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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a Aug 14. 2016

추락의 비범함으로 날아오르기: <버드맨>(2014)

당신은 날아오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 삶에서 지금 추락하는 중입니까? 날아오르는 중입니까? 이런 질문을 떠올렸다. 지금의 내가, 더 정확하게는 첫 도전에서 첫 실패를 경험한 '최근'의 내가, 타인의 인정과 관심이 고픈 아이와 완전히 똑같구나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울리는 프리스타일 드럼연주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분노의 폭발을 예감케하는 인물의 잔걸음은 리듬을 타고 좁다란 복도를 따라 세트장으로, 배우들로, 긴장의 불을 옮겨 붙인다. 번잡하고 소란한 사람들의 움직임,  대사 속 비꼬는 말투와 욕설, 경멸의 시선, 내게 이 예술인들의 흥분이 고스란히 전염되는 듯하다. 현란하게 '두다다 두다다' 마음을 두드리는 북소리에 긴장이 멈추질 않는다. 리드미컬하게 치고받는 대사의 경쾌함으로 지루할 틈 없이 전개되는 영화<버드맨>(2014)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다. 근작으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개고생의 아이콘으로 만든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가 있다.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각본상, 아카데미 시상식 9개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의 이력을 자랑하는 <버드맨>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게 만드려는 듯 끊어짐 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촬영방식으로 장면들이 원테이크처럼, 하나의 씬처럼 이어지는 특이함을 보인다. 그래서 인물과 사건은 마라톤 바통을 넘겨주듯 흘러간다. 이런 장면에 얹어진 드럼의 리듬감은 심장소리와 같은 템포로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드럼연주는 팻 메스니 그룹의 재즈 드러머 안토니오 산체스이니 <버드맨>이 가지는 특수함을 느껴보길 권한다.  





  주인공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은 새 연극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배우이자 감독이다. 그는 레이먼드 카버의 원작을 각색한 이 작품으로 재기하려 한다. '버드맨'이라는 히어로무비로 성공한 바 있는, 모두가 알고있는 유명배우지만, 리건은 이제 늙고 초라해진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있다. 완전히 새 판인 연극바닥에서  새로이 예술성을 인정받으려지만 미완성인 느낌. 이제 곧 프리뷰를 앞둔 마당에, 남자주인공 랄프는 자신의 연기가 오버였냐 물어대며 자신없어 한다. 랄프의 머리 위무대장치가 떨어지는 사고로 감독 리건은 대역을 쓸지, 연기못하는 이 배우를 다른 배우로 교체할지 하는 고민에 빠진다. 돈도, 시간도 없는 상황에서 리건은 운좋게 자기 작품의 배우 레슬리(나오미왓츠)와 사귀고있던 유명배우 마이크(에드워드 노튼)와의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운 좋은 이유는 마이크가 '비평가들이 질질 싸는 배우(제이크)'이기 때문이다. 기쁨도 잠시, 마이크 자신이 감독인냥 대사를 분석하고 바꾸라며 리건에게 호통치고 그를 무시한다. 게다가 프리뷰에서 마이크는 실제로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워 극을 망쳐버린다. 망친 프리뷰에 잔뜩 날이 선 리건을 더욱 자극시킨 것은 평단의 주목이 마이크에게 향해있다는 사실이다. 리건은 마이크와 자신의 무의식의 목소리인 '버드맨'에게 분노를 쏟아붓는다. 리건의 무의식이자 히어로의 탈을 쓴 형상의 '버드맨'은 지금의 도전을 포기하고, 과거 돈과 명예로 리건을 성공시킨바 있는 히어로무비 '버드맨'으로 돌아갈 것을 회유하고 유혹한다. 괴로움에 모두 포기하려는 리건에게 친구 제이크는 '표가 매진이다, 마틴스콜세지가 신작에서 캐스팅한단다'는 말로 그를 다독인다. 리건은 무대를 마치고 카페에서 평론가 타비사 디킨슨에게 연극을 죽일거란 혹평을 예고받은 후, 술로 밤거리와 환상을 떠돌다 다시 무대에 오른다. 다시 오른 무대에서 그는 가짜가 아닌, 실제 총을 머리에 겨누고 관객 앞에서 머리를 쏴버리고 만다. 기립박수치는 관객들과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비평가. 병원에서 일어난 리건은 총상에 코를 잃었지만 평론가의 호평을 얻었다. 헤드라인을 장식한 '그가 흘린 진짜 피는 연극계의 동맥에서 사라져버린 피였다, 초사실주의' 란 타비사 디킨슨의 평에 제이크는 기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거울로 망가진 코를 보고 변기에 앉아있는 버드맨에게 '잘있어, 엿먹어'하곤 창밖으로 새처럼 날아가버린 리건. 창밖을 보며 리건을 찾던 딸 샘의 웃음소리.





