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한 시각이 되면 나는 항상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은 대부분 잡념이었다. 잡념들 중에 10에 8할은 암담한 걱정들인데, 직장을 다니고 있으면서도 그 불안은 끝이 없었다. 평생직장은 이제 옛말이 되지 않았던가. 그래도 살아가려면 일은 해야 했고 내일을 위해 잠은 자야 했다. 생각은 그만 꺼야 했다. 그러나 이놈의 잡념은 쉬이 멈춰지지가 않았다. 그것을 잊고자 보게 된 것이 타로카드 영상이었다. 처음에는 전초적인 질문부터 시작했다. 취업이 되느냐, 직장 생활은 잘할 수 있느냐, 미래의 나는 원하는 삶을 사느냐 등등, 그런 질문들을 이어서 보다가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킴 박사님의 타로 카드 영상을 접하게 되었다.
타로카드 영상을 업로드하는 킴 박사님은 소프라노 김 홍경 씨였다. 나는 소프라노 킴 박사라는 활동명이 여느 유튜버처럼 단순히 닉네임으로 지은 건 줄 알았다. 그래서 진짜 성악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공지도 보지 않고 줄곧 타로 카드 영상만 봐왔으니까. 당연히 본업을 알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타로 카드를 보는 성악가,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래서 유튜브 공지에 적혀 있는 블로그와 SNS를 검색해서 살펴보았다. 소프라노 김 홍경 씨는 성악가이자 공연기획자이며 소호 오페라 코리아의 대표이다. 럿거스 주립대학교 대학원의 성악 박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2012년 오페라 ‘사랑의 묘약’으로 데뷔했다. 올해는 첫 공식 싱글 앨범인 ‘빛의 아이’를 공개했는데, 경험이 많고 실력도 좋은 소프라노이다. 성악가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타로카드가 있어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타로카드와 성악가, 그 단어만 보면 굉장히 낯선 조합이지 않은가. 마치 전통과 환상의 만남 같다고 해야 할까? 고고하면서도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보다 더 눈길이 끄는 건 소프라노 김 홍경 씨, 그 자체였지만. 그녀는 좋은 사람이다. 한국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어 하며 누구보다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달 후였다. 2022년 9월 30일 금요일 저녁 8시, 남부터미널 역 SCC 홀에서 볼 수 있는 이 무대는 소프라노 김 홍경 씨가 준비한 오페라 무대였다. 영화나 뮤지컬은 종종 봐왔지만 오페라 무대는 처음이었다. 사실 포스터도 꼼꼼히 보지 않았다. 그저 소프라노 김 홍경 씨가 준비한 무대라고 하니, 앞뒤 재지 않고 덜컥 결제부터 한 것이다. 결제를 끝내고 난 후에야 뒤늦게 걱정이 들었지만. 첫 번째 걱정은 언어의 차이였다. 오페라라고 하면 대부분 가사가 외국어일 텐데, 심각한 영어 울렁증을 가지고 있는 내가 잘 들을 수 있을까? 무슨 뜻인지 어떻게 알고? 그래서 유튜브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검색했다. 많은 영상이 있었다. 그중 시간이 제일 긴 영상을 골라 틀었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 중 하나였다.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바람둥이 백작이 백작부인의 하녀인 수잔나에게 흑심을 품었다. 그러나 하녀 수잔나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피가로가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백작은 계속해서 수잔나에게 추파를 던졌고 그 사실을 백작부인이 알게 된다. 피가로와 수잔나, 백작부인은 계략을 써서 백작을 무릎 꿇게 만드는데, 나중에는 백작부인이 사과를 받고 남편을 용서한다는 이야기이다. 지금에서 보면 그저 사랑과 전쟁을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무대를 금지할 만큼 파격적인 작품이었다고 한다. ‘피가로의 결혼’은 루이 16세 시기의 작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정치적 색깔이 짙다고 한다. 그 정치적 색깔은 백작을 겨냥한 피가로의 독백에도드라지는데.
“귀족의 신분, 부, 높은 지위, 품위…. 그런 것들을 다 지녔다고 우쭐대지.”
이 대사만 봐도 그 당시 귀족들이 얼마나 격분할지 상상이 된다. 그래서 루이 16세가 노발대발하며 금지했던 거겠지.SCC 홀에 막을 올린 이 오페라 무대는 1~4막이기획되었다. 여러 가지 의미를 둘 수 있겠지만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겪었으니, 정치적 의미보다는 공연을 재미있게 즐겼으면 하는 마음을 더 담은게 아닐까 싶다. 더욱이 공연시간은 75분(인터미션 10분). 그 시간에 맞춰 이야기를 압축하려면 어느 정도 덜어내야 했을 것이다.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어떤 무대를 만들어갈지 기대가 되었다. 2시간짜리 유튜브 영상을 끄고 동그라미 친 달력을 보았다. 9월의 마지막 밤, 금요일이 기대되었다.
퇴근을 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 버스에 몸을 실었다. 경기도 용인에서 남부터미널로 가,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극장으로 들어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잠깐의 여유도 두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늦지 않게 오페라 극장으로 향했다. 홀은 생각보다 작았다. 데스크도 작았고 대기실도 작았다. 그리고 좌석은 예약제가 아니었다. 들어오는 대로 관객들은 빈 좌석에 앉았다. 좌석은 1층 2층으로 나뉘었지만, 어디에 앉아도 무대가 훤히 보였다. 가격이 저렴했던 이유가 이거였던가. 사실 전석 3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보고 나는 조금 불안했다. 일단 오페라라고 하면 비싼 가격부터 떠올랐으니까. 중세 시대 배경의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가, 아니면 오페라는 옛 귀족의 문화라는 편견에 사로 잡혀서 그런가. 당연히 그 가격도 높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다 보니 영어 울렁증 다음으로 나는 이 저렴한 가격을 두 번째로 걱정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작품을 즐겨야지, 불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무대를 보았다.
