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의 일기
나의 아빠는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이 다른 사람이란 걸 보여주기 위해 일찍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아빠는 성공했고 산산조각난 그 가정이 아닌 유리처럼 매끄럽지만 그만큼 연약하고 다정스럽게 가엾었던 이 가정을 지키려고 아빠는 자신의 부모를 다시는 보지도 연락하지도 않겠다는 각서를 엄마 앞에서 썼다
오늘은 아빠의 생일이었고 오랜만에 식탁에 앉아 세 식구가 함께 밥을 먹었다 미역국을 먹은 것은 더 오랜만이었다
여전히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아빠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또 밤과 도시와 슬픔에 취한 사람들을 태우고 도로를 달리거나 다음 손님을 기다리거나 다다음 손님에게 바람 맞은 채로 걷다가 생일 다음날에나 들어올거다
추우면 길에 사는 동물들만큼이나 아빠 생각이 난다 나가기 전 아빠는 다음주부터 롱패딩을 입을 필요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
버스 정류장이나 역사 앞에는 아빠 같은 사람들이 많다. 바람막이의 두 구멍에 손을 쑤셔넣은 채 휴대폰을 뚫어지게 보며 서 있다가 갑자기 분주하게 뛰는 사람들이 서두르는 이유는 그들이 기다리는 것을 잡았기 때문이다.
자아를 갖게 되는 순간부터 삶엔 곧 기다리는 일들 뿐이라고 너와 나는 생각한다. 모두가 그렇듯 기다리는 일에, 그러니까 일상에, 두통이, 분노가 멈추길 기다리는 일, 밤이 오길 기다리는 일, 휴가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일, 애인과 엄마의 잔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 각종 공휴일과 월급날을 기다리는 일, 오늘 만난 아무개와 되도록 빨리 작별하고 버스에 혼자 몸을 싣기만을 기다리는 일에 지쳤다. 일로 가득 비치는 상들에 진절머리를 내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이리 갔다 저리 가는 마음처럼 가볍지 않은 몸이 딱 그만큼씩 무거워진다.
지하철 앞에서 시간표를 바라볼 때나 교차사거리에 서서 빨간 불을 노려보고 있을 때조차 숨이 덜컥 막히는 감각에 안 그래도 내려가 있는 선분홍빛 입술이 바들거리는 게 스크린도어 너머로 비치곤 한다. 미지근한 말들을 주고 받다가 싱겁게 헤어지는 동안, 내내 가슴이 답답하다 집에 들어가면 열에 아홉 번은 춥다.
아마 곧, 또 다른 기다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한 기다림의 마무리와 다른 기다림의 시작은 기어코 겹친다. 아빠가 밤의 영혼들을 기다리고, 그 영혼들은 차키를 아빠에게 쥐어준 채 몸을 의탁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다.
언젠가 글쓰기 수업서 ‘가짜 ㅇㅇ과 진짜 ㅇㅇ’의 빈 칸을 채워넣고 그 전문을 제목으로 하는 산문을 쓰는 숙제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ㅇㅇ에 사람을 채워 넣고, 처음으로 아빠에 대해 그토록 오래 생각하며 글을 썼다. 또 그 훨씬 이전에 들었던 철학 수업에서는 ‘사람’이 아닌 ‘기능’으로서 인식되는 노동자들을 지칭하는 기호학적인 개념을 배웠던 것 같은데 - 부르디외였나 아렌트였나, 바르트였던 것 같기도 하다... - 아무튼 그 두 순간에서 나는 공통적으로 가장 익숙한 길에서 가장 완벽한 타인이 되고는 했던 아빠를 떠올렸다. 나는 아주 춥거나 더울 때 빼고는 아빠에 대한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사람이 아닌 그저 자동차가 되면 되는데도 매일 일을 나갈 때마다 양복을 입고 나가는 아빠가 참 아빠답다고 생각했다. 있어도 없는 사람인데도, 한없이 부드럽고 조용한 기계의 역할만 수행하면 되는데도 그랬다. 가끔 아빠가 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다정한 남편으로 정평이 난 유명 연예인들의 애인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내 나이 또래의 손님이 아빠의 면전에 팁이랍시고 던진 돈이 날카로운 바람의 원반처럼 수려하게 운전석의 바닥에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듣곤 한다.
한번은 아빠가 대리가 아닌 전문 운전 기사 일을 아르바이트처럼 할 때 내가 그 차에 함께 탄 적이 있다. 베로니카와 그의 엄마를 태우고, 성남에서 용산에 있는 독일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일이었다. 아빠는 독일어를, 그들은 한국어를 할 줄 몰랐기에 꽤 수다스러운 아빠가 애써 침묵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의 침묵은 밤의 색깔과 닮은 아빠의 양복처럼 자연스러운 옷 같았다.
그날 아빠는 독문과를 전공한 내가 아이의 엄마와 몇 마디를 주고받는 걸 보고 무척이나 뿌듯해 했다. 별다른 안부에 지나지 않는 대화였지만 어쩌면 아빠는 아주 잠깐 ‘보이는 사람’이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