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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a Oct 26. 2016

소박한 인간의 탈을 쓴 아메리칸 히어로

동림옹의 '성조기여 영원하라Stars & Stripes Forever'

  서서히 몰락하는 이 세계를 유지하려는 어마어마한 자본, 전 세계적 관심과 노력을 본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꺼져가는 생명들과 사라져가는 인간다움이 불균등하게 드러남도 함께 경험한다. 전쟁의 참상에서 우리는 한 개인의 비참한 얼굴보다 전쟁의 명분을 먼저 접한다. 빌딩이 불에 타 무너져내리고 테러로 비행기가 불시착하는 스펙터클한 재난의 풍경은 어떠한 설득과 논리도 불필요하다는 듯한 전쟁의 명분을 우리에게 던진다. 그리고 엉망인 세계를 더욱 엉망으로 만들려는 삐뚤어진 영웅의식이 마음에서 피어오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아메리칸 스나이퍼>(2015)에서 주인공 크리스 카일(브래들리 쿠퍼)은 사랑하는 연인의 비명을 듣고 텔레비전 뉴스 앞으로 뛰어간다. 뉴스에서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내리는 끔찍한 장면은 전 세계인이 알고있는 ' 9.11테러'다. 이 테러를 보는 크리스의 눈빛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고, 그의 손은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하는 듯이 꽉 움켜쥔다. 분노와 정의에 찬 이 눈빛은 적을 겨냥하는 스나이퍼 크리스의 눈으로 연장된다. 사냥으로 남자다움과 폭력을 동시에 가르치던 아버지에게서 자라며, 로데오를 하고, 카우보이를 꿈꾸던 크리스. 어느 날, 미국을 향한 케냐의 테러소식에 크리스와 동생 제프는 "이 자식들이 우리에게 이런 짓을!" 라며 해군입대를 지원한다. 해군이 되기 위해 갖은 인간적 멸시를 포함한 육체의 '고된' 훈련을 거친 크리스는 테야(시에나 밀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그리고 크리스는 갓 출발하는 신혼의 두근거림을 품은 채, 결혼식 현장에서 파병을 명령 받는다. 알카에다를 멸하러 중동에 온, 이 훌륭한 스나이퍼는 전장을 경험할수록 많은 적을 죽이는데 성공한 '전설'이 되어가고, 그의 몸에 붙은 현상금은 점점 높아져간다.  '훌륭한 사냥꾼이 되겠다'던 아버지의 예감이 적중한 것인지 크리스는 최고의 인간 사냥꾼이 된다.

(아 브래들리 쿠퍼 간지...)




