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내면에 빗속의 사람이 있고 말 못 할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5평 남짓한 원룸은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는 작은방이었다. 반지하도 아닌데 꿉꿉한 냄새가 났다. 물 냄새도 잘 빠지지 않았다. 습기도 마찬가지였고. 작은 평수답게 부엌도 작았고 화장실도 작았고 매트가 놓인 방도 작았다. 몇 발짝만 가면 거기서 거기인 크기. 모든 것이 작고 좁은 공간이었다.
찰그락. 찰그락. 열쇠에 매달린 인형들이 부딪치면서 소리가 났다. 곧이어 날카로운 마찰음이 나더니 현관문이 열리며 애신이 안으로 들어왔다. 창문을 열어도 빠지지 않은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훅하고 밀려왔다. 코를 찌르는 케케묵은 냄새. 이 냄새가 무엇이 그리 좋다고 안심이 되는 건지… 불안정하게 뛰던 맥박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며 애신은 현관문에 기대어 섰다.
그러고는 두어 번 헛구역질을 하다가 황급히 화장실 안으로 뛰어갔다. 정돈할 새 없이 급히 들어온 터라 신고 있던 구두가 이리저리 날아갔고 한쪽 어깨에 메고 있던 핸드백이 바닥에 내팽개치듯 떨어졌다.
“웩. 웩.”
변기 안으로 쏠리는 몸을 애써 부여잡으며 애신은 토악질을 했다. 오늘 점심때 먹은 한 끼 식사와 카페에 앉아서 마셨던 노란 찻물이 뒤섞여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정신이 없었다. 무언가가 걸린 거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일단 뱉고 보자는 생각에 애신은 정신없이 토악질을 했고 대장에서부터 끌어올린 숨은 입과 코로 연신 흘러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변기에 머리를 박다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하아.”
쓰디쓴 냄새와 함께 깊은숨이 터져 나왔다.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시선을 올리니 창밖으로 후두두, 후두두 비가 내렸다. 떨어지는 비가 제 이마에 닿은 것처럼 애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욕실 타일 위로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 때문이려나. 불규칙적으로 뛰던 심장이 진정돼서 그러나. 꺼져버린 성냥처럼 열기가 금세 식어져 버렸다. 더는 앉아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애신은 지친 몸을 일으켜 화장실을 나왔다.
탁.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발끝에 립스틱이 튕겨 나갔다. 내팽개친 핸드백이 바닥과 부딪치면서 잠금장치가 풀린 모양이다. 굴러가는 립스틱과 넓적한 파우더와 카드만 들어있는 반지갑, 그리고 식당에서 받은 입가심용 사탕 한 개와 구겨진 약 봉투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구겨진 약 봉투에는 ‘점심’이라는 파란색 글씨와 함께 작은 알약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애신은 약 봉투를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구겨진 약 봉투는 불안 증세를 억눌러 주는 정신과 약이었다.
하얗고 동글동글한 약은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에 맞춰 먹었고 크기가 작아 불편함 없이 먹을 수 있는 약이었다. 그저 정신과 약이라는 게 거슬렸을 뿐 효과는 매우 좋았다. 약을 먹으면 울렁거리는 속도, 바들바들 떠는 몸도, 불안정하게 뛰는 심장도, 가쁜 숨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뭐, 안정을 찾는 것까지는 좋은데….’
다음 날 병원을 찾은 애신은 손아귀에 움켜쥔 약 봉투를 보며 허탈하게 숨을 뱉었다. 효과가 좋은 만큼 부작용이 있었다. 약을 먹고 안정을 찾는 것은 좋았지만 감정을 너무 날려버려서 문제였다. 약간 멍해지고 한없이 차분해지고 조금은 둔해지는 감각. 수평선 위를 걷는 무감각한 감정은 약을 먹을 때마다 느껴야 했다. 그만큼 억누르는 힘이 강했다. 그런 감각들이 싫어서 애신은 최대한 약을 먹지 않으려 노력했다.
