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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맘 Jan 06. 2021

달팽이의 꿈

- 달팽이는 느릴 뿐 정지한 것이 아니다-

 

동거하고 있는 달팽이 _'핑핑이'

작은 아이가 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온 아이가 있다. 강아지는 알레르기가 심한 엄마와 형 때문에 안되고, 햄스터는 번식력이 왕성해서 치우기도 힘들고 냄새도 많이 난다고 해서 안 되고, 장수풍뎅이는 밤에 시끄럽다고 해서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아이가 유튜브에서 달팽이를 키우는 사람 동영상을 보더니 단 한마디 말로 나를 설득시켰다. “엄마, 달팽이는 한 달 동안 먹이를 먹지 않아도 산대요. 그리고 냄새도 안 난대요.”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 달팽이는 내가 키우고 아이는 가끔 안부 인사나 건네는 정도로 일테지만.     

‘당근마켓’이란 앱에서 달팽이를 분양한다는 게시자의 글을 보고, 연락이 닿아 만나기로 했다. 비가 보슬보슬 오는 4월 초경이다. 연남동 근처 아파트 앞으로 가니, 작고 앙증맞은 달팽이가 상상하며 기다렸다. 그 집 꼬마 아이가 나에게 내민 달팽이의 크기를 보고 너무 놀라웠다. 주먹만 했다. 난 지난번 생협에서 사 온 상추에 작고 앙증맞고 깨물어주고 싶은 만큼 작은 크기의 달팽이를 상상하다, 막상 큰 달팽이를 보다 보니, 솔직히 징그러웠다. “이, 아이는 저희 꼬마 아이가 아주 작을 때 키워 지금 3년째 되었네요. 흙의 습기가 마르지 않아야 하고 상추를 잘 챙겨주기만 하면 되어요. 그리고 달팽이 껍질이 단단해지고 오래가게 하려면 영양제도 주세요.” 그 꼬마 아빠의 말을 들으면서 영양제까지 챙겨주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달팽이를 홍제천 좋은 곳에다 데려다줄 상상을 나 혼자 하고 있었다. “아니면 달걀 잘 씻어 말려서, 그걸 가루로 만든 다음 주셔도 되어요.” 아저씨 말에 우리 아이가 “엄마, 엄청 키우기 쉽네요. 밥 주고, 가끔 목욕 씻기고, 그리고 달걀 껍질 집에 많으니깐, 재활용도 되구요.” 너무 신나 한다. 정말 억지로 웃음을 건네고 데리고 왔다.     


basilsmith @pixabay

물고기 키우다 실패하고 씻어 놓은 플라스틱 통에 달팽이를 넣어주기로 했다. ‘코코핏’이라는 달팽이 사육하는데 필요한 흙도 인터넷으로 구입신청 했다. 그냥 흔히 보이는 흙에 기생충이나 벌레가 있는 경우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생각보다 엄청 깔끔한 녀석이다. 이것저것 준비하다 화가 올라온다. 아이는 엄마가 다 해주면 식탁에 앉아 숟가락만 들 태세이다. “2호야, 인터넷에서 달팽이 키우기 동영상 보고, 달팽이 키울 때 주의할 점 등 어떻게 키울지에 관한 정보를 A4 한 장에 정리해서 엄마에게 좀 이야기 해줘.” 아이는 이미 설명을 다 들었음에도 왜 다시 요구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사실 엄마는 달팽이가 처음이야. 잘 모르겠어. 네가 도와주면 앞으로 달팽이에게 문제가 생길 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아. 적어도 생물을 키운다는 것은 그 생물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는 게 먼저이니깐.”     


아이는 인터넷 동영상을 찾아 한 참 쳐다보고 정리를 한다. 그리고 나서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설명해준다. 부하직원의 설명은 이미 다 알고 있으니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상관의 눈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목줄을 세워가며 열변하는 장교의 모습을 보인다.

“첫째, 달팽이는 2주에 한 번 목욕시킨다.”

“둘째, 상추나 당근을 먹는다.”

“셋째, 햇빛을 보면 죽는대요. 절대 창가에 두면 안 된대요. 어디에 두어야지, 아 내 방이나 거실책장에 두면 되겠네요.”

“네번째, 달팽이는 한 달 동안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대요.” 

읽다 말고 탁월한 선택을 한 자신을 칭찬하듯, “엄마, 앞으로 여행을 가거나, 잊고 있어도 달팽이는 무사하네요. 대박이야.” 

