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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a Aug 08. 2016

답이 없는 문제의 답: <시리어스 맨>(2010)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 영화를 본 후 읽어주세요. 







   삶은 단순한듯 보이지만 그리 단순치 않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내 손을 떠나버린 채 시간이 지나다보면, 이들은 서로 엉겨붙어 거대한 난제처럼 생의 한 지점에 먼지로 덩그러니 남겨지기도 한다. 크고 작은 문제에 휘둘리다 보면 '나'란 것이 아직도 남아있나 싶다가도  잠들기 전, 홀로 남겨질 시간이 조금 허락될 때, 가루난 '나'를 겨우 이어붙이다보면 삶이 뭔지 약간은 알 듯 할 때도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은 산산조각낸 외상처럼 선명히 남아있기도 하다. 심사숙고해도 알 수 없는 사건들은 다반사로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시작부터 대뜸 이렇게 명령한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라


   코엔형제의 <시리어스맨> 이야기는 단순하다. 중심서사 어디에도 갖다붙일 수 없는 프롤로그를 제외한다면.   

   프롤로그의 내용은 이러하다. 집으로 돌아온 벨블이 아내인 도라에게 자신에게 있었던 이야기 전한다. 어느 노인의 도움을 받았는데 노인이 알고보니 아내가 아는 랍비 그로쉬코브, 페넬 부님 삼촌이었다고. 아내는 그가 이미 3년 전 죽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남편은 그 노인을 집으로 초대했고, 문을 열고 들어온 노인과 아내는 몇마디 실랑이벌이다가 아내가 노인의 가슴을 칼로 찔러버린다. 피를 흘리며 문밖으로 나가는 노인이 진짜 랍비인지, 악령인지는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아내는 악령을 쫓아냈다며 문을 닫아버린다.


  주인공 래리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물리학자다. 이야기는 그를 심각하게 만드는 몇몇 사건을 비추고 있다. 래리는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들의 융단폭격을 맞는다. 래리 강의를 듣는 한인 학생 클라이브는 장학금을 놓칠 것을 우려해 점수를 따지러 왔다가 래리에게 촌지를 주고 간다. 래리는 대학에서 종신계약을 앞두고 있는 상태인데, 재직권에 반대하는 익명의 편지(아마도 촌지를 준 학생)로 난처해진다.  잘 지내는 줄 알았던 아내는 갑작스럽게 이혼할 때가 되었다며 래리에게 이혼증명서를 요구하고 변호사를 만났냐 화를 내며 따진다. 래리의 동생 아서삼촌과 함께 사는 것이 불만인 딸은 늘상 투덜거리고, 이 상황에 아들 대니는 계속 래리에게 안테나를 고쳤냐 묻는다. 시트콤이 잘 안나온다며. 대니는 페이글에게 마리화나 구매한 돈 20달러를 빚져 항상 도망다니고 누나와 돈문제로 티격태격 거린다. 이웃이 집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도 신경쓰이는 골칫거리 중 하나다. 당혹스러운건 래리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적반하장격 태도인데, 아내는 이혼하고 함께 살 남자라며 싸이를 래리에게 소개한다. 그는 래리의 오랜 친구이다. 미안해야할 싸이는 되려 "우린 잘 이겨낼거야"하며 그를 안아주고, 심지어 아내는 래리에게 집을 나가 모텔에서 살라고 한다.  얼마지나지 않아 돌연 싸이가 죽고, 이제 래리에겐 그의 장례식까지 치뤄줘야할 숙제가 하나 더 추가된다. 아서는 조카 대니의 돈 20달러 때문에 도박을 해 체포되고, 사소한 교통사고에 레코드사의 영업전화까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내몰리는 래리는 누나의 권유로 랍비를 찾았다. 첫번째 찾아간 랍비에게 래리는 '이혼요구서'를 얘기하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랍비의 대답은 그저 '주차장을 봐라', 모든 문제는 인식의 문제라는 말로 질문을 되돌려준다.  두번째 찾아간 랍비에게 래리는 '싸이의 장례식을 치루게 하려는 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랍비는 한 일화를 빌어 괴로운 질문들이 모두 가벼운 치통같은 것이고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로 조언한다. 세번째 랍비 마르샥은 바쁘다는 이유로 만나지도 못한다(대신 아들 대니가 20달러가 든 라디오를 돌려받는 장면에서 우리는 랍비의 메시지를 듣긴한다). 자기자리로 돌아온 래리는 3천달러의 변호사비용 청구서를 받아들곤 클라이브의 성적을 고친다. F에서 C-로. 그리고 의사에게서 엑스레이 검사결과를 받으러 내원하라는 전화를 받는다. 래리는 큰 병에 걸린걸까? 한편, 대니는 20달러를 주기위해 페이글을 부르는데 그들을 향해 오는 것은 거대한 토네이도….

