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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a Jul 19. 2016

근본 없는 아름다움, <아가씨>(2016)

뿌리내리지 못한 사랑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 본문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본 후 읽어주세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아가씨>는 아름답다. 예쁘게 꾸며진 공간에 놓인 두 여배우의 외모가 아름답고, 잘 짜여진 이야기의 구조가, 남성들이 실패하고 여성들의 사랑이 성공한다는 승리의 결말이 그림같았다. 그러나 아름다움에 딸려온 쾌감을 의심하고 곱씹을수록 점차 불쾌로 바뀌고 말았다. 단단하고 씁쓸한 단물빠진 껌처럼. 그래서 <아가씨>가 지닌 '아름다움'을 자근자근 씹어보려 한다.


  먼저, 아가씨 히데코가 아름답다. 후지와라 백작과의 공모로 히데코를 꾀기위해 몸종으로 붙은 숙희는 히데코를 보고 '예쁘면 예쁘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사람 당황스럽게시리'하고 만다. 이 일에 성공하면 한 밑천 챙겨 일제치하 조선바닥을 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1장에서 숙희는 히데코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그녀를 사랑하며, 아기처럼 가련히 여기고 만다. 음습한 대저택 서재의 책과 낭독회에 평생을 갇혀살다 가족처럼 지내온 이모부와의 결혼을 앞둔 불쌍한 히데코, 게다가 후지와라 백작과 숙희 자신에게 재산을 뜯기고 미친년으로 몰려 여생을 정신병원에서 지내게 될 비운의  아가씨.... '여지껏 내가 씻기고 입힌 것 중에 이만큼 이쁜 것이 있었나?'하고 감탄하던 숙희는 '아가씨는 참 하녀의 인형이구나(중략) 내가 소매치기였으면 그 안에 손을 한번 넣어 만져봤을텐데'하며 육욕을 내비친다. 순진하고 불쌍한 히데코에게 남자가 바라는걸 가르쳐주고자 히데코와 섹스한 후부터 숙희는 아가씨의 몸에 백작의 몸이 닿거나 키스를 할라치면 쿵쿵 발소리를내고 씩씩거리며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숙희와 히데코


  모두의 관심사인 히데코의 아름다움은 만들어진 것이다. 2장은 모두가 원하고 취하려던 욕망의 중심에 있던 히데코의 '거짓'을 드러낸다. 숙희는 순진한척 하던 히데코의 연기에 속고 있었다. 숙희와 동일시하던 관객도 그녀에게 완전히 속았다. 숙희 말대로 '히데코는 그냥 나쁜년이다'라 생각해도 될까? 2장에서 드러난 전말은 이러하다. 히데코는 이모부와의 혼인을 깨고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백작과의 다른 시나리오, 즉 조선인 하녀인 숙희를 자신 대신 정신병원에 집어넣고 죽인다는 후지와라 백작의 계획에 공모한다. 1장에서 백작이 숙희에게 지시한 '아가씨가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라'는 계획은 그녀를 사기극으로 끌어들이던 미끼였다. 주위를 속일 수 있었던 히데코의 '연기력'은 수집된 변태적 텍스트 읽도록 만든 낭독회와 이모부의 훈련으로 얻어진 재능일 것이다. 2장에서의 히데코는 마치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그것을 뚫고 나가기 위해 발생하는 중심적 사건(거짓, 살인, 폭행 등)의 한가운데 서있던 박찬욱 영화의 주인공들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혼돈의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는 세계의 중심에서 홀로 처연하고 담담한 여인....

