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기침은 자기 전에 꼭 폭발해버린다. 낮에는 집안에만 있기 때문에 찬바람을 맞을 일이 없어 기침을 덜 하는 편이지만 따뜻한 이부자리에 누울 때면 기침이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따뜻한 곳에 들어와서 그런가? 몸이 차서 그런가? 그런 생각에 목에 손수건을 두르고 그 위로 애착 담요를 칭칭 감았다. 따뜻해지면 좀 덜하겠다 싶었지만 기침은 계속 터져 나왔다. 기침을 계속하니 자연스레 가슴 통증이 생겼고 두통까지 찾아왔다.
잘 때마다 치르는 기침과의 전쟁.
지긋지긋한 이 기침은 코로나 19가 아닌 천식이었다. 겨울날만 되면, 찬바람(에어컨 바람 포함)을 쐬기만 하면, 가습기를 가까이에 켜놔도 육성으로 터지는 알레르기성 기침이었다. 무엇에 의해 나타나는 알레르기인지 모르겠다.
검사를 해보려고 했지만 알레르기 검사 비용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본 몇 가지만 하는데 검사비용이 10만 원부터 시작했다. 하나가 추가되면 어떤 검사냐에 따라 오르는 금액이 달랐다. 다음에, 다음에, 다음, 다음… 하다가 아직도 알레르기 검사를 받지 못했다.
나는 잔병치레가 있지만 그래도 큰 병 하나 없이 잘 견딘 건강한 몸이라고 생각했다. 음식에 관한 알레르기도 없고 화장품에 관한 알레르기도 없다. 다만 금속 알레르기와 먼지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데 이건 유전인 것 같다. 그것 외에는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만한 노출도 없었으니까….
요즘 때가 때인지라 외출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닌데, 가끔 반찬을 사러 간다거나 식재료를 사러 갈 때가 있다. 1~2주에 한 번 정도? 쿠팡에서 필수품을 주문하다 보니 밖에 나가는 횟수가 더더욱 적어졌다. 그리고 나는 엄청난 집순이이라 출퇴근 아니면 외출을 잘하지 않았다.
얼마나 지독한 집순이냐 하면.
최근 3주 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은 적이 있었다. 코로나 19 사태로 외출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게 아니었더라도 나는 분명 밖을 나가지 않았을 거다. 이불 밖은 위험해. 집 밖은 위험해. 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외출할 때 하는 준비 과정들이 너무 귀찮아서 쉬는 날이면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3주 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더니 중력을 3배로 느끼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마치 머리에 압력이 차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온 우주의 힘이 내 머리에 쏟아져 내려 머리채를 휘어잡고 뱅글뱅글 돌리는 느낌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럽고. 어찌나 심하게 울렁거리던지 결국, 3주 만에 집 밖을 나왔다.
집순이의 이력은 강원도 본가에 살 때도 그러했다. 항상 집 > 직장이었고 주말에도 집에만 박혀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보던 엄마는 밖에 좀 나가!라는 잔소리를 노래처럼 부르곤 했다. 서울에 혼자 자취할 때도 전화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는데.
지금은 여동생이랑 같이 살고 있는데도 불과하고 집순이이다 보니, 엄마 혼자서 불렀던 잔소리 노래가 여동생까지 합세하여 하모니가 되었다. 지금은 외출을 자제해야 해서 하모니는 들리지 않지만…. 이렇게 외부로부터 오는 바이러스가 침투될 성이 없는데 어째서? 왜? 어디서 알레르기가 생겼단 말인가!
돌이켜보면 강원도 본가에 살 때에는 겨울 기침을 한 적이 없었다. 매섭게 몰아치는 겨울바람에 두어 번 콜록거리긴 했지만, 감기에 걸린 적은 있어도 천식은 앓지 않았다. 내 기억상 겨울 기침을 인식했을 때는 경기도·서울로 상경하고 2년이 지난 무렵이었다.