“요즘 좀 어떠세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는 볼펜을 쥔 채로 애신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진료실 안에 들어온 터라 의자에 앉지도 않았는데 그는 그녀의 안부부터 물었다. 애신은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 그러니까. 조금 좋아진 거 같기는 한데요.”
“아직도 불안한 마음이 드나요?”
“어… 네.”
“어떨 때 많이 느끼세요?”
“어… 사람이 많이 있는 곳이거나 낯선 곳에 갈 때 그러는 거 같아요.”
“어떤 기분이 드시는데요?”
의사는 차트 위로 펜을 끄적였다. 그 모습을 흘끗 보다가 애신은 다시 시선을 내렸다. 무릎 위에 올린 핸드백을 만지작거리며 괜스레 입술을 축였다.
“음… 위협을 받는 게 아닌데 위협을 느껴요. 조금 무섭기도 하고요. 아는 사이인데도 그렇게 느껴서 자꾸 눈치를 보고 긴장을 하는 거 같아요.”
“왜 그렇게 느끼실까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잘 생각해 보세요. 애신 씨는 그 이유를 알고 있어요.”
의사의 말을 되뇌던 애신은 꼼지락거리던 손을 멈추었다. 느릿하게 눈이 깜빡거렸다. 아니겠지, 설마 했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에 눈살을 찌푸렸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도 지워지지 않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물을 과하게 넣은 반죽처럼 질척거렸다. 말없이 핸드백 끈을 움켜쥐며 입술만 꾹 깨물었다.
차트에 기록하는 의사를 흘긋 보던 애신은 심리치료 교육을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24살이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근무하며 나름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었다. 힘들다는 말을 종종 했지만 잘 웃는 그녀였기에, 가족들은 아픔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심각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제 그만하고 싶어. 그만 살고 싶어.
항상 웃고 있던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고 나서야 가족은 깨달았다. 하지만 무엇이 그녀를 힘들게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몰랐다. 차라리 몸이 아프면 간호라도 할 텐데…. 병든 마음은 처음 있는 일이다 보니 가족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애신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심리 상담소를 찾았다.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상담소는 아동 심리 상담을 주로 하는 곳이었다. 아동의 눈높이에 맞추었기 때문에 상담소 인테리어가 유치원처럼 아기자기했다. 상담은 예약제였고 아이의 심리에 따라 1:1 상담이나 집단 상담 중 하나를 선택하여 진행했다. 상담 비용은 보통 4~5만 원 선. 검사가 추가 진행되면 10만 원 내외로 올랐다. 1회의 가격이었다. 하지만 성인의 심리 상담 비용은 아동 심리 상담보다 가격이 3배로 비쌌다. 나이가 많을수록 심리 치료가 어렵다는 점이 이유였다.
그런데다 아동에 비해 성인은 치료 기간이 길었다. 치료가 될 때까지 다녀야 하는데 과연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집안이 어려웠던 시기였기 때문에 하겠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머뭇거리던 애신은 게시판에 붙은 전단지를 보았다. 알록달록하게 꾸민 전단지에는 심리 상담과 미술 치료 자격증을 따는 모집 내용이 적혀있었다.
자격증을 준비하는 모집에 회원 등록을 한 후, 한 달이 지났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알록달록한 강의실은 여전히 어색했다. 아동 상담을 주로 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강의실 벽 곳곳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붙어 있었고 책장마다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테이블도 소파도 분홍색, 노란색, 초록색… 갖가지 색을 내었다. 멋쩍게 앉아 있던 애신은 제 앞에 놓인 스케치북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미술 치료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미술 치료는 그림을 그려서 마음의 문제를 표현하고 완화시키는 치료법이었다. 가장 먼저 배운 진단 기법은 인물화, HTP 검사, KHTP 검사, 빗속의 사람이었고 회원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 문제를 해석하고 치료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편안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시간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수업 시간은 항상 길었다.
“다 그리셨나요? 지금 8절지에 빗속의 사람을 그려보았는데요. 그림에서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한 분씩 말씀해볼까요?”
