 벌과 도스토예프스키,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 싯다르타와 헤세, 노인과 바다와 헤밍웨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작품과 작가는 떼어낼 수 없습니다. 작가 없이 작품이 홀로 숨 쉴 수 없습니다.
문학은 작가의 필력을 자랑하는 종이의 모음이 아닙니다. 만약 문학이 그런 의미라면 인공지능은 정말 헤르만 헤세를 뛰어넘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문학은 작가 자신을 담는 공간입니다. 한 문학 작품의 위대함은 작가의 위대함과 비례합니다. 문장 하나로는 평가할 수 없습니다. 작품 전체의 창의성과 진정성을 보아야 합니다. 심지어 작품 너머의 세상까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문학의 가치는 문학 바깥에 존재합니다.
궁금해하실 질문의 정답을 알려드리겠습니다. 2번과 4번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문장이었습니다. 1번은 헤르만 헤세의 문장이었고, 3번은 페르난두 페소아의 문장이었습니다. 정답을 맞히셨나요? 아니면 완전히 반대의 정답을 외치셨나요?
하지만 그게 정말 의미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