당신은 그럼에도 이 삶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나요? 예.
그게 무엇이었나요? 내가 지구상에서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겁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레이트 프래그먼트’중)

And did you get what you wanted from this life, even so? I did
And What did you want? To call myself beloved, to feel myself beloved on the earth.
                                           (Raymond Carver, Late Fragment)


   <버드맨>의 인트로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레이트 프래그먼트'를 직접 인용한다. 지구상에서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 그것은 누군가의 관심과 인정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원작을 각색한 리건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역시 같은 내용이다. “나는 왜 항상 사랑을 구걸해야 하지? 난 당신이 원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어. 매일 다른 남자가 되려 애를 쓰며 산다고.” 극중 주인공 '멜'의 대사를 빌어 반복적으로 '사랑해 달라'며 사랑을 갈구하는 리건. 이 대사는 극중 부인인 테리(나오미 와츠)가 아닌, 리건을 바라보는 무대의 관객에게 던져진다. 그토록 인정받고싶어하는 리건은 모두에게 '무시'당하고 있었다.


   주변인들에게 리건은 어떤 인물인가? 대중에게 그는 퇴물배우 '버드맨'이다. 히어로무비 '버드맨'으로 돈과 명성을 함께 얻었던 리건은 대중에게 작품의 새로움을 어필하고 싶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버드맨'에만 있다. 그 성공은 마치 '낙인'같은 것이다. 리건의 입에서 '버드맨4'란 단어가 나오기만해도 기자들은 흥분하고, 리건의 작품이나 예술적 성취보다 '얼굴에 진짜 새끼 돼지 정액 주사를 놓냐', '퇴물 슈퍼히어로 이미지 탈피위해 연극하는 거냐'질문한다. 유명배우 마이크에게 리건은 '이방인'일 뿐이다. 마이크는 '넌 실패해도 (문화를 말살하는)영화판으로 돌아갈수 있잖냐, 여긴 내 동네이고, 사람들은 네(리건)게 관심없다'며 리건을 면전에서 무시한다. 딸 샘 역시 아빠에게 '잊혀진 존재'라고 한다. '이 연극이 뭔가 의미있는걸 할 기회'라는 리건에게 샘은 '예술이 중요한게 아니라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기 위한 짓거리들 아니냐'며, '아빠는 페이스북, 블로그, 트위터 아무것도 안하니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아빠는 세상을 무시하지만 세상은 아빠를 벌써 잊었다'며 잊혀진 존재인 것을 받아들이라 쏘아붙인다. 평론가에게도 리건은 '예술에 대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감독이나 작가인척'하는 '거만하고 이기적인 응석받이'다. 혐오를 숨기지 않던 그녀는 '사상 최악의 악평으로 연극을 박살낼거라'예고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문제인 것은 자신의 무의식인 '버드맨'의 목소리이다. 리건은 무의식의 목소리를 타자의 것이냥 듣는다. 그 '버드맨'의 목소리는 리건 자신을 '과거 인기를 못잊는 슬프고 이기적인 배우'로 자학하게 만들며, 끊임없이 귓가에서 '여긴 시궁창이다, 한심하다, 기회가 있을때 떠나버리고 집어치우자, 넌 예술가가 아니니 다시 '버드맨'이나 하자'한다. 또 그 목소리는 '명배우가 아니라도 넌 세상 모두가 알아주는 무비스타'이고, '우울한 철학 따윈 필요없어. 넌 신이야'라며 '니가 있을 곳은 세상 위'라고면서 리건을 하늘로 띄운다.




   하늘로 날아오르던 리건은 추락한다. 유명 무비스타가 하얀 팬티바람으로 거리를 활보하게되는 우스꽝스러움으로, 평론가의 혹평에 괴로워하며 의미있게 간직하던 레이먼드 카버의 냅킨 메모를 내버리고, 하늘을 날아오르다가 다시 자신의 작품이 걸린 극장으로, 자신의 위치로 되돌아 와 하강함으로, 관객 앞에서 자기 자신을 총으로 쏴 버림으로써 그는 온몸으로 추락을 견뎌내고 통과한다. 리건은 공중에 붕 떠있거나 하늘을 날아오르지만, 사실 영화 내내 그리고 있는 리건의 모습은 추락하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그 추락의 비범함이 대중의 핸드폰에 고스란히 저장되고, 미디어가 기억해줄때에야 리건은 재고될 수 있는 것이었다. '남들이 어찌 평하느냐가 아닌, 실제로 무엇이냐가 진실이다(A thing is a thing, not what is said of that thing).'란 메모가 붙어있던 거울 앞의 리건은 타인의 이런저런 평이 만든이 그 프레임을 깨부수로 나감으로써 진실을 향해 날아갈 수 있었다. 버드맨이 아닌 진짜 새처럼 창밖으로.



   이카루스의 날개가 밀랍으로 붙여진걸 알았다면 태양을 향해 높이 날아오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추락이 있었을까? "예상치 못한 무지의 미덕"(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은 이 영화의 부제이다.

평론가 '디킨슨'의 호평의 제목 "예상치 못한 무지의 미덕"(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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