애신은 제 앞에 놓인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장마처럼 쏟아지는 비와 그 빗속에 홀로 서 있는 여자는 큰 우산을 들고 모자와 장화까지 신고 있었다. 비를 맞지 않기 위해 우비를 입은 여자는- 아니, 체구가 작은 그 소녀는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문제가 될 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는 와중에 테이블 끝에 있던 학생이 입을 열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문제점을 해석하면서 자연스레 묵힌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명, 두 명, 세 명… 모두가 빗속의 사람이 되어 아물지 않은 상처를 꺼내었다.
“애신 씨는 어떠세요?”
“네? 아….”
갑작스러운 주목에 애신은 입을 뻐끔거렸다. 뒤돌아 서 있는 저 소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묵은 이야기를 했던 회원들 중에서 뒤돌아서 있는 경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강사는 당황해하는 애신을 놓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자리를 옮겨 그녀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 그림을 보았다. 빗속에 있는 소녀는 여전히 뒤돌아서 있는 상태였다.
“제가 설명해도 될까요?”
“네? 네네.”
“음… 애신 씨는 스트레스도 많고 상처도 많은데 방어할 수 있는 것들도 많네요. 다만 과거를 다시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아직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는 건가요?”
강사를 올려다보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빗속의 소녀는 여전히 뒤돌아서 있었지만, 아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장마처럼 내리는 빗물이 칼처럼 날카로워 보였고 발밑에 고인 물은 기름처럼 번들거렸다. 그리고 그 빗물 속에서 묵혀 두었던 기억이 일렁이듯 보였다.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초록색 병과 억센 손바닥으로 뺨을 내리치던 마찰음과 피맺힌 신음이 들렸다. 문틈 사이로 4개의 어린 눈이 불안과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었고 뒤돌아서 있던 소녀는 어느새 사내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어미를 살려 달라 애원하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애신은 소녀의 애원을 휴지로 틀어막으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마치 빗속에 있는 것처럼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창밖에는 매미가 시끄럽게 울었고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비에 젖은 것처럼 창백했다.
진료실에 나온 애신은 계단을 내려와 약방으로 향했다. 병원 안에 구비되어 있는 약방은 굉장히 협소했는데 남은 공간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일거리가 점차 줄어서 그런가. 종이를 받는 입구가 담배 팔던 구멍가게처럼 좁다랗다. 손에 쥐고 있던 처방전을 둥근 입구에 가까이 넣자 날름 들어가 버렸다.
“시간이 조금 걸리니까 앉아 계세요. 이름 불러드릴게요.”
약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애신은 소파에 앉았다. 병원 안에는 휠체어를 끄는 환자, 목발을 짚고 나온 환자, 링거 거치대를 끌고 나온 환자들이 있었고 그 틈으로 사람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평상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제각기 프린트한 종이를 들고 있었다. 평일인데도 환자가 제법 많았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나고 이름이 불렸다. 드디어 약이 나왔다. 그런데 약사의 손에 들린 약이 심상치 않았다. 반투명한 약 봉투가 길게,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약사는 늘어진 약을 두루마리 휴지 감듯이 돌돌 말았다. 이번에도 또 한 달 치 약인가보다. 종이봉투에 들어가지도 않는 크기를 보며 애신은 한숨을 쉬었다.
“또 매일 먹어야 해요?”
“아니요. 며칠 꾸준히 드시다가 괜찮으면 끊으셔도 돼요. 약에 너무 의존하는 건 좋지 않으니까요.”
“아… 네. 감사합니다.”
애신은 건네받은 약 봉투를 황급히 에코백 안으로 욱여넣었다. 크기가 얼마나 큰지 홀쭉했던 에코백이 작은 공 하나를 집어삼킨 것처럼 뚱뚱해졌다. 불룩 튀어나온 부분을 두드려서 눌러볼까 생각했지만 5분이면 집에 도착하니 그냥 감수하기로 했다. 북적거리는 틈을 비집고 나와 병원 입구 앞에 섰다. 흐린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