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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a Sep 25. 2016

우리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터널>(2016)

  
  영화가 비극에 얽힌 우리의 기억을 오락으로 소비한다면?  적확한 예가 영화<터널>일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생략하겠다. 기아자동차 판매원인 주인공 이정수씨가 무너진 터널 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오는게  전부인 단순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고립된 환경에 처한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가족의 품으로 생환하는 이야기가 독특할건 없다.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처럼 우주에서 일어난 산재(?) 에도 인간은 기지를 발휘하여 살아 돌아오지 않았던가! 뭐 터널쯤이야.
  이 영화에서 관객이 보는건 줄거리가 아니라 '풍경'이다. 재난을 둘러싸고 헛발질하고있는 우리 사회의 풍경. 위기에 대처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무능력한 풍경 말이다. 사고 당사자의 상태는 고려하지 않은채 '조금만 큰소리로 말해주겠냐', '어떤 터널이냐, '어느 정도 무너졌냐', '안막히면 5분내로 도착한다'며 영혼도 없이 '안전한 곳에서 기다려달라' 능글능글 대답하던 119상담원, 생존자 음성을 방송으로 송출한다거나 삼풍때 생존기록깨는데 관심이 있고 생존자의 생존엔 전혀 관심이 없는 기자와 카메라, 터널 붕괴에 멘붕이 된 구조담당자가 구조매뉴얼을 뒤지는데 내용이 없는 황당함, 고위 관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현장 전문가들이 하자는데로 해라', '잘 협의해서 진행하라'고 아무 의미없는 소릴 지시하고 앉아있는 장관,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동원하라'는 대통령의 지시, 구조로 터널 공사가 중단된 것에 '국가경제 큰타격' 운운하며 생존자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국회의원, 광고하듯 서있는 사고현장의 통신사 배너, 기념사진 찍듯 고위 관료들과 사고 현장에서 사진 찍히는 아내,  아내에게 모텔 숙박키를 주며 조심스럽게 '지원금'얘길하는 구조대원, 생존자 구조에 인간적인 공감을 보였던 대원의 죽음, 부실공사로 지어진 터널과 실제와 다른 엉터리 터널 설계도, 죽은 사람 살리자고 멀쩡한 우리 아들이 죽었다며 계란을 맞고 선 아내, 유치원에서 원망의 소릴 듣고 다니는 딸 수진이….
  




  뭣이 생각나는가?  터널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는 이정수를 볼모로 보여주는 이 잡다한 풍경들은 한결같이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한다. 배 안의 사람들이 살아있다는데 왜 구조를 하지 않냐며, 뉴스 생중계로 가라앉는 배를 바라만보고 있던 수일동안의 기억, 기억 속에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생존자들의 구조를 방해하고 지연하던 대한민국 정부가 있다. '고의'로 구조를 하지 않았다는 정황과 증거들 속에서 일부러 세월호 선원들이 있는 곳으로 가 그들만 구조해 온 해경이 있고, '최선을 다해서 구조해라'는 대통령도 있고, 사실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았던 모든 정황들이 있다. 세월호 사고현장 주위에서 의로운 이들이 구조를 하다 죽거나 사고를 당했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는 못할망정 삿대질을 해댄 여론, 세월호 얘기만 나오면 국가경제가 큰 타격을 입는다던 여당 의원들과 언론보도의 기억도 있다. 지금도 세월호 특조위를 해체시키려는 움직임, 선체의 증거를 고의로 훼손하는 짓거리들 속에서 유가족들은 힘겨운 싸움을 하는 중이다. 박근혜 정부가 감추려고 하는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려 모든걸 걸고 싸우는 유일한 '증인'들이다. 재앙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풍경만 수집해 모아다 이야기랍시고 이어붙이면 딱<터널>같은 영화가 된다.  <씨네21>인터뷰(8/8)에서 김성훈 감독은 "관객이 재밌게 봤으면 좋겠다. 영화의 유머러스한 부분들도 즐기고 손쉽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 했다. 세월호의 비극은 해결되지 못한 사건인데 영화는 이제 그만 여기서 멈추고 '재미있게 웃자고', 살아남았으면 그걸로 된거라고, 약간 불안하지만 그래도 곁에 남아있는 동반자의 손을 맞잡으면 옛정 붙들고 또 어찌어찌 살아진다는, 어처구니 없는 엔딩으로 궁핍한 상상력을 드러냈다. 이따위로 비극을 수단화하는 영화에 가당치도 않은 관객수라니.

  아내가 제2터널공사 서류에 사인했고, 생존자는 그 때문에 거의 죽을뻔 했던 것인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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