시종일관 이런 표정이다. 주인공 래리(마이클 스털버그)







   주인공 래리는 열일하며 고통받아 불쌍한 가장이라기보다는 아둔하고 멍청해서 불쌍한 가장이다. 수학공식으로 우주를 꿰뚫어 볼 물리학 이론을 설명하는 교수이지만, 정작 자기 통장의 돈관리도 할 줄 몰라 절망에 빠지는 바보다. 자신의 문제를 어찌하지 못해 랍비들을 찾아가 고통을 호소하며 신적인 답변을 구하는 과학자의 모습이란…. 자신을 짓누르는 사소한 문제들을 묵묵히 견뎌낸 결과는 비싼 청구서와 토네이도다.

   래리의 문제는 뭘까? 그는 인생을 수식처럼 이해했을지 모른다. 자신에게 학점을 따지러 온 클라이브에게 '모든 행동엔 결과가 따른다'고 말했던 것 처럼 모든 문제엔 원인과 결과가 있고, 행동과 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명쾌함으로 삶의 확실성을 믿었을 것이다. 그가 유대교 율법에 따르는 것도, 아들을 히브리어 학교에 보내는 것도 삶의 확실성을 위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정식도 결국 세상의 불확정성에 관한 것이다. 결정된 것이 없다는걸 증명하기 위해 칠판을 한가득 메우는 수학적 증명에 학생 누구도 관심이 없다.  래리는 삶의 인과율을 믿고 그것을 따라 움직이려는 듯 보이는데, 대체 왜 그는 양자물리의 불확정성 원리 따위를 증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역설에서 오는 헛웃음.

불확정성 원리 증명, 래리는 "우리는 결국 알 수 없다는 거지. 하지만 중간고사를 위해 알아야 돼!" 하고 학생에게 말한다.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어떤 태도로서 래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택한 듯 하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하며 황당한 표정으로 억울해하는 래리. 래리를 둘러싼 사건들은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사실 래리가 어떤 입장을 결정하기 이전에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도록 그를 내몰고 있었다. 

   래리의 해결책은 자신의 문제에서 초월한 곳으로부터 해답을 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래리는 안테나를 고치기 위해 지붕에 올라 마을을 조망하지만, 그의 시선은 곧 이웃집 여인의 벗은 몸에 붙들리고 만다. 또 하나는 랍비를 만나 신의 의도로 해답을 캐려는 것이다. 그러나 랍비들의 조언은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대답을 겨냥한다. 어찌 할 방도도 없이 래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1967년 미국의 중서부지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60년대를 감지할 수 있는 단서라곤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과 촌스런 의상 정도 뿐이다. 60년대 미국은 그야말로 혼돈의 시기 아니었던가. 케네디와 말콤엑스가 사망하고, 사람들은 밥딜런과 롤링스톤즈를 듣고,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somebody to love와 white rabbit에 열광하던 히피문화가 휩쓸던 시기. 이상하게도 래리를 둘러싼 사건들은 사회의 혼란들과 단절되어있고 그는 일상적 사건들에 고립된 듯 보인다. 해답없이 부유하던 혼돈의 시기, 모두가 래리처럼 답을 찾으려 열망했으나 결국 '답이 없음'을 보았단 뜻일까? 래리를 집어삼킬지 모르는 '불치병'과 마을을 파괴시킬지도 모르는 거대한 '토네이도'란 '파국' 앞에서 옳고 그름 중 하나를 결정하고 추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물음에 심각한 불안을 느낀다. 랍비를 죽인건지, 악령을 죽인건지하는 프롤로그의 질문에 나도 악령을 죽였다 확신하는 아내 도라처럼 입장을 결정하면 온갖 사소한 불안들이 사라질지….

마을을 덥칠듯한 토네이도를 비추며 영화는 끝난다.




1. 거대한 '파국' 앞에서 '답이 없음'의 태도를 강조하는 것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8)과 유사해보임.

2. 코엔형제 영화마다 등장하는 원환도 하나의 힌트처럼 제시됨.

3. 최고의 영화, 별백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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