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da Oct 03. 2016

가망없는 세계를 '청소'하고픈 자유주의자의 충동

<칠드런 오브 맨>(2006)

  전쟁으로 초토화된 도시, 건물 잔해의 먼지를 뒤집어 쓴 아기와 피눈물 흘리는 난민의 울부짖음,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이민자와 이념, 종교, 성차, 인종으로 재단된 인간들을 노예취급하는 고위관료와 경찰, 참상의 실재를 스펙타클로 전시하는 미디어, 오염된 바다와 식수, 대기질, 잦은 자연재해….

  영화 얘기가 아니다. 저 너머 남일같던 '죽음'이 물렁한 내 살갗을 스치고 지나는, 소름끼치는 순간을 온몸으로 경험하며 사는 시대, 현재의 풍경이다. 4대강 사업 이후 급증하는 강물의 발암물질을 불안하게 식수로 들이키고(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47708), 잦은 지진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원자력 발전소를 다시 바라보며, 옆나라의 '후쿠시마 재앙'을 떠올리고(http://www.trueactivist.com/fukushima-radiation-has-contaminated-the-entire-pacific-ocean-and-its-going-to-get-worse/), 불안을 다독이기는 커녕, 설득력없이 '안전'만을 강조하는 여당 무리의 원전 지역방문 '정치쇼'에, 경찰이 쏜 물대포에 사망하신 백남기님의 시신을 부검해 죽음을 '병인'으로 둔갑시키려는 대한민국 정부의 사기행각, 그리고 최근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알리는 보도에 나온 어린아이의 모습과 눈물(http://m.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76767&fb=1).
  



  전쟁과 환경문제, 특히 후쿠시마로부터 태평양 전역으로 퍼진 방사능 관련 기사를 접할때마다, 생명의 소멸과 희망없는 미래를 감지한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2006)은 2027년이라는 미래의 묵시록적인 풍경에서 지금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테오(클라이브 오웬)가 있는 2027년은 알 수 없는 '불임'으로 전세계가 멸망하고, 영국만이 유일하게 남은 암울한 시대다. 최연소 인간인 18세 디에고의 사망소식이 글로벌한 뉴스거리가 되는 세상, 방금 전 커피를 샀던 카페가 폭파되고, 경찰이 지키고 선 승강장이 아니면 달리던 지하철이 성난 군중의 공격을 받는 도시, 짐승들은 길가에 버려져 어느 곳에서나 사체를 볼 수 있고, 이민자들은 '푸지'라 불리며 벌레취급 받는 세상, 도심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를 단절파, 피쉬파 같은 특정단체의 탓으로 돌리는 정부, 병 치료가 아닌 평온한 죽음을 주는 약이 필수품인 세계, 이런 시대에 관료로 살던 테오가 세상 유일한 임산부인 키(클레어-홉 애쉬티)를 만나 그녀를 '미래호'에 태우려 힘겨운 사투를 벌인다.





  체념과 회의로 살던 테오는 '임신'이란 기적적 사태를 목격하자, 구원의 계시를 받은 듯  자신의 모든걸 내던진다.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용맹하게 나아가는 테오가 마치 신의 메시지를 받은 '선지자'처럼 보이는 것은, 영화 군데군데 깔린 성경적 모티브 탓이다. 테오가 키에게 '애아빠가 누구냐'묻자 키는 농담으로 '처녀'라며 키득거리는데, 이는 '동정녀 마리아'를 연상케 한다. 폭력과 죽음, 피와 먼지로 얼룩진 벡스힐 포로수용소의 동정녀 마리아(키)에게서 태어난 딸은 마치 예수님이 구유(낮은 곳)에서 태어나시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난민과 경찰, 모든 인간이 무릎꿇으며 기도하던 모습은 구원의 희망인 아기에게 보내는 인류의 경외였다.
  재스퍼(마이클 케인)에 의하면 테오는 '같은 신념 속에서 줄리엔(줄리안 무어)을 만나 딜런을 낳았'다. 딜런은 신념이 낳은 열매였다. 그러나 2008년 독감이 세계를 휩쓸었을때 딜런이 죽은 것을 두고 재스퍼는 '테오의 신념이 운명에게 진 것'이라고 표현한다. 재스퍼가 피쉬단에게 총살당하걸 보고 괴로워하던 테오는 '모든건 신의 섭리'라 믿는 미리엄에게 "이런 것에도 이유가 있소"하며 화를 낸다.
  선지자는 의심해선 안되고, 뒤돌아봐선 안된다. 재스퍼의 말대로 테오는 운명에게 진 것일까? 그는 두렵고 불안에 떠는 키에게 할 수 있다 확신을 주고, 자신의 신념을 밀어 붙여 그녀를 독려해 인류를 구원하고자 군중의 소요사태와 총성을 용감하게 뚫고 전진한다. 재스퍼, 미리엄, 마리카, 그리고 테오의 희생을 딛고 망망대해에 당도한 키와 아기 딜런은 '미래'란 이름의 배에 닿는 것에 성공한다.
  



  이 영화가 성공과 구원의 서사일까? 테오가 떠난 도시에 떨어진 미사일 폭격은 끔찍한 결말이다. 아이가 태어났던 난민수용소 위로 떨어진 미사일은  손쉬운 '대량학살'에 다름없다.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노아의 방주 같은 '미래호' 탑승 티켓을 쥐지 못한 남은 인류에 가해진 절멸, 대규모 청소.
  <칠드런 오브 맨>의 결말은 미래의 가능성이 없는 세계에 '학살'의 날린다. 모두의 미래를 앗아간 불임, 근본주의나 종교단체, 정부건 급진적 좌파건 모든 문제와 대립은 '폭력'이고, 세계를 오염시킨 원인이다. 대립자체를 소거하고 변질된 세계를 청소하듯 도시를 깡그리 날려버리는 미사일…. <칠드런 오브 맨>에 새겨진 묵시록적이고 메시아적인 태도에서 나 '반유대주의'의 '최종 해결책'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한 해석일까.
   구원을 위해 운명을 돌파한 주인공의 희생적 신념은 인류의 '청소'를 인지하지 못한다. 난민들의 비명과 울부짖음은 롱테이크의 사실감에 가려지고, 이 훌륭한 롱테이크는 주인공의 긴박한 움직임을 따라 그들을 신경쓰지말고 스쳐 지나치라고 재촉한다.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선지자의 모습으로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체험한 주인공이 자신의 모든 현실적 조건들을 제끼고, 신념으로 운명을 돌파할 수 있던 것은 그가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탑재한 자유주의 전사이기 때문인건 아닐까.

+ 선지자의 신념의 승리를 증거하는 것이 바로 미래호다. 그런데 행적과 출처가 묘연한 미래호는 뭔가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데, 이 미래호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바다 위에 떠있는 거대한 상징물 같다. 방주처럼. '청소' 이후에 남은 미래란게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우리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