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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a Aug 22. 2016

무관심, 무지가 선택한 무고한 죽음

<아이 인 더 스카이>(2016)

 

  지난 18일, 영국 텔레그래프 기자 라프 산체스(Raf Sanchez)는 시리아 과테르지(Qaterji)의 공습 피해를 전하며 시리아의 5살 소년, 옴란다크니시(Omran Daqneesh)의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했다. 이 공습은 러시아 혹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행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언론은 아일란 크루디때와 마찬가지로 반응했다. 폭탄의 잔해와 피를 뒤집어 쓴 소년을 시리아 비극을 보여주는 '알레포의 고통의 상징'으로 소개하며, 소년의 초점 없는 눈빛과 어떤 감정도 없는 무표정함을 반복적으로 보도했다. 아이의 '무표정함'.




 
   전쟁의 비극은 정치적 '결단'에 있었던 특정한 입장의 '선택'이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운명을 결정지을 선택의 기로에 놓인 대화상황과 여러 고민들, 그리고 입장과 결단을 비춤으로써 공습의 비극을 바라보게 한다.
   "전쟁의 첫 희생자는 진실이다(In war, truth is the first casualty)"는 아이스킬로스(aeschylus)의 말을 오프닝으로 케냐의 나이로비 한 마을을 비춘다. 소녀 알리아가 살고 있는 이 마을은 극단주의 과격단체 알샤바브 결집으로 공습의 타깃이 될 것이다. 알샤바브는 나이로비를 침공해 대량학살을 일삼는 극단주의자로, 이슬람법을 강요하며 영국과 케냐 군대에 반대하는 세력이다. 파월대령(헬렌미렌)은 알샤바브가 정보원을 처형했다는 메시지를 전달받고 나이로비 상공에서 합동작전(일명 왜가리작전)을 수행하려 한다. 이 합동작전은 미국 네바다주, 런던 노스우드, 케냐 나이로비의 케냐티 공항, 하와이 진주만 영상분석실, 미국 네바다주 공군기지의 이곳저곳에 흩어진 대원들의 협력으로 수행되는데, 연합군은 이 작전으로 나이로비의 한 저택에서 접선하는 알샤바브 수뇌부를 생포하고자 한다.  
  한편, 파월 대령의 상관인 벤슨장군(앨런릭먼)은 런던 화이트홀의 국무조정실에서 장관들에게 알샤바브 수뇌부 내 영국인 국적인 수잔 댄포드 생포작전을 설명한다. 장관들은 모니터를 통해 파웰대령의 생포작전을 실시간으로 접한다. 수잔 댄포드의 신원확인을 위해 저택으로 진입한 딱정벌레 드론은 자살테러조끼와 다량의 폭탄을 비추고, 곧 생포작전은 사살작전으로 바뀐다. 각자의 입장에 선 논쟁들과 의견들이 댄포드를 사살하려는 대령을 가로막는다. 겨우 타격을 허하는 승인을 받아내지만, 모두의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든 일은 바로 소녀 알리아가 빵을 팔러 나와 미사일 타깃이 된 저택 근처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헬파이어를 조준하고 발사하는 위치에 있던 스티브 왓츠 중위(아론 폴)는 '부수적 피해를 재평가 할 권리가 있다'며 '소녀의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없다' 주장한다. 무기보류가 인정된 동안 대령은 중사에게 부수적 피해 계산을 명령하고, 현지 요원에게 알리아의 빵을 모두 사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한다. 알리아에게 일어날 피해는 65%,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실패하고 만다. 예상되는 피해에 모두가 주저한다. 유일한 결단은 알리아 한명을 '희생'함으로서 알샤바브 쇼핑객 80명을 테러로부터 구하자는 것이다. 그 사이, 폭탄테러를 준비하는 집안 내부를 들여다보던 딱정벌레 드론이 배터리문제로 꺼지면서 그들의 불안과 긴장은 커진다. 결국 대령은 타겟티어에게 알리아의 부수적 피해를 50% 미만으로 계산해 무기를 발사할 지점을 지정하라 명령한다. 테러범의 폭탄도 변수가 되기에 이 예측은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이지만, 결국 사망율 45%가 예상되는 지점에 헬파이어를 날리고 만다.
   미사일이 날아가는 50초의 시간동안 현지 요원의 노력으로 알리아의 빵은 다 팔린다. 소녀는 비극의 위치를 벗어날 행운에 닿을 듯 보였지만, 예상대로 알리아는 폭탄의 피해를 입고 만다. 수잔 댄포드의 생존에 두번째 떨어진 미사일. 테러조직원들은 모두 죽었지만, 아빠의 품에 안겨 병원에 도착한 소녀 알리아도 그들과 함께 죽었다. 눈물을 삼키며 돌아서는 군인들의 머리위로 하늘을 가르고 날아가는 제트기.