벗꽃나무에 매달려있는 히데코


   히데코의 사랑은 성공했기에 아름답다. 3장 직전에 벗꽃나무에 목을 메어 죽으려는 히데코에게 숙희는 용서를 빌고, 그녀의 사랑을 확인한 히데코는 후지와라 백작과 자신이 공모한 모든 내용을 이야기하고 계획한다. (비교적 진짜에 가까울)숙희와의 사랑은 이모부 코우즈키와 후지와라 백작이란 남성들의 반대항으로서 갈등이나 고민없이 응집한다. 두 여성이 서로를 향해 내뿜는 쾌락은 숨겨지지 않으며 이 둘은 탈출에 성공해 섹스를 즐긴다. 이 레즈비언 커플이 헤집어놓고 탈출한 남성의 세계는 모든 것이 '가짜'인 세계이다. 일본풍, 영국풍으로 무엇인가 스타일만 흉내내어 지어진 근본없는 대저택, 진짜 섹스 없이 음서들을 수집해 낭독하며 함께 판타지를 즐기고 희열을 느끼는 음서낭독회, 아버지 노릇을 하지만 가짜인 이모부, 가짜 남편이 되려는 사기꾼 백작 등 남성과 관련된 모든 것은 '가짜'다. '가짜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리다니'하며 걱정하던 숙희만이 히데코에겐 '진짜'이며, 그녀에게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다. 히데코에게 '진짜'인 숙희는 사내들이 모여앉아 함께 꿈꾸던 변태적 욕망의 음서들을 향해 분노와 혐오를 터뜨린다. 서재의 책을 찢어발기고 무지를 경계한다며 서재 입구에서 발기해있던 뱀대가리를 칼로 동강낸다. 남성의 희열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누르며 살아왔던 히데코와는 달리, 숙희에게 페니스는 그저 '애기장난감 같은 좆대가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의 사랑이 저지른 짓은 남성들의 가장된 판타지를 처부수고 그곳을 탈출하는 것, '억지로 하는 관계에서 쾌락을 느끼죠'라며 히데코를 가르치고 설득하던 후지와라 백작을 유혹하여 쓰러뜨리는 것, 그리고 함께 땅을 떠나 바다 위에서 즐겁게 섹스를 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환상'이란 폐쇄된 구조 속에서 가능한 아름다움이다. 그녀들의 사랑이 까발린 것은 남성들의 가짜세계와 판타지의 우스꽝스러움이지만, 역설적으로 영화는 여성들의 사랑 역시 판타지로 만든다. 역사적 상황과 계급, 국경의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 채, 두 여성의 벌거벗은 몸과 체위만을 비추며 끝나는 영화는 단지 아름다움으로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꿈만 같다. 그들이 어딘가로 정착할 것인지, 사랑이 도달한 곳은 어디인지 하는 질문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싶게 만드는 그녀들의 섹스. 과거도 미래도 필요없다는 듯 현재의 쾌락에만 종사하는 그녀들의 사랑. 마치 낭독회에서 인형 위에 올라탄 히데코를 바라보던 남성관객이 된 기분으로 엔딩의 섹스씬을 보았다. 오로지 여성의 신체가 가지는 아름다움으로 사랑을 찬미하고 육욕을 판타지한 것인가하는 불쾌감을 느끼면서. 아마도 여성들의 사랑과 연대가 환상으로 그려졌기에 거부감 없이 소비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실적 근본 없는 아름다움의 허망함만을 남기면서.


아니,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근본없는 아름다움이 무슨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끝났더라면 너무 상투적이었을까



[어부 아내의 꿈](1814)와 <아가씨>포스터, 서로를 움켜쥔 손가락이 촉수의 은유처럼 보인다.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상황에서도 '담배'와 '자지'에 집착하던 백작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상기된다.






1. <아가씨>를 보고 불쾌감을 느끼셨다며 화가나서 어쩔줄몰라하셨던 우리동네 문구점 이모에게 바치고픈 글이다. 이모가 나한테 꼭 보고 얘기해달라고 했다. 왜 불쾌한지 밝혀달라면서ㅋㅋㅋ. 그냥 조용히 <비밀은 없다>를 추천해드렸다.

2. 이쁜거 너무 좋아한다. 이쁜 것들은 뭔 짓을해도 상관없단건지. 모두를 코우즈키같은 변태로 만들 작정인가.

3. 어제 새벽 포스팅하다가 날아갔다. 그냥 올리지 말껄...싶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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