그때는 천식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가족 내력이 없어 생각을 하지 못했다.) 폐렴을 의심했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니니 폐렴일 수도 없겠지만. 엑스레이로 찍힌 폐는 당연히 매우 건강했고 폐렴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3년이 흐르고 나서야 원인을 알게 되었다. 올 겨울도 어김없이 기침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심하지는 않지만 날이 추워질수록 기침의 강도가 세질 것 같았다. 마침 쉬고 있는 기간이기도 하니 취업 전에 겨울 기침을 잡아놔야겠다는 생각으로 병원을 찾았다. 정말 별 생각이 없었다. 간단한 것이겠지 싶었다. 그런데 결과는 천식. 뭐라고요 선생님? 천식이라고요? 제가요?
내가 아는 천식은, 아니 천식 환자는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병원에 근무했을 때 보았던 몇몇 분의 천식 환자들. 천식은 연세가 많은 분들이 유독 앓고있는 병이었고 할머님들이2층에 있는 병원에올라오실 때마다 거친 숨소리와 쇳소리를 내게 하는 병이었다.
어찌나 힘들어하시던지, 걱정이 돼서 물도 가져다 드리고 등도 토닥여보았지만 쇳소리를 내는 숨결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것도 나를 좋아해 주고 챙겨주시던 할머님들이 천식을 달고 계셨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천식이란다. 그것도 30대인 내가.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가족 내력은 더더욱 없는데 왜 천식이 온 걸까? 의사 선생님에게 물으니 미세먼지일 확률이 매우 높단다. 애초에 호흡기가 약한 것을 알아서 코로나 19가 터지기 전에도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하고 다녔던 나다. 미세먼지가 천식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게 내가 될 줄은 몰랐다.
콜록 콜록콜록 콜록….
천식 치료를 받은 지 2주가 넘어가고 있다. 겨울이 점점 추워질수록 기침이 심해져 약이 들지 않았다. 결국, 천식 흡입기를 처방받았다. 내가 받은 천식 흡입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모양은 아니었다. 어린이용 천식 흡입기여서 그런가. 위아래로 조금 늘린 동그라미 같기도 하고 잔뜩 털이 오른 부엉이처럼도 보였다.
희한한 모양의 흡입기였다.
부엉이 머리처럼 보이는 뚜껑을 딸칵 소리 나게 열면 가운데에 있는 숫자가 줄어든다. 몇 번 사용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 좋았고 흡입기 입구가 조금 튀어나와 있어 처음 본 물건인데도 여기다 입을 갖다 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녁마다 한 번씩 흡입기를 사용하는데 들이마실 때 가루? 같은 것이 안으로 들어왔다. 가루를 들이마신 뒤 그대로 숨을 참고 3~4초를 버틴 후 숨을 내쉰다. 그리고 가글 하기. 약에 의해 목과 입안에 염증이 생길 수 있어 가글은 꼭 해줘야 한단다.
사용하기도 쉽고 관리도 쉽지만 문제는 효과를 보기까지 일주일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일주일 후에야 효과가 있다고. 의사 선생님도 그 일주일은 힘들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는 참을 수 있다 생각했다. 일주일쯤이야. 괜찮다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틀 째인 지금, 나는 폐인이 되고 있었다. 밤마다 기침과 전쟁을 치르고 있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자다가도 기침 때문에 깨어나고 가슴통증에다 오한이 들어서 깨어나고 또 미친 듯이 기침하고. 그렇게 밤 시간을 뒤척이다 맞춰놓은 알람을 듣고 일어난다.
이제 이걸 5일을 견뎌야 한다. 오. 세상에….
그때의 자신감을 도대체 뭐였는지. 물론 먹는 약도 처방해주었지만 염증약이었고 수면 약도 넣어줬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아무래도 흡입기의 효과가 나타난 뒤에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이 약이 잘 받으면 완치 가능성도 있다고 하니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믿고 고통을 참으며 오늘도 열심히 사용해봐야겠다. 취업 전에는 부디 겨울 기침이 낫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