    알리아는 타살되었다. 이 소녀의 죽음은 운명이 아닌, '아이 한명'을 죽이기로 결단한 인간들의 '선택'에 기인한다. 선택은 군인의 군사적 효율성 또는 기술적 적합성 같은 이유를 따른 것으로 장관들의 정치적, 법리적 논쟁과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강제된다. 파웰대령은 딱정벌레 드론으로 수잔 댄포드의 신원을 확인하자 그녀를 (생포가 아닌)사살할 것을 요구한다. 파웰대령에 따르면 '그 곳은 무장단체의 구역으로 '효율성'을 고려한다면 생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령은 이들을 '6년이나 추적했다'는 이유를 덧붙여 사살에 무게를 둔다. 애초부터 대령의 결단 속에서 '정의'나 '보편 윤리'아래 알리아가 자리할 기회는 없었다. "많은 아이들 목숨이 위험하네, 얜 한명일 뿐이야"라며 알리아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파웰대령. '아이 하나의 죽음과 다수의 죽음' 사이, 다수에게 닥칠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우리의 얄팍한 윤리를 비웃으며 소녀의 희생이란  손쉬운 결단으로 치닿게 만든다. 이미 입장을 '선택'한 대령에게는 이런저런 '논쟁'보다 소녀의 죽음을 정당화 시킬 '부수적 피해 45%보고서'가 더 가치있을 것이다.





   장관들의 대화상황도 근본적으로 사태를 변화시킬 공백을 만들지 못한다. 이들의 대화는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일 뿐 영향력이 없다. 테러범들을 놓칠 것인지, 소녀를 잃을 것인지 결정해야만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한탄을 자아내게 했던 '사상자 최소화에 최선을 다하라'는 총리의 전언처럼, 장관들의 말은 무력하며 '아무것도 아닌 것'에 지나지 않는다. '폭탄돌리기'같던 장관들의 대사를 대강 훑어보자.
   딱정벌레 드론의 눈이 꺼지기 직전 대화 내용이다. 백악관의 법무 보좌관 전화가 걸려왔을 때, 미 국무장관의 입장을 대변하는 그녀는 '한명의 부수적 피해때문에 임무 전체를 위험하게 만들꺼냐', '국방성, 백악관, 세계여론이 분노할거라' 거의 협박조로 말한다. 영국 외무장관은 '법적논쟁은 (빵이 팔리길) 기다릴 수 있느냐는 것이고, 군사적 논쟁은 기다려선 안된다는 것이오', '아이를 구하고 위험을 감수하겠냐'하고 묻자, 안젤라는 '차라리 무고한 아이를 죽인 드론공격을 옹호하는 것보다 (외무장관이)시사프로에 가서 한 아이때문에 80명이 죽은거냐 질문받는게 낫다'고 한다. 법무장관 역시 '80명을 죽이면 선전전에서 이기게 되는 것'이라 옹호한다. 벤슨장군은 '80명을 잃을 정도로 선전전이 가치있는 것이냐'되묻고, 외무장관은 유투브 동영상의 유출가능성과 혁명을 우려하며 총리에게 책임을 넘겼던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온 대화. 모두를 죽인 사살임무가 끝나고, '수치스러운 일'이라 말하는 안젤라에게 벤슨장군은 '모든게 편안한 의자에서 이뤄졌다, 당신이 목격한건 끔찍했으나 이들이 하려던 짓은 훨씬 더 끔찍한 것이었다', '절대 군인에게 전쟁의 대가를 모른다고 말하지 말라'며 낮은 음성으로 모든 상념을 묵살하듯 돌아선다. 이로비에서 희생된 소녀 알리아가 좋아할만한 인형을 자신의 딸에게 선물로 주려는 벤슨장군이 '전쟁의 댓가'는 좀 알지 모르겠으나 '죽음의 무게'에는 무지해 보인다.




    아무런 성과없는 대화 끝에 결국 타깃을 향해 미사일을 날린 사람은  왓츠 중위다. 그는 단지 '대학 때 갚지못한 빚을 공군이 보증 서준다는 조건'때문에 그들의 '눈'이 되려 임무에 참가했을 뿐인데, 눈물을 삼키며 아이를 희생시켰다는 죄의식과 슬픔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타깃지점을 계산하거나 미사일을 쏜, 직접적 원인인 중사나 중위들이 강한 책임과 죄의식을 짊어진듯 보이지만, 우리는 이 죽음에 대해 알고있다. 알리아의 죽음은 정치적인 것에 숨은 배타적 폭력의 결과로서 일어난 무고한 죽음이었단 사실을.




   영화를 뉴스처럼 보고있던 나는 오로지 '우연'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알리아를 향해 기도하고 있었다. 드론과 모니터에 비친 세계의 틈새는 약 50초, 미사일이 타깃을 향해 날아가는 시간동안 부디 소녀에게 대화가 닿길 바랬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빵을 팔고있는 알리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계를 볼 수 있는 '지도'와 '눈'으로 무장한 연합군은 마치 신적인 존재처럼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우리가 이 사태를 관조하듯.


   사람들은 공습의 참상엔 관심이 없다. 폭력의 비극보다 평화와 화합의 올림픽에 훨씬 관심이 많다. 허상이든 진리든, 모두 '세계'에 관한 것이다. 매개없이 직접적인 효과로 채워진 이 세계에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비겁한 의사결정권자들의 모습과도 같은 잔악한 결백만이 남을 것이다. 무고한 죽음 앞에 무능하고 무지한 우린 결백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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