  '테러와의 전쟁', '사막의 여우작전' 이란 대단한 임무 속에서 이 전쟁영웅의 고뇌는 공동체와 타인을 위한 희생의 고귀함과 맞붙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리는 '미국적 영웅'을 만난다. 이 미국적 영웅은 '우리'라는 공동체에 테러와 폭력으로서 해를 가하는 '알카에다'조직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정의를 실현한다. 이 알카에다 조직은 어미가 자신의 아이에게 폭탄을 주는 '악마 같은 짓'을 하고, 드릴로 아이의 허벅다리를 뚫어버리는 '잔악함'을 지닌, 집에 무기를 숨겨두고 미군들에게 태연히 식사대접으로 '거짓'을 행하는, 한마디로 '야만인'이다. 네번째 파병에서, 땅에 떨어진 총을 낑낑거리며 주워들어 미군으로 향하던 한 무슬림 소년을 향해 크리스는 총구를 당길지 말지를 고민하며 '제발 그 총을 내려두라'는 말을 소원처럼 되뇌인다. 총구를 당기려는 순간, 소년은 돌연 무거운 총을 내려 놓고 반대편으로 달려가는데, 크리스는 자신이 총구를 당기지 않았음에 큰 숨을 몰아쉬며 안도한다. 그리고 괴로워한다. 인간미넘치는 미국 영웅은 아이를 잔인하게 해하던 '자르카위'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듯.
  네이비 씰 최고의 스나이퍼, 크리스는 악을 처단한다는 단순하고 확고한 신념으로 이 모든 고통을 감당한다. 그는 회의하는 동료군인에게 '여기 악이 있는거 아니냐고' 확고한 목소리로 다그친다. 그러나 그는 '전쟁 중독'에 빠진 미친 영웅도, 전장에서 끊임없이 회의하는 나약한 인물도 아니다. 캐서린 비글로우의 영화 <허트로커>(2008)의 제임스(제레미 레너)의 경우는 '다 쓸어버리자'라는 대사가 알려주듯 전쟁의 폭력적 상태에 미쳐있는 인물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두고 로봇이 아닌 자신이 직접 다가가 해체하고 돌아온다. '어차피 터지면 죽는다'며 방호복을 벗어던지고 맨손으로 폭탄을 해체하기도 한다. 자신을 '죽일 뻔 한 날의 흔적'이라며 폭탄에서 나온 기폭제 같은 부품들을 간직하기도 한다. 동료 군인조차 그의 무모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중사님은 매번 방호복을 입고 작전수행을 위해 폭탄을 향해 똑바로 달려드는데 어떻게 그럴수 있죠? 죽는게 무섭지 않나요?'라 묻지만, 제임스의 대답은 '잘 모르겠다. 글쎄. 아예 생각을 안할 뿐이야.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그래 나도 모르겠어, 내가 왜 그러는지 자네는 알겠나'하고 답할 뿐이다. 판단이 중지된 상태에서 사고가 결핍된 채 죽음을 쫓아 움직이는 제임스. 죽음 가까이에서 느끼는 쾌감에 중독된, 전쟁에 미친 제임스조차 인간다움은 남아있다. 그는 죽은 상태로 몸 속에 폭탄을 파묻고 누워있는 시체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 시체가 자신이 알던 dvd팔이 소년, 베컴이 란 사실을 알고, 이 인간 폭탄을 폭파시켜 날려버리려 한다. 그러나 제임스는 소년의 시신을 폭파로 날려버리지 않고 물컹한 몸 속에 손을 집어 넣어 폭탄을 해체한 후, 시신을 수습해 나온다. 전쟁에 미쳐있지만 인간다움의 도덕은 버리지 않는, 이 백인 미군이야말로 희생을 뒤집어 쓴 채 전쟁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인물로 보였다. 전장의 폭력적 상황 속에서 '미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듯, 폭력의 원인을 인간의 속성으로 환원시키는 식의 결론은 역사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 쯤으로 그치게 만드는 아쉬움이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크리스'는 이보다 더 정상적이며 이상적이다.  


  정상적이며 이상적인 전쟁영웅의 죽음과 그를 향한 미국의 애도는 전쟁에 대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드러낸 속마음이다. 소박한 가정에서 자라나 소박한 꿈을 꾸던 평범한 소년 크리스(브래들리 쿠퍼가 소박한 마스크는 아니지만)가 영웅으로 활약하던 전쟁에서 본국으로 돌아와 가족에 헌신하고, 신앙에 의존하며, 약간의 트라우마로 고통받으면서, 자신과 같이 고통받는 군인을 돕고 살려다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군인에게 총살당하는 엔딩은 펄럭이는 성조기로 뒤덥힌 미국사회의 애도를 수긍케 한다. '그는 대단히 많은 사람을 죽인 최고의 '인간 사냥꾼'으로서 애국에 몸을 바쳐 큰 공을 세우고, 영웅적 희생정신으로 살다 죽었다.'는 평범한 사람의 영웅적 삶의 스토리. 이 소시민적 평범함은 누구라도 그의 삶을 납득할만 한 것으로 만들고 실제적 역사의 갈등을 희석시키는 강력한 용매제로 작용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아메리칸 히어로의 평범성을 내세우며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성조기여 영원하라(Stars & Stripes Forever)"고. 고립주의 (isolationism)와 국제주의 (internationalism)사이에서 가면을 벗을 클린트 이스트우드 작품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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