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내 손에 달려있지 않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네 손에 달려 있다

by 이다이구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네 손에 달려 있다


노발리스의 유작, <푸른 꽃>의 문장입니다. 저는 푸른 꽃을 읽어본 적도 없는데 이런 문장이 왜 제 문장수집노트에 적혀 있는지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이 문장의 출처를 찾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소모했을 정도입니다.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내 손에 달려있다라…… 참 스토아 철학자들이 좋아할 만한 문장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저도 좋아할 문장이죠. 과거의 제가 왜 이 문장을 수집했는지 알 만 합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스토아적 사고방식을 내려놓고 문장을 조금 고쳐 적으려고 합니다. 딱 한 글자만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네 손에 달려 있다

라고 말이죠.


개인주의.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자라오면서 동양은 집단주의지만 서양은 개인주의라는 식의 성급하게 일반화된 명제를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서양에 살아보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개인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얼마나 남에게 관심이 없는가"가 개인주의를 판가름하는 척도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단연코 세상에서 가장 개인주의적인 나라 중 하나일 겁니다.


심지어 요즘에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조차 예의에 어긋난다는 의식마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서 가장 곤욕을 치르는 일 중 하나가 스몰토크라는 말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웃과도 어색한 침묵을 지키며 엘리베이터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보다 오히려 더 편한 사회입니다.


저는 물론 나의 행복은 내가 외부의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말하자면 스토아적 사고방식이죠.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내 행복은 나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낼 수 있어. 다른 사람들은 필요 없어." 식의 개인주의적 해석은 올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나를 힘들게 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하는 짓마다 마음에 안 들고 답답합니다. 스토아 철학자라면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네 손에 달려 있다"라며, 그 사람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나 자신의 판단을 바꾸라고 하겠죠. "그래, 너희들 맘대로 해. 난 흔들리지 않겠어." 하고 귀와 눈을 닫고 외면하면 될까요? 그러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될까요?


우리의 판단은 놀랍게도 사랑과 관심으로 바뀝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심은 시몬 베유와 아이리스 머독이 말하는 관심이죠. 그 관심은 타인의 실재를 향한 사랑 어린 시선을 의미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보다는 내면을 지켜봐주는 관심입니다. 그러면 나에게 적대적인 사람 내면에 있는 상처와 나약함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답답한 사람 내면의 순수함과 사랑스러운 서투름을 볼 수도 있죠.


이건 개인주의가 전혀 아니죠.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왜 스토아 철학자들은, 왜 시몬 베유와 아이리스 머독은, 행복해지기 위해 타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까지 바꿔야 한다고 말했을까요? 이건 역설적으로 우리의 행복이 단지 우리 손에만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곁에 사랑할 사람이 없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너를 사랑스럽게 바라볼게.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네 손에 달려 있으니깐."

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무엇을 해도 불행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무엇을 해도 행복한 것이 바로 우리, 사회적 동물인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행복이라는 문을 열기 위해선 열쇠를 돌릴 내 손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열쇠입니다. 그리고 그 열쇠는 다름 아닌 관계이죠.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네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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