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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a Mar 06. 2017

달빛이 희미하게 위로하는 어둠 속 '블랙'

문라이트(2017)


Moonlight is illuminating on Black



<문라이트>(2017)를 보곤 곧장 <파수꾼>(윤성현, 2011)을 떠올렸다. 천진하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공유한 친구들, 몸집만 자란채 대화가 전무한 관계, 그리고 오해가 쌓여 생긴 극단적 파국. '청춘', '성장'이란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던 영화<파수꾼>처럼 <문라이트>도 한 소년의 성장기처럼 보이지만 진전없이 고립된 삶의 아픔과 슬픔을 담담하게 전한다.

Little, Chiron, Black의 3막으로 구성된 <문라이트>는 주인공 '샤이론'의 소년기 '리틀(알렉스히버트)', 청소년기 '블랙'(에쉬튼샌더스), 청년(트레반데로테스) 모습을 그린다. 흑인이자 게이인 샤일론의 이야기는 '마이애미 리버티시티'란  흑인 커뮤니티 위에 놓여져 다양한 층위에서의 억압과 폭력을 보여준다. 작고 왜소한 소년 샤이론은 학교에서 놀림과 폭력의 대상이다. 겁에 질린 이 소년은 폭력을 피해 어둠으로 숨어들고, 눈치를 보며, 자주 고개를 숙이고, 거의 말이 없다. 자신을 도와준 '후안(메허샬레 알리)'과 그의 여자친구 '테레사(자넬모네)'를 만났을때도 말없이 눈치만 본다. 두 사람은 소년을 먹이거나 재워주고 수영을 가르쳐주기도하며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한다'고 인생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조롱과 폭력을 피하려 어둠 속에 숨어들어간 샤일로를 꺼내준 후안과 테레사는 종종 샤이론을 돌본다. 왜냐하면 소년의 엄마 '폴라(나오미해리스)'가 마약문제로 가정을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엄마는 샤일로에게 그 곳(테레사의 집)에 자러가라고 집밖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생략된)후안의 죽음 이후에도 여자친구였던 테레사는 훌쩍 자라 청소년이 된 샤일로를 따뜻하게 챙겨준다. 쳥소년이 된 샤일로는 친구였던 '케빈(저렐제롬)'과 우연히 바닷가에서 키스를 나누고 애무를 한다. 다음날 있었던 샤이론을 둘러싼 폭행사건 이후로 두 사람은 연락하지 않다가 '케빈(안드레홀랜드)'이 '블랙'(샤이론)에게 전화를 걸면서 두 사람은 재회한다.





샤이론의 성장기 이야기인 <문라이트>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외부적 억압에 짓눌린 채 자란 한 인간의 이야기다. 테레사, 후안, 케빈, 엄마란 주변인물들은 샤이론의 인생에 관여하는 인물들인데, 영화는 이 인물을 통해 소년을 억압하고있는 사회적 모순을 비춘다. 외로움과 폭력에 시달리다가 겨우 집으로 돌아와도 또다시 가난과 외로움, 고통이 그를 맞이한다. 마약에 쩔어있는 엄마 때문이다. 샤이론이 믿고 의지하는 후안으로부터 엄마가 마약을 구매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소년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후안은 매우 침통한 표정으로 괴로워한다. 자신을 엄마처럼 품어주던 테레사가 성노동한다는 사실은 친구들의 놀림에서 희미하게 드러난다. 어른이 된 샤이론도 후안이 그랬던 것처럼 마약상이 된다. '마이애미 리버티 시티'라는 마약과 범죄의 온상인 고립된 환경 속에서 가난을 면하는 방법은 반강제적으로 결정되어있다. 샤일로의 유일한 정인인 케빈은 평소 샤일로를 괴롭히던 무리에게 등떠밀려 샤이론에게 직접 주먹질한다. 분노한 샤이론은 케빈에게 주먹질을 시킨 터렐(무리중 한명)을 의자로 내려치고 만다. 이것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샤이론이 행했던 유일한 '결단'이자 '저항'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을 함구함으로서 케빈을 보호하고자 했던 진정성은 샤이론 그 자신을 교도소, 소년원으로 전전하게 만들었고, 결국 어른이 된 샤이론은 후안처럼 마약상으로, 남성성으로, 가장 전형적인 '흑인'으로 무장한 외모와 스타일을 뒤집어 쓰고 살아간다. 이 역설이 남기는 고립과 우울에 짓눌리지 않고 가슴이 두근대는 이유는 케빈과의 재회로 샤이론 자신의 모습을 되찾게될 듯한 희망 때문이다.

<문라이트>에는 종종 시적이고 감상적인 무드를 뚝 끊어버리는 장면전환이 있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감상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각성해야한다는 의지로, 아름다운 무드를 부정하듯, 흐름이 뚝하고 끊어지고 장면이 전환된다. 영화 말미에 케빈은 '너 정체가 뭐야, 넌 누구야'하고 샤이론에게 질문한다. 그 전에 두 사람의 저녁 식사장면에서 케빈은 마약상이라는 샤이론의 말에 '그게 너일리가 없어'라고 말한다. 아마 샤이론도 '정말 하고싶은 걸 해본적 없이, 꾸역꾸역, 의지와는 무관한걸 하고 살며, 진짜 나인적이 없었다'던 케빈의 과거와 비슷하게 살고있었을 것이다. 외부의 압력과 관성에 휘둘려 살수밖에 없었던 샤이론이란 소년은 이 갑작스러운 장면전환이 보여주는 것처럼 자신의 문제를 직시할 의지와 용기를 품지도 못하고 언제나 외부의 눈치를 보며 짓눌린채 생을 버텨왔을 것이다.




'빛'은 샤이론의 인생을 구원하고 위로한다. 이창우 평론가의 평(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wleekr&logNo=220941278392)에서처럼 후안은 샤이론이 숨어든 어둠의 세계에 '난입'한다. 그는 문을 두드리거나 열어젖히지 않고 벽에서 문을 '뽑아' 샤이론의 세계에 들어온다. 명백히 상징적인 이 장면은 '빛'에 대한 의미를 요청하는 것으로 보인다. '창'이라는 내부와 외부 간의 경계 자체를 들어 없애버리는 결단의 힘, 연대와 공감으로 내미는 손으로 그를 구원한 강렬한 빛. 그 강렬한 빛이 흑인이란 인종과 게이라는 성정체성, 계급, 지역적 고립과 신체적 위약, 그 모든 면에서 약자로 고립된 소년을 구조했다. 이 빛은 아마도 기적의 광명일 것이다. 한편 외로운 샤이론이 매일 의지하고 위로받던 빛도 있었다. 바로 희미하지만 밝게 비추는 '달빛(moonlight)'다. 후안은 이렇게 말한다. "in the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라고. 어둠은 흑인을 덮어버리지만 희미하게 비치는 달빛에 그의 존재가 드러난다.
무너진 삶에서 한 소년을 세우려 위로하는 희미한 달빛, 버티고 견뎌온 샤이론이 카메라를 향해 돌아보는 그 눈빛에 아프고 고통스럽다.



한 소년의 고통과 슬픔을 착취하지 않으면서 담담히 그 아픔을 그려낸 영화<문라이트>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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