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2017)
그때, 그 마지막 순간에 희생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때 왜 우리는 그들을 구할 수 없었을까. 지금 우리는 이 곳에서 뭘 할 수있을까.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걸까. 갑작스러운 재앙과 참사의 흔적, 재난의 비극에 줌을 당겨 이리저리 촛점을 맞추다보면 사라져간 삶들을 다시 살리고픈 소망,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해야할 일, 만일(…)했더라면하는 상상 등 수만가지의 생각을 마주하게 된다.
애니매이션 <너의 이름은.>(2017)은 비극 속 두 남녀주인공의 로맨스로 그 수만가지의 상념을 상기시킨다. 주인공인 '타키'와 '미즈하'는 꿈을 꾸고 일어나면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 누군가를 찾고있는 이유모를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유는 모른다. 두 사람은 빈번하게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 신비한 경험으로 각자의 일상을 살아본다. 남자주인공인 '타키'는 잠에서 깨어나면 물렁한 가슴을 만지며 여자임을 깨닿고, 미즈하는 굵은 목소리에 자신의 신체의 낯섦을 감지한다. 도쿄라는 대도시의 고등학생인 타키와 이모토리의 시골마을에서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미즈하. 두 사람은 몸이 뒤바뀌는 일이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깨닿는다. 몸이 뒤바뀌는 연유가 무엇인지 질문하기도하고, 서로의 일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규칙을 만들기도 하며 두 사람은 각자가 속한 시공간에서 핸드폰과 메모로 대화한다.
<너의 이름은.>은 애니매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실물을 촬영된 듯한 리듬과 공간묘사로 몰입을 돕는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햇살이나 밤하늘을 신비롭게 가로지르는 혜성, 금빛으로 물든 황혼기,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아름다움으로 풍경을 묘사하는 점은 애니매이션이 가질 수 있는 큰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영화의 리듬은 그림을 감상하는 것에 할애되지 않는다. 이 풍경들은 실사영화처럼 짧은 호흡으로 내달리며 일상적 공간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듯한 풍부한 공간묘사로 생동한다. 2차원 그림에 머무르지 않는 입체적인 풍경 위로 밝고 청명하며 낙관적인 음악이 얹힌다. 희망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음악은 그들의 행동과 맞붙어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강렬한 '순간'들을 그린다. 일반 극영화의 리듬과 앵글을 활용함으로써 대상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그려내는 이 애니메이션은 단순하고 평범한 서사를 풍성한 감성으로 채운다.
이야기의 흥미로운 부분은 후반부에 치우쳐있다. 3년이란 시간차로 미래의 시점에 있던 타키가 재앙에 희생된 미즈하와 이토모리 마을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이야기. 도쿄라는 '대도시'의 에너지넘치는 젊음을 누리는 '남자'주인공이 시골 '주변'에 사는 한 '여자'아이를 구한다는 설정이, 중심이 주변을 구한다는 고리타분함으로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에서 실낱같은 '끈'이 주는 희망적 메시지에 결국 매료되어버린다. 신사의 전통을 잇는 미즈하의 할머니가 미즈하(또는 타키)게 말해준 '무스비(시간을 흐르게 하는 신)'이야기, 즉 시간의 흐름 그 자체를 나타내는 실들이 이리저리 뒤틀리고, 얽히고, 돌아 멈춰서서 이어지고, 매듭짓는 무스비는 영혼을 매듭짓고 인간과 하나님을 잇기위한 관례이자 정신인 것이다. 꿈결처럼 자꾸만 잊어버리는 서로의 이름을 잊지않기위해 실낱같은 끈을 부여잡고 잊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울부짓는 주인공들의 모습. 그 속에서 과거와 지금의 현재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물건'(미즈하의 머리 끈), 무스비라는 '정신'과 '전통' 등으로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스며들어 너와 내가 이어져 있음을 기억하고 잊지말자고, 기억하는 일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영화<너의 이름은.>은 말하고 있다.
'넌 누구냐' 끊임없이 되묻고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하는 일, 그것은 모든 것이 사라져 황폐한 세계 속에서 개개의 구체적인 삶과 우주를 기억하는 일 것이다. '기억하는 것', 이것이 남겨진 세계의 사람들에게 요청되는 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