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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a Dec 14. 2016

환상의 달달함에서 온 멀미

<라라랜드>(2016)

                                                                                                                                                                                                                                                                                                                                                     

  달달하다. 요즘 드라마 <도깨비>로도 충분히 달달하다 느꼈는데 <라라랜드>(2016)로 또다시 달달해졌다. 배우들의 애교섞인 표정 위에 춤과 음악이 더해지니 추위에 굳어있던 몸이 핫초코 위 마시멜로처럼 스르르 녹아내린다.  
  영화 시작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오프닝시퀀스는 노련한 배우들의 춤과 노래로 뮤지컬 영화에 대한 갖가지 우려들을 잠재우려는듯 강렬하다. 일상의 리듬을 깨듯 활기가 넘치는 이 오프닝시퀀스를 보고나면 '뮤지컬영화니 서사가 약할꺼야', '춤과 음악에 얼마나 묻어갈까'하는 의심들을 풀고 곧추세웠던 허리를 느슨히 무너뜨리게 된다. 

   여자주인공 미아(엠마스톤)은 la에서 배우를 꿈꾸는 배우 지망생이다. (여느 영화에서처럼 배우지망생은)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배우의 꿈을 꾸며 여러번의 오디션을 갖지만 번번히 기회를 잡지 못한다. 그래도 그녀는 언제나 열정에 차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그녀와 마주친 남자주인공 세바스찬(라이언고슬링)은 재즈피아니스트다. 그는 꽤 올드스타일을 추구하는 고집이 있으며 그에 걸맞게 자존심도 엄청나다. 그러나 셉(세바스찬)은 생계를 위해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치거나 파티 밴드의 키보드 연주로 먹고산다. 델로니우스몽크를 존경하는 진지한 이 재즈 피아니스트가 A-ha의 take on me를 연주해야하거나, 바보같은 캐롤을 식당 반주음악으로 뚱땅거려야만하는 상황은 그를 우습게 만든다. 심지어 세바스찬은 레스토랑 오너가 주문한 연주목록대로 연주하지 않아 사장에게 해고당하고 만다. 해고사유가 된 세바스찬의 곡에 이끌려 식당으로 들어온 미아는 그와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마치 일자리를 잃는 대신 운명의 상대를 만나기라도 한 듯 말이다.
  두 사람은 <500일의 썸머>처럼 캐롤이 울려퍼지는 겨울에 만나기 시작해 사계절을 함께보낸다. 재즈가 싫다는 미아에게 재즈는 '소통'이고 결코 듣기 편안한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것임을 침튀기며 설파하던 세바스찬은 재즈의 명맥을 유지할 자신만의 클럽을 갖고자 하는 꿈을 내보인다. 아마도 미아는 세바스찬으로부터 꿈을 향한 열정에 전염된듯 하다. 다른사람의 이야기인 오디션은 던져버리고 니가 하고싶은 이야길 쓰라는 그의 조언은 그녀를 자신이 쓴 연극무대에 서게 했다.                                        




                                                                                                                                                                                                                                                                                                                                           

  여느 로맨틱한 이야기처럼 둘 사이엔 '오해'가 있었고, '실수'는 언제나 남자가 하며, 그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 '장거리를 달려(la-볼더시티)' 그녀의 손에 용기와 기회를 동시에 꼭 쥐어주고 자신은 초심으로 돌아가 둘다 바라던 꿈을 이룬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 
  시시하고 그저그런 이야기 속에는 영상으로만 느낄 수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50년대 무지컬영화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움을 세련된 방식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여기엔 재즈음악이 크게 한몫하는 듯하다. (자연스럽게 <위플래시>를 연상하며) 재즈음악의 구성이 영화적으로 구현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는데, 커트없이 음악과 인물들의 춤을 따라 흐르던 카메라가 하나의 주제에서 다른 곁가지의 연주를 즐기다가 다시 그 주제를 반복하는 프레이즈가 나오듯 마무리 된 인상을 받는다. 컷으로 만들어진 편집보다 롱테이크의 프레임에서 리듬을 만들어가는 음악과 춤의 비중이 크다. 카메라 워킹도 유려하지만 뛰어난 색감과 이야기를 이어가는 춤은 독특한 방식으로 활력을 준다. 예를 들면 두 사람의 테마로 등장하는 'city of star'란 곡은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데이트하던 장면에선 우주의 리듬을 따라 왈츠를 추는 오케스트라편곡으로 화려함을 더하는 반면 어떤 장면에선 세바스찬이란 고집스런 재즈 피아니스트의 고독함을 선율로 대변하듯 외롭고 처연한 느낌으로 핀조명을 받는다. 화려한 영상에 이런 변주들이 재미를 더한다. 게다가 존레전드가 인기에 영합하는 속물 뮤지션으로 연기하는 모습을 볼수있다!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의 탭댄스, 우주를 수놓은 무중력에서의 삼박자 왈츠, 빛이 반사된 수면 위의 왈츠같은 몇몇 장면들은 화려함과 흥겨운 리듬이 더해져 꿈만 같은 느낌을 준다. 서로를 빈정거리며 놀려대지만 입가에서 새어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 없는 엠마스톤의 커다란 두 눈은 너무나 사랑스럽다. (재즈, 크리스마스, 로맨틱, 성공적?)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날때는 꼭 잠에서 깨어나는 듯했다. '내가 나로 발견되는 곳이 어딘가 있지 않을까, 사람들 틈의 한사람, 난 그렇게 밖에 안보이는 것일까', '나는 불사조처럼 다시 날꺼야'하던 두 사람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을 넘어서려 사랑을 버팀목삼아 서로에게 의지했다. 영화가 끝난 후 그들이 꿈을 위해 노력하던 어떤 (사소해보일지 모르는) '저항'들이 상징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안온함에 안주한다는 사실에 약간 힘이 빠졌다. 결국 이것은 영화에 대한 영화란 생각에 조금 씁쓸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라라랜드>가 주는 꿈결같은 '달달함'은 그것이 완벽히 환상이라는 점에서 달달하다. 그리고 딱 달달한 만큼이나 쓰디쓴 농도로 현실을 맛본다. 하늘로, 우주로 날며 춤을 추던 스크린의 낭만이 끝나는 순간 현실로 뚝하고 떨어지는 그 낙차에서 오는 무게에 짓눌리는 기분,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그런 멀미가 났다. 영화관을 나오면 로맨스라는 여유따윈 꿈꿀 수 없는 <판도라>같은 한국영화들과 마주한다. 무력한 언어로 비슷한 설명을 되풀이할 재난을 반복하는 한국영화와 현 시국에 대한 피로감과 달달함에서 오는 현기증에 멀미를 느끼며.  


꿈을 좇는 꿈같은 이야기는 꿈에서나 가능하다.



_택시를 타서 멀미가 난 거신지
_언제나 함께 수고하시는 언니가 즐겁게 보셨길(다만, 나랑 봤다는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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