조명이 켜졌다. 곧이어 소프라노 김 홍경 씨가 나와 무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 무대는 기성 아티스트와 젊은 아티스트가 배역을 나누어 연기를 펼친다. 피가로/백작은 첼리스트가 맡았고, 수잔나와 백작부인은 기성과 젊은 아티스트가 나누어 맡았다. 케루비노는 젊은 아티스트가 홀로 연기를 했다. 그리고 노래의 내용은 뒤편에 띄운 화면으로 보일 거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내가 보는 장면이 어떤 내용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박수소리와 함께 1막이 시작되었다. 1막은 케루비노의 Non so piu cosa son(내가 누군지 알 수 없네) 곡이었다. 피아노 옆으로 그 역을 맡은 아티스트가 나타났다. 하얀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하나로 묶은 머리를 늘어뜨린 케루비노는 풋풋했다. 이제 막 제 감정을 알아챈 청년처럼 사랑을 고민했다. 그러나 그것을 연기로 담기에는 어딘가 어색함이 있었다. 긴장한 듯한 미소와 조금은 뻣뻣한 걸음걸이, 여유로움을 가장한 초조함에서 젊은 아티스트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어색함은 케루비노가 입을 열면서 끝이 났다. 곧고 시원시원한 소리가 작은 홀을 울렸다.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내는 걸까? 몸 안에 스피커라도 있는 걸까? 어수선했던 내 시선은 곧바로 케루비노에게 향했다. 케루비노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다가 피가로의 첼로를 맛보았다. 오페라도 처음이었지만, 첼로 연주도 처음이었다. 조금 더 큰 악기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작아서 놀랐고 사람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오페라 무대를 꾸밀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그렇게 무대에 몰입하다 보니 어느새 1막이 끝이 났다. 그리고 곧이어 2막이 시작됐다.
오페라는 실로 대단했다. 막이 시작되고 끝이 날 때까지 전율은 멈추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현대 음악에 익숙해져서 오페라가 많이 낯설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조금 어려운 것은 있었다. 아니, 사실 어려운 건 아니었다. 조금 눈치를 봐야 했던 점이었는데, 그건 순전히 타이밍의 문제였다. 언제 손뼉을 쳐야 하나, 그런 타이밍 말이다. 처음으로 오페라 무대를 본 것이니 손뼉 치는 순간이 어려웠다. 그러나 그 어려움도 3막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쉬운 일이 되었다. 어느새 나는 눈치를 보지 않고 먼저 손뼉 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끄는 힘이 대단했다. 그렇게 3막이 끝나고 4막이 되자 모든 아티스트가 무대 위로 올랐다. 그리고 <아내여, 용서해 주오!>라는 곡을 합창했다.
남 앞에 서서 무언가를 한다는 건 부담이 되는 일이다. 발표든, 노래든, 연기든, 무엇이 되었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터다. 그런데도 기성 아티스트는 여유가 넘쳤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부터 그녀들은 맡은 배역에 빙의가 되어 있었다. 배역이 느꼈을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했고 노래에 마음을 실었다. 발끝, 손끝 하나하나가 백작부인이었고 수잔나였다. 반면 젊은 아티스트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목소리는 아름다웠지만, 배역의 심정은 부족했고 펼치는 연기는 어색했다. 특히 4막에서 합창하는 모습은 그 차이가 선명히 보였다. 모든 아티스트가 악보를 들고 보았지만, 기성 아티스트의 시선은 관객들에게 향했고 젊은 아티스트의 시선은 악보로 향해 있었다. 어색한 미소는 덤이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세상은 완벽을 추구한다. 그 완벽함이 완성되기까지는 그만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상은 야속하게도 그런 과정 따위는 보지 않는다. 한국 사회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신입을 구하지만 경력이 있는 신입을 선호하고 금방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그런 인재가 되려면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그건 또 자기 회사는 아니길 바란다. 그 배움은 회사에서 하는 게 아니라며 지탄한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누구에게나 ‘처음’ 시기가 있을 테고 경험을 쌓는 과정이 필요한데 대체 그 경험을 어디서 구하란 말인가. 세상은 너무나 당연하게 완벽을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다 한국은 활동할 무대가 좁다. 해마다 경쟁은 치열하고 능력자는 많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무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저 젊은 아티스트도 분명 그랬으리라. 그랬기에 이 무대를 만든 게 아닐까? 젊은 아티스트를 위한 경험의 초석을 위해서.
4막의 무대가 끝나고 난 뒤, 배웅하는 아티스트들을 찍은 사진.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무대, 과정을 이야기하는 오페라. 그것은 콧대 높은전통적 편견이 아닌, 세상을 향해 삶을 노래하고 자유를 외치는뮤즈의오페라였다. 어느새 무대의 막이 내렸다.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올라 인사를 건넸다.공연시간 75분이 끝이 난 것이다.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버려서 아쉬운 마음이 절절했다. 그러나 한 번 내려온 커튼은 다시 올라갈 수 없었다.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손뼉을 치는 내내 무대에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서로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아티스트들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공허했던 마음 한 편이 따듯해졌다. 오늘은 타로카드 영상을 보지 않아도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