“어머, 빨리도 찾았네. 그럼 달팽이도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야’라고도 부를 수 없고, ‘달팽아’라고도 부르기 좀 너무 성의 없고.”


한 참 생각할 태세를 하더니 “엄마, 팽팽이 보다 핑핑이가 좋겠을 것 같아요. 그냥 핑핑이라고 해요.” 그래서 난 핑핑이라는 달팽이 녀석을 다섯 번째 식구로 맞아들이고 동거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추만 주면 야금야금 먹어치운다. 굳이 보고 있지 않아도 어느 날 자고 일어나면 상추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 상추를 먹으면 기다란 녹색 똥을, 당근을 먹으면 오렌지빛 똥을 싼다. 아이가 하는 ‘지렁이 키우기’라는 컴퓨터 게임을 본 적이 있는데, 에너지를 먹으면 지렁이가 길쭉해지는 것처럼 똥도 아주 길게 싼다. 아이들도 없고 집에 혼자 있을 때, 달팽이 통 안을 들여다보면, 상추를 먹으면서 나는 소리가 있다. ‘우지직, 우지직’ 생각보다 큰 소리가 난다. 똥이 너무 많이 차이면 새로운 흙으로 갈아주어야 한다. 통을 씻어 말리기 위해 작은 플라스틱 쟁반에 물을 담아 거기다 놓아주면 정말 행복해하는 몸짓을 보인다. 단단한 껍질 안에서 보드랗고 하얀 속살이 나오는 순간 더듬이가 길게 안테나처럼 뽑아져 나온다. 처음에는 징그럽고 만지기도 겁났다. 하지만 자주 볼수록 우유빛 하얀 속살이 밝은 태양 아래 은박지처럼 눈을 뜨게 만든다.     

내 예상은 맞았다. 아이는 달팽이에게 먹이 주는 것도 잊고 있다. 내가 상추를 챙겨주지 않으면 정말 한 달 이상을 굶겨도 모를 정도이다. 처음에는 씻은 상추를 가져다주라고 하다가, 이젠 그마저도 귀찮아 내가 넣어주곤 했다. 넣어 줄 때마다 통 안에서 잘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어느 날은 나만 달팽이를 키우는 것 같아 아이에게 동영상으로 제작해서 올리자고 했다. 통 안에서 꺼내 목욕시키는 장면부터 다시 넣어주는 장면까지 세세하게 찍었다. 그 과정에서 ‘핑핑이’에게 노래까지 부르게 했다. “달팽이는 비 오는 날을 아주 좋아해~”라는 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아이는 컴퓨터 화면에서 화려하게 자태를 뽐내는 ‘지렁이키우기’게임으로 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이제부터 내가 죽을 때까지 책임지겠다는 맘을 먹게 되었다.    

 


