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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ana Jul 09. 2024

롭부리 원숭이들의 최후

  태국에 있을 때다. 방콕에서 동북부로 140km가량 떨어진 곳에 ‘롭부리'라는 시가 있다. 한 때 ‘원숭이 도시'로 관광객들을 사로잡았던 곳이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원숭이 축제’는 전 세계 사람들이 방콕 다음으로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이기도 했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관광객 발길이 끊기면서 먹이가 부족해졌다는 데 있다. 원숭이들은 인근 주민들의 집을 습격했고, 간혹 구경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먹이로 생각하는 모든 것을 가차 없이 가져갔다. 먹이를 주기도 전에 벌건 눈의 원숭이들이 우리를 감쌌다. 달려드는 한 원숭이를 내칠라치면 다른 무리 떼 원숭이들이 달려들어 애를 먹었다. 바나나를 버리듯 던져 준 후에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별생각 없이 귀여운 원숭이 구경이라고 생각한 우리 가족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사색이 돼 돌아왔다. 이후 지인에게 물으니, 원숭이가 아니라 날강도라며 손사래를 친다.


  알고 보니 롭부리의 사원 파와 시내 파 원숭이가 코로나 19 이후 관광객이 없어진 후 사원 파 원숭이들이 먹이를 구하기 위해 시내로 내려오면서 시내 파와의 갈등이 심화된 것이다. (사원 파 원숭이들은 시내 파 원숭이들보다 더 풍족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부자 동네 원숭이들이 살겠다고 시내 쪽으로 나왔으니 시내 파 원숭이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원숭이들 간의 영역 다툼이 빈번해졌고, 급기야 전쟁이 시작됐다. 문제는 코로나가 풀린 다음에도 한 번 바뀐 공격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난폭하고 교묘해졌다.  


  2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난 롭부리 원숭이가 생각났다. 앞서가는 차량이 조금이라도 신호에 늦게 반응하면 짜증 나듯 경적을 울린다. 조금이라도 본인에게 손해가 올라치면 가만있지 않는다. 누구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기세다(모두가 화가 나 있다). 돈이 되는 일이면 영혼이라도 판다. 행여 그것이 남을 해치더라도!  코로나19는 인류의 프로토콜을 바꿔놓았다.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인간만이 가진 도덕적 규율이라는 것도 하루아침에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음을 코로나19가 확인시켜 주었다. 롭부리 원숭이들의 전쟁은 지난 4월 대대적인 ‘원숭이 포획 작전'으로 일단락되었다.(

2024년 3월 6일 자 연합뉴스 기사 거리 뒤덮은 명물서 애물단지로… 태국 '원숭이 도시'서 포획작전

 https://www.yna.co.kr/view/AKR20240326089600076 )  


  그런데, 이게 정말 끝인가? 이제 완전한 평화를 찾은 건가? 내 대답은 글쎄다. 서식을 잃고 이성을 잃은 원숭이들의 전쟁이 흡사 지금을 사는 우리 모습이지 않을까. 가진 자가 더 가지려 하고, 허망한 죽음 앞에 책임지는 이 없고, 사기와 협잡이 판치는 시대에 착하게 살라고 가르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이러니 애를 안 낳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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