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Arrival, 2016)
컨택트를 보고나면 몇번의 탄성이 나온다. '아! 이런 고차원적이고도 신비한 내용의 대중영화라니!', ' 개념의 이야기를 시각화하다니!', '절지류? 거미? 더..덕후? (영화<에너미>(2014))' 이런 탄성들. 영화 <컨택트>(드니빌뇌브, 2017)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ies of Your Life)를 각색한 영화다. 원작은 언어학적이고 수학적인 개념을 통해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존재가 가진 '비선형적 시간관'을 전달하려 한다. 마치 작가 테드 창이 외계인 헵타포드가 아닐까 싶기까지 하다. '과연 영화로 그려낼수있을까' 의문을 품었던 난해하고도 신비한 이 이야기가 결국 드니빌뇌브에 의해 성공한 듯 하다. 허구적인 공상이 아닌 현실적인 무드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도록 만드는 드니빌뇌브의 <컨택트>는 꼭 보길 권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묻고 또 해명했을 것이다. 영화 제목에 관련된 에피소드. 이 영화는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조디포스터 주연의 <콘택트>(로버트 저메키스, 1997)와 다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제목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적 맥락에서 <컨택트>라는 제목은 97년도 작품 <콘택트>의 강렬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영화라는 상품소비를 위한 마케팅 목적에서 <컨택트>라는 제목은 즉각적으로 ' SF장르'와 '외계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쉽고 효율적인 인식을 심어준다. <E.T>(스티븐스필버그, 2011)나 <우주전쟁>(스티븐스필버그, 2005)처럼 외계의 존재와 극적으로 만나는 이야기, 여성 학자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일부 유사점이 있다. <컨택트>라는 제목이 아쉬운 이유는 이 영화가 지금까지의 흔한 SF영화를 소비하듯 관습적으로 대하지 않길 바라는 욕심에 있을 것이다.
원제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다. 인간의 '인생'과 '이야기'가 주제다. 이야기라는 것엔 늘 시작과 끝이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기억'에 다름없다. 인간은 이 기억이 아니고서는 자신의 연속성과 의미를 보장받을 수 없는 존재다. 만일 기억이 없다면 인간은 매순간 휘발되는 현재의 층위에서 사라져버리고 말것이다. 기억은 인간 존재를 지속시킨다는 의미에서 의식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 서두의 주인공 루이스 뱅크스박사(에이미 아담스)의 나래이션 '시간의 법칙 속에 갇혀있는 인간'이라는 말은 인간이 기억을 붙잡고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처음과 끝이라는 시간법칙의 인과성으로 사고하고 선형적인 문자로 이야기(기억)를 재구성하는 인간. 언어학자로 외계의 존재와 대화를 시도하려는 루이스 뱅크스 박사는 딸아이와의 기억으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외계존재와의 대화를 시도한다는 거국적이고도 범인류적인 미션을 수행하는 매순간 불쑥불쑥 등장하는 딸과의 '기억'은 그녀를 괴롭히는 듯 하다. 갓태어난 딸을 느끼는 자신, 유아기의 딸과의 장난, 죽음을 맞이한 성인의 딸, 학생인 딸과 투닥거리는 모습 등 꿈같은 기억으로 홀로 괴로워한다. 그런데 이 기억은 뱅크스박사의 미래다. 이것은 외계존재의 비선형적인 언어를 이해함으로써 갖게 된 인생 전체의 시간에서 온 것이다. 뱅크스 박사는 헵타포드의 언어로 사고하게 되면서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경험하고 세월 전체를 동시에 지각한다.
이 영화의 스펙터클한 첫 장면은 바로 헵타포드와 첫 대면 순간이다. 헵타포드(heptapod)는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에 붙은 호칭으로, 그리스어 'hepta' 는 일곱(7), 'pod'는 다리, 간단히 일곱개의 다리란 뜻이다. 원작에서 헵타포드는 '방사형 대칭', '코듀로이 천 같은 잿빛 피부', '원통형 몸', ' 몸통 상단을 둘러싼 눈꺼풀 없는 일곱개의 눈(전후좌우 구분 없음)', '당황스러울만큼 유동적인 움직임'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의사소통 시 '푸르륵', '후드득' 거리며 '개가 물터는 소리'를 내는데 마치 바람이 어떤 막을 흔들때 '퍼러럭'하고 나는 소리 같다. 헵타포드와의 대화로 뱅크스 박사는 그들이 언어적이지만 비음운적인 방식으로, 음성언어가 아니라 수화처럼 마음 속의 소리를 손으로 그리듯 대화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를 수집하고 대화에 숙달한다.