몸이 피곤하다. 집안일이 많을 때는 가끔 며칠을 걸러서 주곤 했다. 여름 한낮 열기가 집안으로 몰고 들어와 달팽이 살을 익게 만들 정도가 되자, 귀찮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고, 햇빛 없는 곳에 두었다 다시 거실 책장 한곳에 두곤 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누군가 통화하다 일도 많은데, 달팽이까지 챙겨야 하니깐 힘들다는 속내를 밝혔다. 그러자 소금을 뿌리거나 초파리가 생기면 죽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처음에는 방생하라고 했다. 홍제천 축축한 땅에 놓으면 다른 벌레에게 살이 뜯겨 나가 죽는다는 말에 그건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집에 흔히 보이는 소금 한 줌 넣으면 된다는 말에 귀가 토끼 귀처럼 늘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빨간 입꼬리를 올리고 음흉한 미소를 보내는 악마처럼 내심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음에 흐뭇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옆집 할머니가 내가 키운 화초들이 다 죽어가는 것을 보고 물을 주곤 했다고 고해성사하시면서, 작은 식물도 자기가 살려고 있는 힘을 다해 가지를 내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고 한 게 생각나서였다. 솔직히 홍제천에 데려다 주는 것도 방생이라는 인류애적인 거창한 의미를 들먹이지 않아도 속내는 그냥 ‘안락사’인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망설임이 길어지는 것도 잠시, 그냥 살아 있는 동안 키우기로 마음을 먹고, 달팽이에게 말도 건네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처음 키운 생물 1호가 너라는 사실을 고백하려다, 어항 속에서 죽어간 물고기들이 생각나서 말을 돌려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생물은 너라고 고백했다. 어쩌다 달팽이를 들여다보고 잘 크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 아이 녀석의 표정을 보면서 ‘내가 잘하고 있구나’ 위로를 받기도 했다. 통 안을 자주 들여다보고, 상추 값이 비싼 장마철에도 마트에 가서 상추를 사서 식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달팽이에게 먼저 주는 애정을 보였다. 통 안에서 상추도 먹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니 죽은 줄 알고 설레발을 치면 옆에 있던 아이 녀석은 태연하게 한마디 했다. “엄마! 핑핑이 자는 거라니깐요. ‘핑핑이’이는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요.” 그 말에 난 아니라고 잘못된 것 같다고 강하게 밀고 나가면, 아이는 통 안에서 달팽이를 꺼내 들어 보인다. 그러면 거북이걸음처럼 천천히 하얀 속살을 조금씩 벌이면서 밖으로 나온다. “봐요. 안 죽지요. 걱정마세요. 핑핑이는 절대 안 죽어요.” 아이의 말에도 난 어릴 때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그 젊은 나이에 우리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가버린 아버지의 죽음처럼 달팽이도 그렇게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 한창 바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창직진로코칭과정’을 수강하고, ‘피부과에 가서 흉터치료’도 받아야 하고, ‘한식조리과정’도 가야 하고, ‘아동독서지도사과정’과 ‘슬기로운 낭독생활’이라는 프로그램도 들어야 해서 공중에 공을 수 십 개 올려서 돌려가는 저글러처럼 생활했다. 그러다 일주일을 깜박했다. 아니 지금까지 상추를 잘 챙기고 안부도 물은 걸로 착각했다. 오늘 시댁 작은어머님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달팽이에게 먹이도 줄 겸 청소도 해줄 겸 통 안을 열다 놀랐다. 달팽이가 보이지 않는다. 보통 흙 위에서 보였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통 안을 열고 손으로 흙을 파헤치니 바닥 밑에 붙어있다. 달팽이를 꺼내고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달팽이 입구에 하얀 막이 있었다. 돌아가실 때 덮어주는 하얀 천처럼 자신의 죽음을 자신 스스로 덮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죽었구나’ 생각하는 순간 죄책감과 함께 달팽이조차도 키우지 못하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순간 눈물이 내렸다. 억지로 속초까지 가서 문상을 해야 하는 나의 처지가 그래서인지, 아니면 요즘 나를 힘들게 하고 있는 내 자신의 고단함 때문에 그래서인지 눈물이 빰을 타고 내린다. 참 알 수 없다. 누구의 죽음을 애도하러 그 먼 길까지 가야 하는 내가 달팽이 죽음 앞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달팽이 죽음을 아이에게 알려야 할지 난감했다. 혹 아이가 달팽이 죽음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달팽이처럼 잘 안 죽는 생물이 이렇게 죽을 수 있다는 것에 충격받아 다시는 생물을 키우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순간 집 앞 놀이터 공터에 땅을 파고 묻어주고 작은 묘비명도 만들어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묻기 전에 달팽이를 깨끗하게 씻어 가는 길을 배웅하고자 했다. 흐르던 눈물을 닦고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 질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가 일어났다. “2호야, 달팽이가 죽었어. 엄마가 그동안 바빠서 챙기질 못했는데, 하얀 막이 보이더니 움직이지도 않아. 살이 굉장히 딱딱해.” 울먹이는 목소리도 이야기를 하니,아이가 벌떡 일어나 달팽이 놓아둔 플라스틱 물통을 쳐다본다. “아니야, 엄마 핑핑이 살아 있어요.” 하고 들어서 보이지만 달팽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아마, 잠을 자고 있나 봐요. 더 자면 일어날 거예요.” 여전히 플라스틱 통 안 물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얀 막이 여기저기 떠다닌다. 난 묻어 주고 떠날 생각이었다. 

basilsmith @pixabay

신기하다. 아이 말이 통했는지 1시간여 남짓 지나자, 달팽이가 20여 년 움직이지 않았던 자전거 체인에 기름 한 방울 넣고 움직이기 시작할 때처럼 그렇게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정말 살아 돌아온 기적의 선물을 보는 것처럼 환호했다. 엉덩이를 가볍게 움직이면서 통 안을 청소하고 흙도 새로 깔아주고, 상추도 사서 넣어주었다. 그 상추에 달팽이 껍질을 단단하게 하는 영양제도 뿌려주면서 말이다. 나에게 불운이라는 단어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 보내 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찾은 역전의 용사처럼 말이다. 난 속초로 문상가는 길이 그렇게 억울하지 않다. 달팽이가 살아 내게 다시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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