헵타포드의 언어는 '새둥지처럼 얽히고 설킨 문장'으로 '캘리그래피식 디자인, 특히 아라비아어와 흡사한 디자인'으로 묘사된다. 이들의 언어는 어디에서 읽기 시작해도 좋고 뻗어가는 절을 따라가면 결국 문장전체를 읽게되는 식인데, 문자는 단어로 분할이 불가능하며 회전하고 수정하면서 어표를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곡률이나 굴곡방식에 변화를 주는 비분절적 문자소는 발화형태가 없기때문에 무조껀 어표로 대화한다. 체계적이지 않고 원시적이며 메시지의 전체 문맥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다. 헵타포드의 언어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물리학자 이안(소설 속 게리)은 헵타포드의 사고방식을 변분원리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빛이 공기 중에서 수면을 통과해 물 속으로 들어갈 때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빛이 수면에서 굴절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인간은 빛의 굴절현상을 인과적 측면에서 바라본다. 예컨대 직선으로 가던 빛이 수면에 도달하기 때문에(원인) 빛의 방향이 바뀐다(결과)는 식이다. 이 말은 굴절률 때문에 빛이 방향을 바꿨다는 설명이 된다. 반대로 헵타포드는 빛이 두 지점 사이 가장 빠른 경로 (공기와 물의 매질상태를 고려한) 언제나 최소시간을 도달할 수 있는 경로를 고려하는 식으로 '목적'을 지각한다. 빛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을 최소화했다고 설명된다. 헵타포드 관점에서 세계는 이런 것이다. '페르마의 최단시간의 원리'처럼 빛이 이동시간을 최소/최대로 하는 경로를 택하는 변분원리를 따라 선택 가능한 경로를 검토하고 각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듯이, 헵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최소 또는 최대)을 지각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경우는 반대로 사건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한다. 인류는 순차적인 의식양태인데 반해, 헵타포드는 동시적인 의식양태다. 전자는 인과적, 후자는 목적론적이다. 헵타포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처음과 가장 마지막 상태를 알아야하고 원인이 시작되기 전 결과에 관한 지식을 필요하는 식이다. 뱅크스 박사는 헵타포드의 언어습득을 통해 그들의 동시적 의식양태를 경험한 것이다.
뱅크스 박사는 물리학자 이안과 연인으로 발전하기 전, 두 사람 사이 태어날 딸 한나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모든 순간을 의식한다. 그녀는 딸의 죽음이란 미래를 이미 '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온다. 직접 경험하는 순차적인 의식이라는 현실 아래에 자유의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녀는 딸의 죽음을 앎에도 불구하고 이안과의 사랑을 택한다. 동시적인 의식에서 본다면 이 자유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미래를 안다는 것과 자유의지는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두 그림을 동시에 볼 수 없는 상황처럼 맥락이 다른 것이다. 헵타포드들의 언어는 이미 알고있는 미래에 대해서 의사소통(정보교류)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한 형태, 연극에서 연기를 하듯 현실화(수행)를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 뱅크스 박사의 이러한 선택에서 우리는 인간 자유의지의 조건에 대해 자꾸만 곱씹게 된다.
원작에 없는 이야기들이 영화에는 새로 삽입되었다. 원작에서 헵타포드들은 왜 지구로 왔는지, 왜 갑자기 떠나는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게다가 새로운 종류의 지식을 주지도 않고 떠난다. 영화에서 헵타포드들은 3000년 뒤에 인류가 자신들을 도와주기위해 도움을 주러 찾아온 것이라는 목적을 밝힌다. 인류가 외계의 존재에게 능력을 받는 결론은 우리에게 낯익고 익숙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원작에는 삭제되어있는 세계 각국의 반응들이 영화에는 삽입되어있는데, 예컨대 종말이 온 듯 소요하는 군중들과 종말을 부르짓는 종교와 테러, 외계인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려는 국가간의 결정 등이다. 영화에서 외계인에 대한 공격은 중국이 러시아와 다른 몇몇 나라들과 주도적으로 결정한다. 이는 미국영화가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 가지는 두려움이 강조되면서 반영된 듯 보인다. 대중들이 기대할만한 내용을 여기저기 삽입하고 절제된 비쥬얼로 과도하게 신비로운 느낌마저 주기도 하지만 드니빌뇌브 식의 전체를 되씹게 만드는 구성이 원작의 구성을 매끄럽게 구현해냈다. 외계 존재를 통해 인간 사고의 근본적인 전제조건들을 탐색하게 만드는 이 독특한 sf영화의 우아하고 냉냉한 기운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모든 미래를 이미 앎에도 불구하고 딸이란 존재를 만난 뱅크스박사의 현재에는, 그 순간들이 마치 그녀 삶에 덤으로 주어진 선물...같은 그런 종교적 뉘앙스를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